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암경찰서 강성길 경감 인터뷰
만취 승객만 노려 상습 공갈친 택시기사
토사물 뒤집어 써가며 검거
편집자주 “한국에서는…도망쳤다고 추적하기를 중단합니까?” 범죄부터 체포까지, 대한민국 경찰들의 끝나지 않는 ‘붙잡을 결심’을 소개합니다.

[헤럴드경제=김도윤 기자] 소주 냄새가 밴 코트 위로 거무죽죽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고소한 냄새가 났다. 택시기사는 미리 준비한 ‘가짜 토사물’을 술을 마시고 잠든 척한 형사의 얼굴과 신발, 온몸에 묻혔다. 강성길 경감은 눈을 감은 채 확신했다. “이 사람 지금까지 이 수법으로 수없이 많은 사람을 속여왔겠구나.”
서울 종암경찰서 형사1팀 팀장 강성길 경감은 지난 17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때로는 진실이 문서상의 기록보다 먼저 형사의 기억 속에서 움직인다”고 말했다. 강 경감은 인터뷰 중 대부분 웃는 미소로 답했지만 택시 승객 160명에게 1억 5000만원 상당을 뜯어낸 택시기사의 범행수법과 피해자의 억울함을 말할 때는 표정이 무섭게 변했다.
강 경감은 연차 휴가에서 복귀해 사건 기록을 검토하던 중 눈에 띄는 사건 한 건을 발견했다. 택시기사가 승객에게 폭행당했다며 경찰서를 찾았지만 정작 피해 장면을 담은 블랙박스는 없고, 승객은 억울하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었다. 승객은 “술에 취해도 토를 한 적은 없다”며“택시기사를 때린 적도 결코 없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강 팀장은 그때 수법이 낯이 익다고 생각했다.
택시기사가 내놓은 진술과 정황이 수상했다. 강 경감은 택시기사를 수사 대상자 시스템으로 조회했고, 과거 동일 수법의 전력이 있음을 확인했다. 특히 예전 근무지에서 겪은 사건이 떠올라 담당 형사에게 연락해 보니 이전에 동일 수법의 전력이 있어 구속되었던 사람이었다. 공단 문서를 통해 수법까지 일치함을 확인한 그는 즉시 첩보를 제출하고 내사에 착수했다.
강 경감은 증거 사진을 들춰보다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택시기사 얼굴에 토사물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어요. 알갱이까지 그대로요. 보통 사람이면 털어냈을 텐데 이 사람은 오히려 자랑하듯 그대로 두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고 뭔가 이상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결정적 단서는 지난 4월1일 밤 택시기사가 피해 진술을 하겠다며 차량을 몰고 경찰서를 찾았을 때 나왔다. 강 경감은 경찰서에 주차된 택시 차량에서부터 범행의 단서를 찾았다. 강 경사는 “뒷좌석에 토사물로 보이는 흔적이 남아있더라고요. 저희 생각으로는 계속해서 그런 범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형사1팀은 회의 끝에 위장 수사를 결정했다. 잠복조와 채증조로 나누고 위험한 작전일 수 있다는 판단하에 강 경감이 직접 피의자가 몰던 택시에 승객으로 탑승했다. 작전에 들어가기 전 강 경감은 편의점에서 높은 도수의 빨간 뚜겅 소주를 사 옷과 머리에 뿌렸다. 술에 취한 승객처럼 보이기 위해서였다.
택시기사는 평범하게 인사하며 운전을 시작했다. 택시기사는 ‘고향이 어디냐’, ‘부산까지 태워줄까’ 등의 말을 건네며 느긋하게 운전했다. 강 경감은 일부러 “남양주로 가달라”고 말한 뒤 눈을 감았다. 차는 일정한 속도로 달리다 멈추고 다시 서행했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정차한 자리에서 ‘범행’이 시작됐다.
강 경감은 “실눈을 떠보니까 어떤 남양주 편의점인가 마트더라고요. ‘아 토사물을 사러 갔구나’ 생각했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택시기사는 편의점을 나와 어둑한 골목에 차량을 다시 정차한 뒤 능숙하게 승객이 토한 것처럼 꾸미기 시작했다. 비닐봉지에 든 혼합물을 꺼내 바닥에 붓고, 형사의 신발과 몸, 얼굴에까지 문질렀다.
경찰은 남양주 인근의 한 파출소에서 택시기사를 검거했다. 당시 파출소 직원들은 택시기사는 경찰 앞에서 토사물에 젖은 얼굴을 가리키며 “승객이 폭행하고 토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강성길 경감 한테서 술 냄새가 풍기자 강 경감을 의심하기도 했다. 강 경감은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고 택시기사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이후 수사팀은 택시기사가 들린 상점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등을 확보해 범행에 사용된 물품을 확인했다. 확인 결과 토사물은 죽, 콜라, 커피 등을 섞어 만들었다.
택시기사는 승객에게 운전 중 폭행을 당했다며 운전자 폭행으로 처벌받으면 1000만 원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고 협박하면서 형사합의금, 세차비용, 파손된 안경 구입비 등 명목으로 적게는 30만 원부터 많게는 600만 원의 합의금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택시기사는 지난 4월 9일 상습공갈 혐의로 북부지검에 구속송치됐다.

강 경감은 32년 경찰 경력 중 절반 이상을 형사,수사 업무에 몸담은 베테랑 형사다. 형사기동대에서 첫발을 뗀 뒤 강력반, 지역 경찰 등을 두루 거쳐 현재는 종암경찰서 형사1팀 팀장을 맡고 있다. 수많은 사건을 다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지금도 명확한 기준이 있다.
“수사가 뜻대로 안 풀릴 때도 있지만, 결국 시간과 노력이 진실을 드러냅니다.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이어 강 경감은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기억이 희미하다는 이유로 선량한 시민들이 억울한 일을 당해서는 안 되고 그걸 막는 게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라며 “사건을 오래 끌지 않고 최대한 신속하게 해결하자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팀원들과 함께 사건을 해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kimdoyo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