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세운4구역 건물 높이 2배로 완화
“초고층 건물 세워도 경관 훼손되지 않아”
문체부·유산청, 세계유산 취소 우려에 ‘반발’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서울 종묘 앞 세운4구역 재개발을 둘러싼 논쟁이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유산청은 종묘 앞에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세계유산 지정이 취소될 수 있다며 반대하는 반면, 서울시는 세운지구 개발로 종묘 경관을 훼손하지 않는데다 개발 지연에 따른 지역 주민들의 재산권 침해도 고려해야 한다며 개발을 강경하게 주장하고 있다.
‘종묘 대전’이 문화적, 사회적 문제를 넘어 정치적 문제로까지 비화하는 가운데, 양측이 갈등을 벌이는 이유와 주요 쟁점을 짚어본다.
최고 높이 2배로…“협의 어겨” vs “숨막힐 정도 아냐”
최근 종묘 일대를 둘러싼 갈등이 재점화된 것은 서울시가 세운4구역의 건물 높이 계획을 2배 이상으로 늘리면서다.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세운재정비촉진지구와 세운4구역에서 가능한 건축물의 최고 높이를 70m에서 145m로 변경하는 내용이 담긴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및 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결정(변경) 및 지형도면’을 시보에 고시했다. 다만 종묘 경계에서 100m 내 건물은 최고 높이가 27도 각도 안에 들어와야 한다는 앙각 규정을 확대 적용해 종로변은 98.7m, 청계천변은 141.9m로 건물 높이를 조정했다.
문제는 서울시의 이같은 결정이 지난 2014년 7월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문화재위원회(현 문화유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2021년 12월 서울 종로구의 사업시행계획 변경인가를 받은 세운4구역 재정비촉진계획을 뒤집었다는 점이다.
사실 세운4구역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은 2004년 도시환경정비사업 구역으로 지정된 이래 20여 년간 반복돼 왔다. 건물 최고 높이는 당초 90m에서 104m로 변경했다가 오세훈 서울시장 1기였던 2009년에는 122.3m까지 키워 서울시 심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이후 문화유산위원회의 우려로 인해 반려된 뒤 72m로 낮아졌다.
문체부와 국가유산청은 수 년간에 걸친 기관간 협의 사항을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변경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있다. 여기에 종묘 앞에 초고층 건물이 들어설 경우 1995년 한국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종묘의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60~70년대식 마구잡이 난개발 행정”이라며 “대한민국 문체부장관으로서 취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허민 국가유산청장도 “종묘 앞에 세워질 높은 건물은 서울 내 조선왕실 유산들이 수백 년간 유지해온 역사 문화 경관과 종합적 가치를 직접적으로 위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의 입장은 다르다. 시는 세운4구역에 초고층 건물이 들어선다고 해도 종묘 경내에 그늘이 발생하지 않아 실질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심지어 재개발이 되면 주변 경관이 정리돼 종묘가 오히려 돋보일 것이란 주장이다. 서울시가 경관녹지 대신 개방형녹지로 계획을 변경하면서 주변 시야가 트여 용적률과 높이를 완화해도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 시장은 “남산부터 종묘까지 쭉 뻗은 녹지 축이 생기면 세운상가가 종묘를 가로막을 일이 없다”며 “세운지역 재개발 사업이 종묘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양측이 제시한 개발 예상도를 보면 이러한 입장차가 확연히 드러난다. 녹지 공간 조성을 강조한 서울시의 세운4구역 가상도를 보면, 고층 건물들 사이에 녹지 축이 있기 때문에 종묘의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국가유산청이 최근 공개한 종묘 정전에서 바라보는 경관 예상도를 보면 기존의 빌딩들과 달리 세운4구역의 고층 빌딩이 불쑥 튀어나와 확연히 눈에 띈다.
오 시장은 지난 18일 열린 시의회 정례회 시정질문에서도 세운4구역 재개발 시뮬레이션 3D 이미지를 추가로 공개하며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그렇게 압도적으로 눈을 가리고, 숨을 막히게 하고, 기를 누를 정도의 경관은 전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종묘의 세계유산지정 이유는 종묘 정전의 건축학적 아름다움과 종묘제례악과 같은 콘텐츠, 소프트웨어가 지정 이유이지 건축물 자체는 큰 이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오 시장이 공개한 이미지에서도 최고 142m 높이의 건물이 들어설 경우 종로변 건물은 상부 절반 가량이 보여 주변의 낮은 경관과 대비되는 모습이 확인된다.
유네스코가 요구한 세계유산영향평가…서울시는 “글쎄…”
세운4구역 재정비 사업에 대한 세계유산영향평가 수용 여부도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국가유산청은 그동안 수차례 서울시에 세계유산영향평가 실시를 요청했으나, 서울시는 이를 거부해 왔다.
심지어 유네스코도 지난 4월 서울시에 재정비 사업이 종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전체 계획에 대한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받으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가유산청은 “올해 4월 서울시에 공문을 보낸 이후 5월, 9월 등 총 3차례에 걸쳐 영향평가와 관련한 내용을 전했으나 관련 내용을 회신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종묘에 대한 세계유산영향평가 이행은 법적·행정적 근거가 없어 이행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국가유산청이 종묘가 세계유산에 등재된 지 30년이 지나도록 종묘에 완충구역을 설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유네스코의 자문기관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의 검토 보고서와 세계유산영향평가 권고 내용이 담긴 공문에 대해선 “(받기는 했으나) 영어 원문으로 작성돼 의미를 파악할 수 없어 대응 방안을 마련할 수 없다”고 회신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이 가운데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위원회는 지난 13일 종묘 일대를 세계유산지구로 지정하기로 했다. 지난해 10월 지정 예고를 올린 지 1년여 만이다.
세계유산지구는 세계유산 구역과 그 보존에 필요한 완충구역을 포함하는 지역을 말한다.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세계유산법’)에 따르면 국가유산청장은 필요한 경우 세계유산지구를 지정해 관리할 수 있다.
세계유산법에 따르면, 세계유산지구에서 세계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건축물 또는 시설물을 설치·증설하는 사업을 하려는 자(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포함)는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오 시장은 종묘의 세계유산지구 지정에 대해서도 “국가유산청이 완충구역을 지정한다 해도 (세운4구역은) 영향평가를 받아야 될 권역 밖에 있다”며 “법적으로 영향평가 대상이 아닌 부분에 대해서 영향평가를 받으라고 국가유산청이 우리에게 요청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세계유산법상 세계유산지구 밖에서 대상사업을 하게 되는 경우에도 세계유산의 특성 및 입지 여건 등에 비추어 해당 사업이 세계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고 인정되면 국가유산청장은 사업자에게 세계유산영향평가의 실시를 요청할 수 있게 해 법적 근거가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유네스코도 압박…세계유산 취소 가능성 배제 못해
문체부와 국가유산청이 우려하는 종묘 세계유산 취소에 대해 오 시장은 “세계유산 지정 해제는 그야말로 기우”라면서 “유네스코를 비롯해 세계유산 지정 실무를 담당하는 분들이 종묘 경계로부터 100m 이상 떨어진 건축물에 대해 걱정한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유네스코가 지속적으로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요구해 왔다는 점에서 오 시장의 발언이 실언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네스코는 지난 1995년 종묘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당시 인근 지역에서 고층 건물 인허가가 없다는 점을 보장할 것을 명시했고, 정부는 이를 받아들인 바 있다. 만약 서울시가 계획대로 재개발을 진행한다면 당시 유네스코와 체결한 약속을 깨게 되는 셈이다.
아울러 종묘 주변에 고층 빌딩이 들어서면 세계유산에 요구되는 ‘시각적 완전성(Visual Integrity)’이 훼손될 수 있다. 개발 건축물이 세계유산특별법이 정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훼손했다고 판단되면 세계유산 지정 철회도 가능하다. 이 경우 유네스코는 ‘위험에 처한 유산’으로 등록하고 개선되지 않으면 등재를 취소한다.
실제로 유네스코의 기준을 유지하지 못해 세계유산 지정이 철회된 사례가 있다. 영국 리버풀 해양산업도시의 경우 대영제국 시절 부두와 항만을 보존해 2004년 세계유산에 등재됐으나 대규모 부동산 개발로 인한 스카이라인 변경으로 2021년 등재가 취소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2010년대 초반부터 리버풀에 들어서기 시작한 고층 빌딩, 축구 경기장 등에 대해 “뛰어난 보편적 가치를 전달하는 속성이 돌이킬 수 없이 손실됐으며 진정성과 온전함이 현저히 사라졌다”고 등재 취소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리버풀의 선택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다소 엇갈린다. 쇠퇴의 길을 걸었던 리버풀은 세계유산으로서 지위가 상실되긴 했지만, 도시는 활력을 찾았다. 등재가 취소됐던 날 영국 언론은 “리버풀은 유산을 잃었지만 생명을 되찾았다”고 평가했다.
200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던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도 이코모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4차선 교량을 건설, 경관적 가치가 훼손되면서 2009년 세계유산에서 제외된 바 있다. 이곳 역시 추가 교량으로 인해 도로 교통 상황이 개선되면서 관광객이 더 늘어나는 효과가 있었다.
한편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는 지난 15일 강력한 조치를 요구하는 외교 문서를 보내 왔다. 해당 공문에서 유네스코는 서울시에 대해 재개발 관련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철저히 받도록 권고했으며, 평가 결과를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하고 센터 및 자문기구의 긍정적 검토가 끝날 때까지는 재개발 사업 승인을 중지할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고 국가유산청은 전했다.
문화유산 보호와 도시 개발은 어느 한 쪽만을 선택하기 힘든 난제다. 하지만 이해 관계자인 문체부와 국가유산청 및 서울시가 계속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어영부영 시간만 보내게 되면 어떤 실익도 없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종묘의 문화유산으로서 지위만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어느 때보다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p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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