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단종 역을 소화한 배우 박지훈. [쇼박스 제공]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단종 역을 소화한 배우 박지훈. [쇼박스 제공]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배우 박지훈이 단종으로 열연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 최근 1300만 관객을 넘어섰습니다. 숫자만 보면 전형적인 ‘대박 흥행’입니다. 한국 영화 시장에서 흥행 기준이 되는 ‘1000만’에 300만을 더한 숫잡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이 영화 한 편에 관객들이 쓴 티켓 값만 2000억원인데 관련 수혜주 기사는 ‘0건’입니다. 리포트도 마찬가집니다. 무슨 이유일까요.

“1300만이면 성공?”…한국은 사람 수, 글로벌은 매출로 말한다

한국이 영화 흥행을 설명하는 방식은 글로벌 시장과는 다소 다릅니다. 관객 수로 설명하는 나라는 사실 한국 외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당장 미국은 박스오피스를 관객 수가 아닌 매출로 평가합니다. 보통 북미 1억달러(약 1500억원)를 흥행 기준선으로, 글로벌 10억달러(약 1조5000억원)를 메가 히트 기준으로 봅니다. 글로벌 박스오피스 기준으로 매출 10억~20억달러 구간엔 마블을 비롯한 대형 IP 기반 작품들이 대부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20억달러 이상 기록을 세운 영화는 ‘아바타’와 ‘어벤져스’, ‘스타워즈’ 정도에 부과합니다.

다른 아시아 국가를 봐도 미국과 비슷합니다. 일본은 100억엔(약 900억원대), 중국은 10억위안(약 2000억원 내외)이 하나의 흥행 기준점으로 사용 됩니다.

그렇다면 ‘천만 관객’은 매출 기준으로 어느 정도 규모에 해당할까요. 극장 티켓 가격을 약 1만5000원으로 단순 계산해보면, ‘왕사남’이 달성한 1300만 관객은 약 1950억원 규모 매출을 올리게 됩니다. 매점 매출 등을 포함하면 2000억원대 중반까지 확대됩니다. 북미 기준으로도 흥행을 가늠하는 매출 기준점은 뛰어넘었습니다. 천만이라는 숫자가 매출 규모로도 유의미한 기준점이라는 뜻이죠.

그럼 이 지점에서 질문이 생깁니다. 이 정도 규모라면 충분히 큰 시장인데, 왜 증시에서는 ‘수혜주’가 뚜렷하지 않을까. 관객 수 너머의 구조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의 배우 송강호(왼쪽)와 봉준호 감독. [연합]
영화 ‘기생충’의 배우 송강호(왼쪽)와 봉준호 감독. [연합]

히트작 나오고 급등株 나와도 ‘실적’은 글쎄

1300만. 숫자만 보면 거대한 시장입니다. 실제로 산업 전체로 발생하는 매출 규모도 상당합니다. 다만 국내 영화 콘텐츠 사업은 수익이 특정 기업의 이익으로 집중되는 구조가 아닙니다. 수익이 여러 주체로 나뉘면서 개별 상장사의 실적 개선으로 곧바로 연결되지는 않는 상황이 반복돼 왔습니다.

‘왕사남’을 사례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앞서 계산한 티켓 매출(약 1950억원)에 업계 관행을 적용하면, 절반가량은 극장이 가져가고, 나머지가 배급사와 제작사로 넘어갑니다. 이 과정에서 수익은 투자사, 공동제작사, 유통사 등으로 다시 나뉩니다.

여기에 제작비와 마케팅 비용도 몇백억씩 반영됩니다. 이 영화는 약 105억원이 투입돼 평균보다 낮은 편이지만 최근 한국 상업영화 제작비는 200억~300억원에 다수 포진해 있습니다. 통상 마케팅 비용으로도 50~100억이 빠져나갑니다.

내수용 영화로 최고 흥행 수준에 도달한 1300만 관객 기준으로도 제작사에 귀속되는 이익은 수백억원 수준에 그치는 구조 입니다. 이익이 특정 기업에 집중되지 않고 극장과 배급사, 제작사 등으로 분산되기 때문에 주가 반응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 화제작과 흥행작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수상 직후 제작사인 바른손이앤에이 주가가 급등한 전례가 있었죠.

해당 영화 개봉 전 1200원대에서 저점을 형성했던 주가가 수상 이후인 2020년 2월 14일 장중 6440원까지 급등했습니다. 영화 개봉일(2019년 5월30일) 주식을 샀다면 400% 넘는 수익률을 보게 되는 상황이었죠. 이후 주가가 상승분을 반납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기업 실적도 구조적으로 개선되지는 않았습니다.

‘파묘’ 흥행 때도 쇼박스, 덱스터, 위지윅스튜디오 등이 단기 상승 후 제한적인 흐름을 보이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이전 개봉작들로 누적된 만성 적자 등은 천만 영화 한 편의 흥행으로 역전되지 않습니다. 영화 산업으로 큰 돈을 벌기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로이터]
[로이터]

넷플릭스는 손 떼고, 파라마운트는 ‘올인’…피 튀기는 OTT 전국 시대

그렇다면 콘텐츠는 자본의 무덤일까요. 아닙니다. 글로벌 자본은 IP(Intellectual Property·지식재산)와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IP는 지식재산권입니다. 콘텐츠를 여러 번 판매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후속작, 리메이크, OTT 판권, 상품화로 수익이 이어집니다. 플랫폼은 이 IP를 반복 소비로 연결합니다. 가입자와 체류 시간을 기반으로 매출을 만듭니다. 글로벌 콘텐츠 시장의 OTT(Over-the-Top platform) 대어들은 IP와 플랫폼을 모두 장악합니다. 그래야 돈이 됩니다.

스트리밍 엔터테인먼트 1위 기업인 넷플릭스의 시총은 4000억 달러(약 600조원)이 넘습니다. 글로벌 시총 14위(19일 기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22위)를 제외하면 국내 기업 중 넷플릭스와 비교할 만한 체급의 상장사는 없습니다. 넷플릭스는 확실히 돈이 되는 사업 입니다.

이처럼 수익이 소수 플랫폼 기업으로 집중되는 이유는 구조에 있습니다. 콘텐츠는 한 번 제작되면 추가 비용 없이 여러 이용자에게 반복 판매가 가능합니다. 이때 가입자를 직접 보유한 플랫폼이 유통과 가격을 통제하면서 수익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구조가 형성됩니다. 여기에 규모 효과가 더해집니다. 가입자가 많을수록 콘텐츠 투자 여력이 커지고, 이는 다시 이용자 유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만들어집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의 파라마운트 스튜디오. [로이터]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의 파라마운트 스튜디오. [로이터]

반대로 일정 규모에 도달하지 못한 사업자는 콘텐츠 확보 경쟁에서 밀리며 점점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이 구조가 자본과 수익을 상위 플랫폼으로 집중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독주가 나머지 사업자들에게 ‘규모의 전쟁’이라는 압박으로 작용하는 이유 입니다.

OTT 시장은 콘텐츠 경쟁을 넘어 수백조원짜리 인수 합병을 통한 몸집 불리기가 진행 중입니다. 최근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WBD) 인수를 둘러싸고 넷플릭스와 경쟁한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가 대표적 사롑니다. 파라마운트는 파라마운트 픽처스(영화 스튜디오)와 파라마운트+(OTT 플랫폼)를 보유하고 있지만 콘텐츠 규모와 IP 경쟁력에서 넷플릭스와 디즈니 대비 열위 입니다. 이번 인수전은 이를 보완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됩니다.

미국 종합 미디어·콘텐츠 기업 WBD는 대형 IP를 한 번에 확보할 수 있는 매물이었습니다. 워너브라더스(영화 제작 스튜디오), HBO(미국 프리미엄 케이블 채널·콘텐츠 제작사), CNN(글로벌 뉴스 채널), 디스커버리(다큐·라이프스타일 채널)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IP 경쟁 속에서도 ‘재무 안정’과 ‘확장 투자’라는 전략은 갈렸습니다.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는 1100억 달러(약 159조원) 규모의 인수금액을 제안해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WBD) 인수를 사실상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파라마운트는 넷플릭스(가입자 3억명 이상), 디즈니+, 아마존 등에 이어 5위권에 머물러 있어 자체 IP 경쟁력만으로는 격차 축소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인수합병을 통해 부족한 IP를 단숨에 보강하고 시장 내 입지 확장하겠다는 전략입니다.

반면 넷플릭스는 이번 인수전에 파라마운트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하지 않겠다며 이탈했습니다. 이후 주가는 장중 약 14% 상승하며 대규모 인수에 따른 재무 부담을 피한 선택이 긍정적으로 반영됐습니다. 1위 사업자인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기존 IP를 기반으로 한 안정적 수익 구조를 유지하는 전략을 택한 겁니다.

다만 현지에서는 우려도 함께 제기됩니다. 스튜디오 수 감소는 제작 편수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며, 이미 약화된 시장 균형을 흔들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됩니다. 작품을 제작·유통할 수 있는 창구가 줄어들면서 콘텐츠 다양성이 위축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결과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전략이 유효했는지는 향후 가입자 경쟁과 수익 구조에서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 [tvn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록’ 갈무리]
영화 평론가 이동진. [tvn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록’ 갈무리]

‘작품성 VS 상품성’…상품이 된 영화 콘텐츠

한국 영화 시장은 오랫동안 관객 수로 흥행을 설명해왔습니다. 영화를 산업이기 이전에 문화 예술로 소비해 온 관점이 녹아든 계산법 입니다. 하지만 숏폼과 OTT 확산으로 콘텐츠 소비 방식이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짧고 직관적인 콘텐츠가 중심이 되면서, 해석과 맥락을 요구하는 문화 예술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습니다.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계급 우화(寓話)

영화 ‘기생충’에 대한 평론가 이동진의 한 줄 평.

2019년 영화 ‘기생충’ 개봉 당시 평론가 이동진의 한 줄 영화평. 이 표현은 작품성을 압축적으로 설명한 문장이지만, 당시 대중 반응은 “어렵다” “꼴불견”이라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영화에 대해 해석하고 토론하기 보다는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콘텐츠를 선호하는 대중의 기호가 드러난 장면 입니다.

유통 구조도 달라졌습니다. 극장 개봉 이후 OTT 공개가 일반화되면서, 콘텐츠의 수익 경로 역시 다층적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극장 성적만으로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결국 시장은 점점 더 명확한 기준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봤는지가 아니라, 그 소비가 어떤 방식으로 수익으로 전환되는지를 따지는 흐름입니다. 영화는 여전히 예술과 산업의 경계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투자 관점에서는 선택이 분명해집니다. 문화로 볼 것인지, 자본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해석과 판단은 달라집니다.


kace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