채경선 미술감독·정재일 음악감독·김지용 촬영감독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시즌2를 가꾼 숨은 공신들
![‘오징어게임’ 시즌2 [넷플릭스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2/04/news-p.v1.20250204.de828b7ea2564112a7a9433614c452e1_P1.jpg)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흙먼지가 휘날리는 운동장 위의 녹색 체육복, 진한 핑크색 옷을 입고 총을 든 병정들, 사랑스럽기 그지 없는 파스텔 색감의 미로 같은 인형의 집…. 선혈이 낭자할 때 ‘국민 응원가’인 무한궤도의 ‘그대에게’가 울려퍼지고, ‘둥글게 둥글게’ 음악이 흐르는 회전판 위로 올라선 사람 목마들에겐 블링블링한 금빛 조명이 쏟아져 내린다.
‘디테일의 승리’다. ‘대비의 미학’은 잔혹한 생존 서바이벌을 ‘잔혹 동화’로 만들었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2가 그려낸 세상은 인간이 구현하는 상상력의 최고 수준에 도달해있다. 456억원을 향해 달려가는 목숨을 건 게임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색상 도파민’이 터지는 아기자기한 세트와 귀에 착 감기는 음악, 미장센을 살려낸 앵글 덕분이었다.
‘오징어 게임2’의 숨은 공신인 채경선 미술감독, 정재일 음악감독, 김지용 촬영감독은 “전형적이지도, 과하지도 않은 공간과 음악을 보여주고, (시청자에게) 체험적 느낌을 주기 위해 고심했다”고 입을 모았다.
![‘오징어 게임’ 시즌2 [넷플릭스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2/04/news-p.v1.20250204.2ae8bc9e4b724731af5598a9a77ebd18_P1.jpg)
모텔의 러시안 룰렛ㆍ인간 목마들의 ‘둥글게 둥글게’…‘오겜2’ 최고의 장면
어두컴컴한 모텔 안. 주인공 기훈(이정재 분)과 딱지남(공유 분)가 마주 앉아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한다. 살벌한 생존 게임의 판을 짠 딱지남은 ‘분홍색 소파’에 앉아있다.
시즌2에 합류한 김지용 촬영 감독은 “모든 장면이 인상적이었지만, 러시안룰렛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황동혁 감독과 ‘남한산성’을 비롯해 다수의 작품을 통해 호흡을 맞췄고, 시즌2의 영상을 매만지며 게임판 속 세상의 긴장감을 높였다.
모텔 장면엔 곳곳에 창작진의 의도가 숨어 있다. 김 감독은 “기훈이 살고 있는 모텔은 게임의 바깥이지만 여전히 ‘오징어 게임’의 영향을 받는 재미있는 공간”이라며 “분홍색 소파와 분홍색 수건 등이 게임 속 병정의 옷 색깔과 연결되고 붉은 조명과 차가운 불빛의 대비가 게임 속 OX 투표 장면과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 공간의 설계엔 “게임 세상과 바깥 세상이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를 심어뒀다.
시즌2 공개 이후 가장 화제가 된 공간은 ‘둥글게 둥글게’ 게임장이었다. 500평의 면적에 달하는 크기에 1000개 가량의 조명을 손으로 달아 회전목마를 연상케 하는 공간으로 구현했다. 그곳에서 아이들의 목소리로 ‘둥글게 둥글게’ 동요가 흐리니 얄궂은 대조가 몸서리를 치게 한다.
채경선 미술감독은 “만드는 과정이 특히나 고생스러웠다”며 “실제 게임을 할 수 있는 공간감을 설정했고 각방을 라운드로 연결했다. CG 없이 만들어보자는 도전이었다”며 “수백 명이 올라간 상태에서 거대한 회전판이 돌아갈 수 있도록 제작한 공간”이라고 말했다. 애초 지하철이나 주공아파트 단지로 구사아는 아이디어로 나왔으나, 놀이공원의 회전목마 세트가 최종안으로 결정됐다. 채 감독은 “인호(이병헌 분)가 가족과 가장 가고 싶었을 만한 곳으로 구상“해 사람이 “체스판의 말과 같은 역할을 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채경선 미술감독 [넷플릭스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2/04/news-p.v1.20250204.4a91299690af434396b07c9a57baf0c2_P1.jpg)
완성된 세트 위에서의 게임은 공중에서 내려다 보는 ‘항공샷’으로 촬영하며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김 감독은 “체험적 느낌과 감시당한다는 느낌을 동시에 주기 위해 전지적 관점에서 보는 샷을 담았다”며 “위로 올라가면 괜찮겠다 싶어 공중 촬영을 세팅했는데, 다 하고 보니 생각보다 되게 괜찮았다”며 웃었다. 촬영의 각도가 머리 위로 향하니 기존의 눈높이에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게 됐다.
정재일 음악감독의 장기가 돋보인 ‘최고의 장면’은 5인 6각 경기였다. 의외의 장르와 노래가 툭툭 튀어나오니 긴장감이 커진다. 리코더로 부는 ‘오징어 게임’의 상징곡은 시즌2에서 다양하게 변주됐고,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음악도 많았다. “새로워야 하고 재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리를 싸맸다고 한다.
정 감독은 “이야기에 몰입해 일필휘지하는 순간이 곳곳에 있었고 음악마다 독특함을 잃지 않으려 했다”며 “무한궤도의 ‘그대에게’에 맞춰 모든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되는 5인6각 게임은 특히 마음에 드는 장면”이라고 했다. 이 장면에 대해 그는 “엄청난 비극 속에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20분 정도의 장면을 연주했다”고 말했다. 리코더로 연주되던 곡이 일렉트로닉 기타로 연주되며 내달리는 장면은 영화 ‘매드맥스’를 연상케 한다. “1970년대 블루스나 ‘마카로니 웨스턴’(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유행했던 서부 영화의 한 장르) 음악들에서의 유니크함을 찾아보려 했다”는 것이 정 감독의 설명이다.
![‘오징어 게임’ 시즌2 [넷플릭스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2/04/news-p.v1.20250204.72eb82bbaa0c468085979aa8f2452b4f_P1.jpg)
따뜻함과 욕망의 양면성 ‘주황’, 고점의 권력 ‘보라’…색채 속 상징
시즌1의 시각 충격을 체험한 시청자의 기대치를 충족할 만한 새 시즌을 선보이기까지 채경선 감독의 고심은 깊었다. 이미 시즌1으로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기에 부담은 더했다. 그럼에도 이번 시즌 역시 또 한 번 시청자들의 눈을 번쩍 뜨게 했다. 그는 이번 작품으로 제29회 미국 미술감독 조합상 후보에 올랐다.
채 감독은 “시즌1보다 더 잘 만들어야 한다고 흥분하며 시작했다가 너무 과하게 나왔다”며 “새롭게 디자인하고 다른 컬러의 체육복으로 변경하는 등 색다른 시도를 해봤지만, 결국 돌고 돌아 원점으로 돌아오는 일련의 작업들이 있었다”고 했다.
‘오징어 게임’의 트레이드 마크로 전 세계 ‘품절 대란’을 일으킨 녹색 체육복을 하늘색으로 바꾸고, 게임장 숙소의 이불색, 게임 운영진들의 가면 디자인을 변경도 고심했다. 하지만 채 감독은 “엉뚱한 도전도 했지만 결국 팬들이 좋아하는 것을 그대로 가기로 했다”며 “부담감을 내려놓는 데에 에너지를 쏟은 시간이었다”고 돌아봤다.
각각의 공간과 의상 색상엔 숨은 상징과 의미가 있다. “유년시절의 게임을 차용한 시리즈물이라는 것을 고려해 초등학교 시절의 체육복, 새마을운동 시기를 레퍼런스 삼아 시대적 느낌의 녹색 체육복을 썼고, ‘공포의 감시자’ 역할의 병정에겐 ‘유아적 컬러’인 핑크를 입혔다”는 것이 채 감독의 설명이다.
![‘오징어게임2’ [넷플릭스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2/04/news-p.v1.20250204.3644ea773cee4e858e44cea66d670941_P1.jpg)
‘둥글게 둥글게’ 게임 공간에선 주황색, 게임 운영자를 찾으러 가는 장면의 복도에선 보라색이 두드러지게 등장하는 것은 시즌2만의 특징이다. 채 감독은 “따뜻함과 욕망을 동시에 상징하는 양면적 색상의 주황색, 고점의 권력을 상징하는 보라색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특히 주황색은 “레드를 따라가고 싶어하는 우리가 잘 모르는 욕망이 담긴 색상”이라고 봤다.
시즌2 공개 이후 온라인 상에서 가장 화제가 된 부분 중 하나는 영희의 얼굴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 등장하는 영희 얼굴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는 반응이었다. 일명 ‘영희 성형설’이다. 논란을 일으킨 장본인은 김 감독이다. 그는 “영희의 얼굴은 시즌1과 달라진 것이 없다”며 “똑같은 영희이나 변화를주고 싶어 촬영 렌즈와 거리를 조절해 점점 괴상해보이도록 했다”고 귀띔했다.
복수를 위해 ‘게임의 세계’에 다시 돌아온 기훈과 그에게 맞서는 프론트맨의 대결, 참가자들의 생존 게임을 그려가는 ‘오징어 게임’은 이제 시즌3의 공개를 앞두고 있다. 오는 6월이면 공개될 새 시즌에선 보다 풍성한 이야기와 음악이 담기게 된다. 시즌3엔 영희의 짝꿍 철수도 등장한다. 채 감독은 ”어릴적 교과서를 보면 늘 영희 옆엔 철수가 있었다. 이미 영희를 그릴 때 철수도 함께 그렸다“고 귀띔했다.
정재일 감독은 “‘오징어 게임’은 비극과 고통 속에서도 없어지지 않는 인간성이 공감을 일으킨 작품”이라며 “그러한 메시지가 시즌 3에 담기게 된다. 음악 역시 극한으로 치닫는 동시에 감정의 요동을 담아내게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