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이 통일 목표를 삭제하고 현재 북한지역을 영토로 규정하는 헌법개정을 통해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헌법화했다. 남북한은 마치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처럼 모순관계다.
그러나 별개의 전혀 다른 존재라기보다는 이상의 시 ‘거울’처럼 서로가 비친 모습과 같은 존재다. 서로 반대지만 꽤 닮았다.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귀가 있고 내 악수를 받을 줄 모르는 왼손잡이”일 뿐이다.
남북한은 최근 이코노미스트지의 ‘두 브라질 이야기’가 묘사한 브라질의 남북지역 차이보다는 훨씬 동질적이다.
남북한은 별개 국가로 행동하면서도 통일을 지향하는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를 주장해왔다.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의 ‘7·7 선언’은 헌법상 한반도는 ‘하나의 국가’이지만 ‘사실상 두 국가가 존재한다’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었다. 1991년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은 그런 현실을 서로 추인한 셈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조선은 하나’라는 적화통일 이념에 집착해왔다. 따라서 ‘두 국가론’을 헌법에 명시한 것은 중대한 변화다. 북한 개정헌법에 따르면 통일 시도 자체가 국가 간 침략이 될 것이고 핵 무력 위협은 방어 목적으로 합리화된다. 흡수당하는 통일을 피하고 체제만 유지하겠다는 속내로 읽힐 수 있다.
남북관계의 법적 모순은 단순한 명칭 문제는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언급하는 미국, 중국, 영국 등 국명은 공식 명칭이 아닌 통칭이다. 남한·북한은 남측의 통칭이고 북측 표현으로는 남조선·북조선이다. 영어 표기는 ‘South·North Korea’로 똑같은 ‘Korea’다. 물론 유엔 등 공식 문서에는 대한민국(ROK),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이라는 공식 명칭이 사용된다.
북한의 진짜 의도는 한국을 상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1994년 한국 정부가 김일성 조문을 불허했다는 이유로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 시까지 6년간 한국의 존재를 아예 부정했다. 대남사업을 담당하는 북한 관료들은 남북관계의 부침에 따라 목숨이 왔다갔다했다. 적대적 두 국가론에 김정은을 포함한 북한 권력계층의 생사가 걸려 있을 테니 모두에게 안전하게 헌법에 새겼을 것이다. 북한이 남한보다 먼저 나름의 법적 정비를 한 셈이다. 북한은 논리와 법으로도 무장했다.
사실 ‘남북 한 국가론’은 국제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남북 간 국제법은 물론 어떤 법규범의 적용도 불가능하게 한다.
17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북한의 내고향여자축구단 일행은 남북한이 이제까지 사용해오던 방문증명서 대신 여권을 제시했다. 한국 정부는 그 여권으로 신분만 확인하고 비자 발급 없이 입국시켰다. ‘남북관계의 법적 모순’을 얼버무린 것이다.
필자의 지인인 한 공법학자의 견해에 따르면 헌법개정 없이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 개정만으로도 이러한 불편한 현실을 정리할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북한 외무성처럼 외교부에 북한 담당부서를 신설하거나 북한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무상원조사업 대상국에 포함하는 것도 우회적인 방편이다.
문제의 본질은 헌법 존중을 전제로 원칙과 현실을 조화시키는 지혜를 찾는 것이다. 외교는 국력을 기반으로 개념과 법, 그리고 명분을 이익에 맞게 활용하는 기술이다. 평화를 외치면서도 동시에 남한의 강한 힘을 북한에 인식시키는 것이 곧 북한의 문을 여는 외교 역량이다.
이현주 전 외교부 국제안보대사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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