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가 29일 전격 타결한 관세·투자 협상이 하루 만에 삐걱이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엑스(X·옛 트위터) 글에서 “반도체 관세는 이번 합의의 일부가 아니다”고 밝혔고, “한국은 자기시장을 100% 개방하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반도체 관세는 주요국에 비해 불리하지 않은 수준을 적용받기로 하고, 농산물 추가 개방은 없다고 한 정부 설명과 차이가 있다. 합의의 실효성과 신뢰도를 좌우할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문)와 투자 양해각서(MOU) 조율이 아직 끝나지 않은 만큼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이번 협상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고율 관세 정책 속에서 한국이 끈질기게 요구해 얻은 결과물이다. 한국은 연 200억달러씩 10년에 걸쳐 총 2000억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고, 투자처 지정에 한국의 입장을 반영키로 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러트닉 장관은 “알래스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에너지 인프라, 핵심 광물, 첨단 제조, 인공지능(AI) 및 양자 컴퓨팅을 포함한 미국 내 프로젝트에 2000억 달러를 지시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강조한 ‘반도체·이차전지·바이오 중심 투자’ 방향과 거리가 있다. 투자처가 국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국내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본래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

대통령실은 “정치적 수사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같은 합의를 두고 양국이 다른 설명을 내놓는 것은 우려스럽다. 사실 투자처 지정에 정부가 설명한 “원리금이 보장되는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프로젝트만 추진”한다는 식은 각자 입맛대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 반도체도 대만의 관세협상이 진행중이라 한국산 반도체도 결정되지 않았다는 뜻으로, 우리 편의대로 이해하는 건 불안하다. 유럽연합(EU)은 반도체에 15%의 관세율을, 일본은 EU와 같은 수준을 의미하는 ‘최혜국 대우’를 약속받았다. 결국 세부조율에서 모호성을 걷어내는 게 관건이다.

의외의 성과로 여겨지는 핵추진잠수함도 과제가 생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한화오션이 인수한 조선소를 현대화해 만들라는 것이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구상한 ‘국내 독자 건조’ 계획과는 다르다. 미국 내에서 짓게 되면 인프라 구축에만 3~5년이 걸리고, 비용도 국내의 3~4배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보다 냉정한 실무 조율로 국익을 지키는 게 필요하다. 연 200억달러(약 28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는 정부의 연간 사회간접자본(SOC) 분야 예산 규모(2026년 예산안 기준 27조5000억원)와 맞먹는다. 그런 돈이 한푼도 헛되게 쓰이지 않게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