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대 전기가 산업의 혈액이라면 발전시설은 심장이고 전력망은 혈맥, 혈관이다. AI 확산으로 인해 에너지 수요가 폭증했지만, 송전망 부족으로 전력 공급 확대가 지체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탄소중립 관련 글로벌 규제가 강화되면서 재생에너지 보급이 국가경쟁력과 경제안보를 좌우하는 핵심 과제로 떠올랐으나, 턱없이 부족한 송전망이 전력 공급과 자본 투자, 발전 증설을 저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7일 ‘재생에너지의 효과적 보급 확대를 위한 정책과제’ 보고서에서 송전망 확충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발전·송전 시설을 둘러싼 사회 갈등 해결을 기반으로 재생에너지산업의 안정성·수익성 제고와 투자 확대가 이뤄져야 한다는 제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23년까지 20년간 국내 발전설비는 154% 늘었으나 송전망은 26% 확충에 그쳤다. 입지 선정, 주민 수용, 인허가 등 단계마다 번번히 지연된 결과다. 특히 재생에너지의 경우 태양광은 한낮, 풍력은 바람부는 시간에 집중되고 발전지(남부·서남해안)와 소비지(수도권)도 어긋나는 수급상의 시·공간적 불일치가 빚어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송전망 뿐 아니라 분산에너지(전력 생산·소비지의 근거리화)와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필요한데, 이를 유인할 정책(지역별 가격제, 지역별 차등요금)이 미비하다. 이는 재생에너지 산업의 수익 예측성과 자본조달을 어렵게 한다. 사업자들이 증설이나 시장 신규 진출을 꺼리고 금융기관은 투자·대출 비용을 높인다는 얘기다.
KDI의 분석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재생에너지사업자에 지급하는 정부보조금 1원당 사회적 편익은 태양광이 1.33원, 육상풍력이 1.18원으로 미국(태양광 3.50, 풍력 5.21)에 비해 한참 낮다. 송전망의 입지·인허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 근거는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지역별 차등요금제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등 현행법에 근거가 있으나 기피시설 입지와 관련한 사회 갈등의 실효적 해결과 가격 정책의 정교화 및 전국적 적용엔 한계가 크다.
여야와 국회가 나서서 정부와 해결할 과제가 많다. 현행법은 송·변전망 확충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발전부터 에너지저장·수요관리·데이터센터까지 전력계통으로 포괄하는 보완 입법과 정책이 필요하다. 재생에너지 보조금 정책을 ‘보급량 중심’에서 ‘전력계통 기여 중심’으로 하는 개편도 검토해야 한다. 주민 참여와 수용성을 위한 ‘지역 이익공유·보상 체계’의 합리화와 법제화가 더 보강돼야 한다. 갈등을 조정·해결하고, 자원을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라는 점을 여야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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