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출입은행(수은)이 중동발 충격으로 국내 주력 제조업 전반이 조업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유업계는 원유 도입 차질과 운송비 급등으로 이미 한계 상황에 몰렸고, 석유화학업계 역시 원료 공급 불안과 수익성 악화가 겹치며 가동 중단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산업 전반 동력이 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상황은 국가 비상사태에 가깝다.
31일 수은 해외경제연구소의 최근 이슈 보고서에 따르면 이런 위기는 이미 현실화 단계에 들어섰다. 특히 ‘산업의 쌀’로 불리는 나프타 공급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은 나프타 수요의 약 4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중동산 비중이 높다. 중동전이 장기화해 공급이 끊길 경우 에틸렌·프로필렌 생산 차질로 이어지고, 이는 합성수지와 플라스틱 등 전방 산업 전반으로 확산된다. 자동차는 내·외장재와 타이어 원가 상승으로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고, 반도체 역시 정밀 화학소재 조달 불확실성으로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다. 우리 경제 버팀목인 수출마저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여기에 2·3차 협력업체들이 원가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하면 산업 생태계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충격은 제조업을 넘어 건설과 농업으로 번지고 있다. 자재 가격 급등으로 건설현장은 멈춰 설 수밖에 없고, 중동 수주 의존도가 높은 건설사들은 공사 지연과 대금 회수 불확실성까지 겹쳐 유동성 압박이 불가피하다. 비료 원료 가격 상승은 농가 부담을 키우고, 이는 곧 농산물 가격 불안으로 이어진다. 장바구니 물가가 오르는 건 시간 문제다. 한마디로 복합위기다. 한국은 원유의 70%, 나프타 절반, LNG의 2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취약성에도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와 공급망 재편은 지지부진했다. 그나마 이번에 러시아로부터 나프타 2만7000t을 확보한 것은 다행이지만, 국내 월평균 사용량(약 400만t)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지금은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에너지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민간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대체 수입선을 확보하고 정부가 이를 전방위로 지원해야 한다. 원유와 LNG 확보, 해상 운송 리스크 완화 등 공급망 관리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원가 급등에 직면한 협력업체들에 대한 유동성 지원도 서둘러 벼랑 끝으로 내몰리지 않게 해야 한다.
속속 파업 결의에 나서고 있는 노동계도 사태의 심각성을 직시해야 한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노사 협력을 요청하며 “비상한 시기를 이겨내기 위해 갈등을 자제하자”고 한 것은 당연한 주문이다. 노사 갈등까지 겹치면 그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에너지 절약을 포함해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 위기를 넘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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