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건 특징주 기사 이용해 85억원 부당이득

기사 대가 수수·차명계좌·범죄수익 은닉까지

회계사 A, 기자 B, C의 SNS 대화방. 이들은 특징주 기사가 준비됐다는 뜻으로 ‘ㄹㄷ(레디)’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서울남부지검 제공]
회계사 A, 기자 B, C의 SNS 대화방. 이들은 특징주 기사가 준비됐다는 뜻으로 ‘ㄹㄷ(레디)’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서울남부지검 제공]

[헤럴드경제=전새날 기자] 기자를 매수해 특징주 기사를 이용한 선행매매로 85억원이 넘는 부당이득을 챙긴 투자자문업체 대표와 경제매체 전·현직 기자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기사 송출 권한을 이용해 홀로 선행매매를 벌인 현직 경제신문 기자도 함께 기소됐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부장검사 김태겸)는 29일 회계사 출신 유사투자자문업체 대표 A씨와 경제매체 기자 7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서로 공모해 선행매매를 벌여 부당이득을 취득한 혐의 등(자본시장법 위반·배임수증재 등)을 받는다. A씨와 기자 2명은 구속상태로 재판을 받게 됐다.

이들 무리와 별도로 단독으로 선행매매 수법으로 약 7억4000만원의 차익을 얻은 기자 H씨는 자본시장법 위반과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A씨와 일부 기자들은 2020년 10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약 4년 8개월 동안 총 1800여 건의 특징주 기사를 부적절하게 발행하고 선행매매 수법으로 개인적인 수익을 거뒀다.

이들은 거래량이 적거나 주가 변동성이 큰 중소형주와 테마주를 미리 선정해 매수한 뒤 해당 종목을 ‘특징주’로 다루는 기사를 각 매체를 통해 배포했다. 특징주 기사는 증권사 HTS·MTS 같은 주식 트레이딩 시스템과 포털 등을 통해 투자자들에게 실시간으로 확산하고 시세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노렸다. 또 신속성이 요구되는 기사 특성상 기자가 직접 송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구조를 악용해 기사 배포 시점을 미리 공유하고 선행매매를 반복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이 작전 대상으로 삼은 종목들은 특징주 기사로 다뤄진 뒤 일반 투자자들이 매수하며 주가가 상승했고, 일당은 이 시점에 보유 주식을 매도해 시세차익을 챙겼다.

검찰은 이 같은 방식으로 A씨 일당이 모두 85억5000만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취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기자들의 ‘선행매매 네트워크’

선행매매 네트워크 구조 [서울남부지검 제공]
선행매매 네트워크 구조 [서울남부지검 제공]

범행은 회계사 출신인 A씨가 평소 알고 지내던 경제매체 기자 C씨와 공모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소개가 이어지면서 가담하는 이들이 늘었다. A씨는 기사 1건당 30만원을 지급하는 조건을 제시하며 기자 B·D·F씨를 차례로 끌어들였다. 이후 B씨가 다시 기자 E씨를 포섭하면서 모두 5명의 경제매체 기자가 범행에 가담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이들이 범행을 공모했던 텔레그램 대화방에서는 당시 시장 이슈와 정치권 일정을 공유하며 기사화할 종목을 찾았다. 검찰이 확보한 대화에는 “소형주로 가면 잘 먹힌다”거나 대선 후보 일정 변화에 맞춰 관련 종목을 논의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대상 종목이 정해지면 A가 기사 초안을 작성해 기자들에게 전달했고 기자들은 기사 송출 시점을 미리 알려줬다.

특히 기사가 나가기 직전에는 ‘ㄹㄷ(레디)’라는 신호를 보내 공범들에게 매도 준비를 하도록 했다. 검찰은 이 신호를 받은 공범들이 기사 송출과 동시에 매도했고 실제 기사 배포 직후 해당 종목의 거래량과 주가가 급등한 사례를 다수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기사 제목도 투자자의 시선을 끌도록 의도적으로 작성됐다. 금융감독원 특별사법경찰은 일부 기사가 특정 기업이 직접 신기술을 개발한 것처럼 오인할 수 있는 제목을 달아 HTS 화면에서 제목 앞부분만 보고 투자하는 심리를 노렸다고 설명했다. 실제 기자들이 제목을 수정하려 하자 총책 A가 강하게 반발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피고인 B가 A명의 체크카드로 현금을 찾아간 직후 본인 계좌로 해당 현금을 입금하는 모습 [서울남부지검 제공]
피고인 B가 A명의 체크카드로 현금을 찾아간 직후 본인 계좌로 해당 현금을 입금하는 모습 [서울남부지검 제공]

검찰은 보완수사 과정에서 기사 배포의 대가로 실제 거액의 금품이 오간 사실(배임수재·청탁금지법 위반)도 확인했다. 기자 E·D·F씨는 총책 A씨로부터 적게는 2800만원, 많게는 1억5000만원을 받았다. 이들은 현금을 주고받은 내역을 최대한 숨기려는 의도에서 A씨의 실물 체크카드를 받아 ATM에서 직접 돈을 찾아가거나 헬스장 사물함에 둔 현금을 나중에 찾아가는 방식을 썼다. 검찰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기사 건수에 30만원을 곱해 지급액을 계산한 정산 문서도 확보했다.

단독범행을 벌인 H씨 역시 자신이 직접 작성한 특정 종목 관련 기사를 내기 전에 해당 종목을 사둔 뒤 기사를 배포하고 나서 주가가 오르면 매도했다. 그는 금융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지인 명의의 차명 증권계좌를 이용해 약 5억5000만원 상당의 범죄수익을 은닉한 혐의도 받는다.

지난 6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관계인 재조사와 텔레그램 대화 분석, 언론사 압수수색 등 보완수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일부 기자가 특징주 기사 배포 대가로 현금을 받은 정황을 확인해 B씨와 E씨를 추가 구속했다.

일부 피의자들은 압수수색 이후 급하게 부동산을 처분하거나 배우자 명의로 재산을 이전했다. 검찰은 이게 추징을 회피하려는 의도로 보고 새로 취득한 부동산과 금융자산 등을 추가로 추징보전 신청해 범죄수익 환수 절차도 벌였다.

검찰 관계자는 “주식시장을 교란하는 금융·증권 범죄에 엄정 대응하는 한편 범죄수익도 끝까지 추적해 박탈하겠다”고 밝혔다.


newda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