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 시대 불문 ‘걸작’ 재조명
‘나우시카’ 성공부터 ‘그대들은’까지의 궤적
“애니메이션은 어른 아닌 아이들 위한 것”
후계자 없는 지브리 “우는 소리 말고 전진”
‘취향의 발견’은 나도 몰랐던 나의 문화적 취향을 알려주는 코너입니다. 몰라도 상관없지만, 알면 의외로 도움이 되는 문화 상식을 친절하게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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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번복은 이제 없습니다.”
지난 2013년 9월, 72세의 노장은 결연한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서 은퇴를 선언했죠. 물론 그가 그 단어를 입에 올린 것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적어도 지금까지 세 번은 퇴장했는데 때론 겸연쩍게, 때론 아무렇지 않게 돌아와 다시 연필을 쥐었죠. 그렇기에 그의 ‘N번째’ 은퇴를 바라보는 혼란한 시선 앞에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이번에는 진짜입니다”.
약 3년여 후, 흰 수염의 ‘양치기 할아버지’는 이젠 익숙해져 버린 그의 ‘복귀’ 소식을 알립니다. “감독님은 거짓말쟁이예요.” 스튜디오 지브리의 대표이자 그의 오랜 벗인 스즈키 도시오가 더는 부정할 수 없는 농담을 던지자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렇게 말하죠.
“다시 하려는 이유? 그건 잊기 때문이지. 은퇴는 했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야.”
그렇게 기획부터 완성까지 7년이 걸린 미야자키 감독의 12번째 장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이하 그대들은)는 2023년 관객과 만났습니다. 애니메이션 거장이 모든 것을 쏟아부은 ‘라스트 댄스’와 같았던 이 영화는 이듬해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까지 수상합니다.
그 사이 미야자키는 여든을 훌쩍 넘겼습니다. 손으로 직접 작화를 이어가는 그의 방식은 젊은 창작자에게도 버거운 고된 노동이죠. 심지어 미야자키는 영화 한 편을 만들 때 원안과 그림 콘티, 레이아웃과 작화 등 모든 작업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때문에 “나이를 고려한 마지막 작품”을 만들겠다는 말처럼, ‘그대들은’은 정말 그의 마지막 장편이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극장가에서는 그가 ‘마지막’을 언급할수록 작품들은 다시 현재로 소환되는 ‘특이점’이 목격됩니다.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1984), ‘천공의 성 라퓨타’(1986), ‘모노노케 히메’(1997) 같은 지브리의 클래식 작품들이 다시 극장에 걸리고, 지난 15일엔 4K 리마스터링으로 돌아온 ‘마녀배달부 키키’(1989)가 개봉 당일 전체 애니메이션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죠. 아마도 인생의 종착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 미야자키 감독의 시간과 반대로, 관객의 시간은 오히려 그를 향해 되돌아오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키키 재개봉일에는 ‘그대들은’을 완성하기까지 미야자키 감독과 스튜디오 지브리의 여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도 국내 개봉했는데요. 이렇게 단순한 향수로는 설명되지 않는 반복된 ‘재소환’은, 문득 그들의 출발점과 궤적을 다시 짚어보게 만듭니다.
이번 ‘취향의 발견’에서는 다큐멘터리 개봉을 맞아 일본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인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튜디오 지브리에 관한 이야기를 해봅니다. 하나의 ‘기준’이자 ‘세계’가 된 지브리가 지난 40년간 지나온 궤적과, 오늘도 작업실에서 불꽃 같은 집념으로 연필을 쥐고 있을 ‘양치기 감독’에 대해서요.
“목덜미가 잡혀서 벗어날 수 없어”
은퇴 번복 후 ‘그대들은’의 작업에 돌입한 미야자키는 이 모든 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토로합니다. ‘영화’란 것에 목덜미가 잡혔기 때문에, 다시 연필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고요. 사실 그의 은퇴 번복의 가장 큰 이유는 오랜 시간 함께 작업한 채색 감독 야스다 미치요, 애칭 ‘얏짱’의 “살아있으니 계속 해야 한다”는 한 마디 때문이었다고 하죠.
1941년 도쿄에서 태어난 미야자키는 대학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했습니다. 일찍이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뒀던 그는 1963년, 토에이 동화에 입사해 작화 등의 기본기를 체득하기 시작하죠.
이 시기에 미야자키는 인생의 중요한 파트너를 만납니다. 바로 훗날 스튜디오 지브리의 공동 창립자가 되는 다카하타 이사오입니다.
1970년대 이후 미야자키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베테랑으로서 명성을 떨칩니다. ‘미래 소년 코난’과 ‘엄마 찾아 삼만 리’ 등의 인기 시리즈가 그의 손을 거쳤죠. 그리고 미야자키는 ‘루팡 3세’ 시리즈의 속편으로 첫 장편 영화를 만듭니다. 그것은 잡지 ‘아니메쥬’의 편집자였던 스즈키 도시오의 눈을 사로잡죠.
이후 스즈키는 편집부에 미야자키의 두 번째 장편 영화를 제작하자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회사는 “원작이 없는 영화는 성공할 리 없다”며 제작을 보류하죠. 이 상황을 전해 들은 미야자키는 스즈키에게 명쾌한 답을 내놓습니다. “그러면 원작을 그려버리면 되죠.” 그렇게 1982년 만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이하 나우시카)가 세상에 태어납니다.
만화는 이렇다고 할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미야자키가 감독하고, 다카하타가 제작을 맡은 이 영화는 대성공을 거둡니다. 미야자키는 ‘나우시카’의 흥행을 지켜본 당시 소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쨌든 이 영화로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영화를 제작할 기회가 다시 찾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말로 마음이 놓였습니다.” 지브리가 만들어지기 전에 성공한 지브리 영화는 이후 ‘스튜디오 지브리’ 탄생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죠.
‘나우시카’로 큰돈을 손에 쥔 미야자키는 기존 흥행작의 후속작을 만드는 ‘안전한 길’이 아닌 새로운 영화를 만들기로 합니다. 더 어린 층을 겨냥한 판타지 모험 장르를요. 그 기획은 하늘에 떠 있는 전설의 성 ‘라퓨타’를 둘러싸고 소녀 ‘시타’와 소년 ‘파즈’가 진실과 자유를 찾아가는 모험 이야기, ‘천공의 성 라퓨타’로 탄생합니다.
안정적인 장편 제작을 위해 미야자키와 다카하타, 그리고 스즈키는 출판사 도쿠마 쇼텐의 지원 아래에 직접 스튜디오를 차리기로 합니다. 이름은 ‘스튜디오 지브리(Ghibli)’. 비행기 애호가인 미야자키가 지중해를 가로지르는 따뜻한 사하라 바람을 뜻하는 ‘Ghibli’라는 이탈리아 군용 정찰기 이름에서 착안해 지은 이름이죠.
이 ‘지브리’라는 이름에는 비하인드가 있는데요. 사실 우리가 ‘지브리’라 부르는 단어의 실제 발음은 ‘기블리’입니다. 그래서 한때 ‘스튜디오 지브리’가 아니라 ‘스튜디오 기블리’가 맞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요. 여기에 대한 스즈키는 한 회고록에서 “‘지브리’가 아닌 ‘기블리’였어야 했다”면서 “하지만 바로 잡기에는 너무 늦었다”며 논란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잃어버린 것을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1986년 스튜디오 지브리는 두 개의 작품을 동시에 공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일상의 마법을 그려낸 ‘이웃집 토토로’와 전쟁의 비극 속 어린 남매의 이야기 ‘반딧불이의 묘’입니다. 미야자키와 다카하타가 각각 감독을 맡은 이들 영화가 동시 개봉이란 모험을 택한 것은 모회사가 ‘토토로’를 액션 활극이 아니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서인데요. 각 영화의 기획 의도에 대해 두 감독의 설명은 이랬습니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해서 어른들이 자신감을 잃었을 때 아이들만 활기가 찼습니다. 그런 영화를 해보지 않겠습니까?”(다카하타), “두 명의 어린 소녀가 숲의 정령과 우정을 나누는 모습을 통해, ‘우리가 그동안 잊고서 깨닫지 못한 것,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것’을 떠올리기를 바랐습니다.”(미야자키)
그리고 두 작품을 연결하는 카피는 이렇게 결정됩니다. “잃어버린 것을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미야자키 감독은 ‘토토로’의 제작이 끝나자마자 카도노 에이코의 아동 문학 ‘마녀 배달부 키키’를 각색해 다음 기획을 준비합니다. 어머니가 마녀인 13살 키키가 고향을 떠나 정착한 마을에서 빗자루를 타는 기술을 이용, ‘택배 배달부’로 일하며 성장하는 내용이죠. 미야자키는 감독 일지에서 이 작품을 통해 “지방에서 도쿄로 올라와 생활하는 우리 주위에 있을 법한 소녀들이 마주하게 될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또 이렇게 덧붙이죠.
“그림을 조금 잘 그리고 단순히 하늘을 잘 나는 것뿐, 그 정도의 재능은 누구나 갖고 있잖아요. 그러니 누구나 먹고 사는 것 아니겠어요?”
1989년 개봉한 ‘키키’는 관객 264만명을 동원하며 그해 개봉한 일본 영화 중 최고 흥행작에 오릅니다. 그리고 “하나의 스튜디오에서 제작할 수 있는 작품은 세 편이 한계”라며 ‘키키’ 완성 후 스튜디오를 해산하려 했던 미야자키는 애초의 계획을 변경, 대신 업계의 관행대로 계약직 능률급(업무량에 따라 급료를 지급)으로 고용했던 제작진을 고정급을 받는 정규직으로 전환합니다. 사회보험이 갖춰진 지브리의 정규직 제도는 당시 애니업계에서도 파격적인 행보였죠.
이후 새로운 정규직 채용을 위해 지브리가 공개한 한 만화에서, 아마도 미야자키 감독의 분신인 듯 보이는 돼지는 말합니다.
“저비용 품질의 임시방편으로는, 애니메이션 업계의 미래는 없습니다.”
“마음이 불편한, 이상한 세상을 선보일 때”
1989년 11월 70명의 정규직으로 꾸려진 스튜디오로 새출발한 스튜디오 지브리는 속도를 높입니다.
1991년 개봉한 ‘추억은 방울방울’은 그해 최고 흥행작에 이름을 올렸고, 여기에 ‘붉은 돼지’(1992), TV 스페셜 ‘바다가 들린다’(1993)가 잇따라 공개됐죠.
이어 히이라기 아오이의 동명 만화 시리즈를 각색한 ‘귀를 기울이면’이 제작에 들어갑니다. 소녀와 소년의 첫사랑과 성장 이야기를 다룬 소년 만화의 전형이죠. “동시대 청년들이 미래를 외면하고 살아갈 때, 더 멀리 바라보고 착실하게 살아가는 소년을 소녀가 만나면 어떻게 될까”란 물음에서 출발한 이 영화의 감독은 훗날 ‘미야자키의 후계자’로 기대를 받는 콘도 요시후미가 맡게 됩니다. (하지만 콘도는 1998년 40대의 나이로 운명을 달리합니다)
역시나 ‘귀를 기울이면’도 전작의 흥행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것이 미증류의 영화 ‘모노노케 히메’죠. 미야자키가 1980년대 TV스페셜용으로 기획했던 이 영화는 영묘한 동물 사슴신을 둘러싼 인간과 모노노케(원령)의 전쟁, 그리고 인간을 증오하는 소녀 ‘산’과 죽음의 저주에 걸린 ‘아시타카’의 만남과 해방을 엮은 시대 활극입니다.
‘모노노케 히메’를 관통하는 가장 큰 대립 구도는 자연과 문명입니다. 여기서 미야자키는 미술감독들에게 “인간이 없어도 곤란하지 않은 자연을 그려달라”로 주문합니다. 주요 무대가 되는 숲이 ‘보잘것없는 존재’가 되면 안 된다는 판단이었죠. 이를 위해 지브리의 주요 작품들을 뒷받침해 온 미술 감독들이 총출동합니다.
“지브리는 인간의 마음이 불편한 이상한 배경을 선보일 때가 됐습니다. 이대로 가면 지브리는 마음 편한 세상을 보여주는 존재밖에 되지 않아요.”(미야자키)
‘모노노케 히메’ 제작 과정에서 스튜디오에는 컴퓨터그래픽(CG)팀이 신설됩니다. 셀 애니메이션(투명 필름 위에 캐릭터와 움직이는 요소를 한 장씩 손으로 그려서 촬영하는 제작 방식)으로는 불가능한 표현을 구현하기 위해서인데요.
가령 아시타카의 오른팔에 달라붙은 재앙신 ‘뱀’은 손이 아닌 CG로 그린 다음 셀 셰이딩(명암을 단순화해서 표현하는 렌더링 기법)을 입힌 것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소프트웨어는 스튜디오 지브리와 마이크로소프트(MS)가 함께 개발한 것이었죠.
여기에도 비하인드가 있습니다. 원래 미야자키는 이 영화의 제목을 주인공의 이름을 딴 ‘아시타카 전기’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모노노케 히메’가 더 좋다고 생각한 스즈키가 먼저 제목을 대외적으로 공개해 버렸죠. 이유 중 하나는 미야자키 작품에 모두 ‘の(노, ‘~의’란 뜻)’이 들어간다는 ‘징크스’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징크스에서 벗어난 덕분인지, ‘모노노케 히메’는 1997년 개봉 이후 100억엔이 넘는 역대급 흥행 수익을 거둡니다.
“아이들은 바로 서서, 어른들은 쪼그려서 보세요”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에는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뚜렷한 선악 구도입니다. ‘센과 치히로’의 가오나시는 온순한 존재에서 탐욕스러운 괴물로 변화하고,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마녀는 결국 가족과 같은 존재가 되죠. 그리고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아이(들)입니다. 그의 작품세계는 아이들이 등장하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도덕적으로 명확히 선악을 구분 짓지 않는다는 두 가지 축을 따라가죠.
다큐멘터리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는 아이들을 위해 스튜디오 옆 공터를 ‘쿨하게’ 매입해 버리는 부자 할아버지(미야자키)가 나오는데요. 막상 아무도 뛰놀지 않는 공터를 보며 시무룩해하는 미야자키의 모습이 아이들에 대한 그의 마음을 느끼게 합니다.
2000년대에 들어 스튜디오 지브리는 미야자키 감독을 필두로 세 편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그리고 ‘벼랑 위의 포뇨’(2008)입니다. 세 편의 영화를 준비하며 미야자키는 ‘아이들을 위한 영화’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이야기하죠.
“아이들이 진심으로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보고자 다짐했습니다. 내가 만든 영화를 보고 아이들을 기쁘게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2001년 3월 ‘센과 치히로’ 제작보고회)
“아이가 성장하면 그저 시시한 어른이 될 뿐이지만, 그럼에도 아이는 언제나 희망이자, 좌절해 가는 희망의 영혼입니다. 답은 그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포뇨’ 기획 의도 중)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라퓨타’까지 더욱 거슬러 올라갑니다. “애니메이션은 무엇보다 아이들의 것입니다. 진심으로 아이들을 위한 것은 어른들이 감상하기에도 충분합니다. ‘소년 파즈’(‘라퓨타’ 이전의 제목)는 애니를 본래의 근원으로 돌리려는 계획입니다.”(책 ‘출발점 1979~1996’ 중)
애니메이션 연령층 확대의 핵심은 ‘아이들’에 있다는 그의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지난 3월 스튜디오 지브리는 미야자키의 새로운 프로젝트이자 그가 만든 ‘파노라마 박스’라는 작품을 언론 공개했습니다. ‘토토로’와 ‘센과 치히로’ 등 대표 캐릭터의 오리지널 일러스트를 박스 안에 3차원으로 구현한 이 작품의 주요 관객은 아이들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는 작품 공개 당시 “아이들은 똑바로 서서 파노라마 박스를 잘 볼 수 있지만, 어른들은 약간 쪼그려 앉아야 한다”고 설명했는데요. 자신의 작품을 보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미야자키는 이렇게 말했다죠. “아이들을 위한 지브리가 돌아왔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미야자키는 자신의 10번째 장편인 ‘포뇨’에 이어 5년 만에 자신이 그린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바람이 분다’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2013년 ‘진짜 은퇴’를 선언합니다. 이후 상황은 앞서 언급했듯 은퇴 번복과 7년여가 걸린 역작의 탄생으로 이어지는데요.
고령인 미야자키의 은퇴 선언이 단지 언젠가는 ‘거짓말’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위기감이 높아진 것은 ‘그대들은’이 완성된 후였습니다. 영화를 제작하는 동안 다카하타를 비롯해 지브리 원년 멤버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나버렸기 때문입니다. 친우들의 죽음 곁에서 작품을 이어가던 미야자키는 말합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죽음을 맞을까가 문제야.”
지브리 성공의 상당 부분은 미야자키 덕분임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지브리의 정체성이죠. 심지어 다카하타가 세상을 떠난 지금, 그의 뒤를 이을 후계자는 여전히 없는 상태입니다. 미야자키의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방법도 고려됐지만, 결국 지브리는 ‘리더십 불안’을 극복하지 못하고 지난 2023년 니혼TV에 인수됐죠. 다음 세대의 부재는 ‘지브리’와 ‘미야자키’의 가장 큰 패착으로 거론됩니다.
롤랜드 켈츠 와세다대 객원 교수는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지브리가 미야자키와 다카하타가 더 이상 현장을 이끌지 않는 상황을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다”면서 “미야자키는 매우 경쟁적인 사람이고, 이것이 지브리가 후계자를 제대로 키우지 못한 이유 중 하나”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경영을 맡게 된 니혼TV가 미야자키를 이을 신세대 감독 육성이란 과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입니다. 가장 숙제는 CG를 일부 빌리더라도, 그 중심에서 ‘손작업’을 고수해 온 지브리의 철학을 실현할 인재를 키우는 것인데요. 가장 최근작인 ‘그대들은’도 모든 장면을 손으로 그린 작품이죠. 한 마디 명령만으로 ‘지브리식’ 작화를 쏟아내는 인공지능(AI)의 시대에, 이러한 지브리식 수작업 애니메이션을 이어갈 인재를 순조롭게 발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다행인 것은 미야자키가 여전히 작품 활동에 대한 의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미야자키가 ‘귀멸의 칼날’과 ‘너의 이름은’의 성공 이후 더 좋은 작품을 내놔야한다는 ‘경쟁심’이 더 강해졌다는 후문도 있죠.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미야자키는 아직 도쿄 근교의 작업실을 떠날 준비가 돼 보이지 않는다”며 마지막 장편 이후의 근황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공개된 ‘파노라마 박스’도 그의 상상력과 창의력의 건재함을 보여줍니다.
다큐멘터리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후반부에서도 미야자키는 은퇴에 대한 고민을 더 이상 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우는 소리 하지 말고 전진하라.” ‘얏짱’의 메시지가 다시 한번 그를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미야자키의 새로운 걸작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다큐멘터리 막바지, 치열한 작업을 끝내고 남긴 82세 미야자키의 짧은 한마디로 40년에 걸친 연대기의 마무리를 대신합니다.
“마지막에 이 이야기를 꼭 해줘. 결코 흉내 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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