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후면 크로아티아에서의 3년 근무를 마친다. 많은 한국인에게 크로아티아는 아드리아해와 두브로브니크가 먼저 떠오르는 아름다운 관광지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현장에서 지켜본 크로아티아는 관광국을 넘어 유럽의 물류와 에너지, 첨단산업을 연결하는 전략 거점으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었다.
크로아티아는 서유럽과 동유럽의 경계에서 독자적인 생존 전략을 선택해 온 국가다. 유고 연방 시절과 독립전쟁, 산업 붕괴를 거쳐 유럽연합(EU) 가입과 유로존, 셍겐 가입을 이뤄냈다. 최근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도 추진하고 있다. 작은 경제 규모에도 유럽 통합과 산업 전환을 매우 압축된 시간 안에 추진하고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2023년 여름 처음 자그레브에 부임할 때만 해도 생필품이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에 컨테이너를 가득 채워 왔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유로존과 셍겐 가입을 마친 크로아티아는 예상보다 훨씬 안정된 생활 인프라를 갖추고 있었고 대형 유통망도 촘촘했다. 반면 유로화 도입 이후 높아진 물가는 국경을 넘어 장을 볼 정도로 생활비 부담을 키웠다.
산업 구조도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많은 국영기업이 사라지며 전통 제조업이 영향을 받는 가운데, 첨단 제조·서비스 산업이 부상하고 있다. 조선은 선박 수리와 요트 등 특화 분야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 관광은 핵심 산업이지만 과잉 관광과 계절성이라는 한계도 안고 있다. IT와 스타트업은 가장 역동적인 분야다. 크로아티아를 대표하는 기술 기업인 인포빕, 리마츠, 소파스코어는 작은 시장도 기술과 혁신으로 세계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물류와 에너지 분야에서도 변화는 뚜렷하다. 리예카항은 머스크의 투자로 현대화가 본격화했고 철도망 확충과 함께 중부유럽을 연결하는 물류 관문으로 도약하고 있다. 크르크 LNG 터미널도 처리 능력을 두 배 이상 확대하며 중부·동남부 유럽의 에너지 허브로 자리 잡고 있다. 관광국으로 기억되던 크로아티아가 이제는 유럽 공급망과 에너지 안보를 연결하는 국가로 변모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국가 산업개발계획안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EU가 공급망 안정과 제조업 경쟁력 회복을 핵심 과제로 내세우자 크로아티아도 스마트 제조와 인공지능(AI), 배터리, 수소, 방산 등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는 중장기 계획을 내놓았다. 관광 중심 경제에서 제조업과 첨단산업을 강화해 EU 전략산업 공급망의 한 축이 되겠다는 목표다.
3년 전 혹시 필요한 물건을 구하지 못할까 걱정하며 컨테이너를 가득 싣고 크로아티아에 왔다. 그러나 떠나는 지금, 크로아티아는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드나드는 항만과 에너지 허브를 갖추고 유럽의 새로운 산업지도를 그려가고 있다.
인구 400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국가지만 변화의 속도와 방향만큼은 절대 작지 않았다. 시장의 크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변화의 방향이다. 앞으로 우리 기업은 크로아티아를 작은 내수시장이 아니라 유럽 공급망과 산업 협력의 새로운 거점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윤태웅 코트라 자그레브 무역관 관장
ey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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