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총 2조달러 거론…상장 땐 美 6위
P/S 30배에도 “고평가 단정은 어려워”
오픈AI 가격인하·中 모델 공세는 부담
美 자금시장 실탄 부족도 흥행 변수로
국내 자금 쏠림 땐 기존 AI주 수급 부담
[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인공지능(AI) 모델 개발사 앤트로픽(Anthropic)의 기업공개(IPO)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시장에서 거론되는 기업가치만 2조달러로, 현실화할 경우 단숨에 미국 증시 시가총액 6위에 오르게 된다. 다만 증권가의 시선은 화려한 몸값보다 ‘흥행 여부’에 쏠린다. 초대형 공모를 소화할 만큼 시장의 자금 여력이 충분하냐는 의문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앤트로픽은 오는 9~10월 IPO를 목표로 지난 6월 비공개 상장신청서(S-1)를 제출했다. 시장에서 거론되는 예상 시가총액은 2조달러, 공모 규모는 1000억달러 수준이다. 목표 시가총액을 달성할 경우 앤트로픽은 엔비디아와 애플,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에 이어 미국 증시 시총 6위에 오르게 된다.
앤트로픽의 최근 연 환산 매출액(ARR)은 650억달러로, 예상 시총을 적용하면 주가매출비율(P/S)은 약 30배다. 절대적인 숫자만 보면 부담스러운 수준이지만 AI 기업 가운데서는 이례적인 밸류에이션만은 아니다. 현재 미국 증시에서도 팔란티어와 ARM, 크라우드스트라이크, 네비우스, 아스테라랩스 등 AI 관련 기업들이 확정 매출액 대비 30배가 넘는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2028년 예상 매출을 기준으로 보면 앤트로픽의 P/S는 약 10배로, 스페이스X나 테슬라와 비슷한 수준이다. 김민규 KB증권 연구원은 “앤트로픽의 2조달러 시가총액을 엄청난 고평가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가격’과 ‘흥행’은 별개라는 점이다. 김민규 연구원은 “흥행까지 가기에는 분위기가 녹록지 않다”고 진단했다.
첫 번째 부담은 경쟁 심화다. 오픈AI가 최근 고성능 모델의 토큰 가격을 잇달아 낮추며 가격 경쟁에 나선 점은 앤트로픽 IPO의 위험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고성능 중국 오픈웨이트 모델까지 빠르게 등장하면서 앤트로픽이 기술력뿐 아니라 가격 경쟁에서도 우위를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성장률 역시 투자자들의 눈높이를 계속 만족시킬 수 있을지 문제다. 앤트로픽의 7월 연 환산 매출은 650억달러로 직전 470억달러보다 38% 늘었다. 높은 성장률이지만 직전 발표 당시 증가율 57%와 비교하면 속도가 둔화했다. IPO 과정에서 투자자들이 ‘고성장 AI 기업’에 요구하는 기대 수준이 높아진 만큼, 성장률 둔화가 공모 흥행의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미국 자본시장의 ‘실탄’이다. 스페이스X에 이어 앤트로픽까지 증시에 입성하면 올해 미국 IPO 규모는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여기에 AI 관련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도 크게 늘면서 자금시장의 추가 공급 여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높아진 미국 내 조달 비용을 피해 알파벳과 아마존 등 하이퍼스케일러들이 유럽·캐나다·일본·호주 등 해외 채권시장까지 조달처를 넓히고 있다. 앤트로픽의 초대형 IPO를 흥행시킬 만큼 시장의 자금 여력이 넉넉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글로벌 흥행과는 별개로 국내 투자자들의 관심은 뜨거울 전망이다. 스페이스X 상장 이후 한 달 동안 한국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순매수 가운데 97%가 스페이스X에 집중됐을 정도다.
현재는 당시보다 원/달러 환율 여건이 나아졌고 국내 증시 거래도 한산해지면서 미국 주식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어, 앤트로픽 IPO가 이 같은 움직임을 더 가속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앤트로픽이 흥행할 경우 AI 투자에 대한 우려는 일시적으로 잦아들 수 있지만, 투자자들이 “AI로 돈을 버는 후방 기업보다 AI 기업 자체를 사자”는 쪽으로 움직이며 반도체와 클라우드 등 기존 AI 관련주의 수급을 빼앗아 갈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IPO가 부진하면 AI 산업 자체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지면서 클라우드와 메모리 등 후방 산업으로 우려가 빠르게 번질 수 있다.
흥행하더라도 앤트로픽으로 수급이 쏠리면서 기존 AI 관련주에는 긍정적인 효과가 제한될 수 있고, 부진할 경우에는 클라우드와 메모리 등 후방 산업으로 우려가 확산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민규 연구원은 “원화의 추가 강세여부를 지켜봐야 하긴 하지만, 스페이스X IPO 때보다는 미국주식을 매수하기에 더 좋은 환경”이라며 “앤트로픽이 수급을 더 강하게 빨아들여 다른 AI테마는 잠시 쉬어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th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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