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의 역사적 스펙트럼은 1500년 이상으로 길다. 그러나 그 역사는 기록이 불충분하고 중국과의 관계가 얼마나 가까운지 경쟁하는 부차적 교류 수준의 관계였다. 현재 한일관계를 지배하는 역사의 시간은 근대의 150년이다. 그것은 침략과 저항이라는 갈등의 역사다. 근대의 150년은 그 이전 1500년 역사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려고 경쟁하는 역사이기도 하다. 지금의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의 친밀성을 경쟁한다. 역시 역사는 비슷하게 되풀이된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한국과 일본의 공통된 격언이다. 임진왜란으로 양국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19세기 초까지 200년간 조선과 일본은 서로 공식 외교문서를 교환하며 사절을 보내는 평화로운 시대를 보냈다. 1620년부터 1867년까지 1만명 이상의 해상조난자들을 구조해 송환한 체계적인 상호협력체제는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19세기 말에서 1945년까지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을 겪고 해방된 이후 40년간은 한일 간 경제협력이 가장 역동적인 시기였다. 과거사의 상흔은 깊었지만 국력 차이는 여전히 컸고 냉전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냉전이 끝나고 한일 간 국력 차이가 급속도로 줄어들면서 역사 갈등과 질시는 오히려 증폭되었다.

한국과 일본은 안보를 미국과 동맹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안보공동체적 관계이면서도 전략적인 지향점은 다르다. 일본은 미일동맹을 통해 강대국 지위를 유지한다. 미중 간 대립이 일본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는 유리한 조건이다. 반면 한국은 한미동맹을 사활이 걸린 안보장치로 인식해 왔다. 미중 간 협력, 또는 최소한 평화로운 공존이 한국에게는 더 유리하다. 이러한 전략적 인식의 차이는 한일 간 협력을 제약했다. 그러나 미중 간 대립,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파상적인 관세정책과 동맹을 경시하는 행태로 인해 각자도생의 시대가 열렸다.

각자도생의 시대에는 강대국 간 이해관계 추이를 잘 이용하고 주변국들과도 협력해야 한다. 즉 ‘헷징 능력’이 중시된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효용성은 감소하고 동맹의 부담과 비용은 급증한다는 공통적인 상황을 처음으로 맞이하고 있다. 그로 인해 한일협력이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 한국 국력도 협력을 감당할 정도로 커졌다. 특히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의 여파로 양국의 에너지 안보는 물론 총체적인 경제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한일협력은 경제안보전략 수준까지 확대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일단 이재명 대통령이 먼저 한일 간 전략적 협력의 문을 열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도 화답했다. 당초 일본은 이 대통령이 반일적 성향을 드러낼 것을 우려했고, 한국은 다카이치 총리의 혐한적 태도를 걱정했다. 그러나 양국 정치지도자는 과감하게 변신했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협력하는 외교가 각자의 ‘헷징 전략’의 출발점이다. 당분간 협력이라는 같은 배를 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한일판 오월동주(吳越同舟)’다. 물론 한국과 일본은 앞으로도 중국에 대한 전략은 다를 것이다. 중일관계는 지금도 갈등상태다. 다카이치 총리가 독도에 관한 도발적 언동을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이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는 오월동주의 항해를 지속하는 것이 역사적 소명이다.

이현주 전 외교부 국제안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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