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 지방이전 경계론 확산
핵심 기능 상당 부분 혼선 불가피
금감원 검사 대상 88%가 수도권
산은·수은·기은 정책금융 저하 우려
금융중심지 경쟁력 위축, MSCI도 난망
일본·영국·미국·독일은 중심지 지켜
[헤럴드경제=박혜림·서상혁 기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국책은행 등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두고 각 기관 핵심 금융 기능이 상당 부분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분만으로 기관을 일률적으로 옮길 경우 감독·위기대응부터 벤처·첨단산업 투자, 기업 구조조정, 수출금융까지 주요 금융회사와 투자자, 해외기관 등과 수시로 접촉해야 하는 업무에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정부가 서울 등을 중심으로 추진해온 금융중심지 경쟁력 강화 정책과도 엇박자를 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당초 이날 국무회의 상정 가능성이 거론됐던 금융위 등 중앙행정기관 지방이전 방안은 최종 안건에서 빠진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정부 안팎에서는 금융위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 서울 소재 중앙행정기관의 지방이전 방안이 이날 국무회의에서 다뤄질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금융권에서는 최근 지방이전을 둘러싼 반발이 커진 데다 관계기관 간 의견 조율도 마무리되지 않으면서 정부가 일단 속도 조절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최근 각종 정책 현안을 둘러싼 여론 부담 속에서 추가적인 잡음을 서둘러 만들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풀이도 제기된다.
다만 이전 논의 자체가 중단된 것은 아닌 만큼 금융권의 긴장감은 이어지고 있다. 금융회사 본점과 투자자, 법무·회계법인, 글로벌 금융기관 등 관련 인프라가 서울·수도권에 집중된 상황에서 기관만 떨어뜨려 놓을 경우 출장과 협의가 오히려 늘고 의사결정 속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게 금융권의 우려다.
▶검사 대상·채권단·투자자 수도권에…본점 옮겨도 다시 ‘서울행’= 금감원의 검사·감독 업무부터 수도권 의존도가 높다. 국내 금융회사 본점의 91.6%, 금감원 현장검사 대상의 88.3%가 수도권에 있다. 올해 예정된 현장검사는 707회로 투입 규모는 연인원 2만8229명이다. 지방이전이 이뤄지더라도 검사 대상 금융회사는 그대로 남는 만큼 검사 인력의 서울 ‘역출장’이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시장에 충격이 발생했을 때는 물리적 거리가 대응 속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감원과 예금보험공사 노조는 “금융위기에는 ‘골든타임’이 존재한다”며 “분초를 다투는 신속성이 생명인 위기 대응의 순간에 기관 간의 물리적 거리는 곧 의사결정의 지연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산업은행도 기업 구조조정과 첨단·벤처 투자 과정에서 금융회사와 기관투자자 등 민간과의 협업이 잦다. 산은 노조 관계자는 “2년 전에 태영건설 워크아웃 TF때만 해도 400여개 채권단과 유관기관이 산은에 모여서 의사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200조원 규모 국민성장펀드까지 역할이 확대됐다. 산은은 지난해 혁신성장 분야에 45조2000억원을 공급하고 5조8000억원 규모의 신규 펀드 조성을 추진했다. 이 관계자는 “국민성장펀드도 시중은행을 비롯한 민간투자자 수시로 미팅이 필요하고 투자 심사도 민간 위원들이 수시로 모여서 진행해야한다”며 민간 금융회사와 투자자가 밀집한 서울에서의 접근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기업은행도 중소기업 금융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만큼 이전에 따른 업무 효율 저하를 우려하고 있다. 올해 6월 말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270조원으로 전체 대출의 83.4%를 차지하고, 지난해 말 기준 중소기업대출 시장점유율은 24.4%로 국내 은행 가운데 가장 높다. 특히 국내 영업점 629곳 가운데 427곳(67.9%)이 서울·경기·인천에 몰려 있어 수도권 영업망과 본점 간 연계가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출입은행은 해외 금융·외교 네트워크가 서울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고객의 43%, 여신의 52%가 해외에서 발생하는 가운데 해외 정부·공기업·국제금융기관 등 59개국 179개 기관과 협력하고 있다. 국내 주재 대사관 118곳은 모두 서울에 있고 국제기구 30곳 중 27곳도 수도권에 있어 수은은 이들과 연평균 약 1140회의 대면 면담을 진행한다.
외화조달 역시 서울 금융 인프라와 맞물려 있다. 수은은 국내 외화대출의 약 40%를 공급하고 있으며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투자은행(IB) 33곳도 모두 서울에 자리 잡고 있다. 해외 투자자·IB와의 채권 발행 및 자금조달 협의에서 서울 접근성이 중요하다는 게 수은 노조 측 설명이다.
▶서울 8위·부산 23위 올라섰는데…금융허브 전략과 ‘엇박자’ 우려= 금융권에서는 기관을 지역별로 분산하는 방식이 정부가 장기간 추진해온 금융중심지 전략과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정부는 2009년 서울과 부산을 금융중심지로 지정한 이후 3년 단위 기본계획을 마련해 금융회사와 관련 기관을 집적하고 해외 금융기관과 투자자 유치를 추진해왔다. 서울은 종합금융중심지, 부산은 해양·파생금융 등을 중심으로 한 특화 금융중심지로 육성하는 방식이다.
그동안 금융중심지 순위도 상승했다. 영국 지옌그룹과 중국종합개발연구원이 지난 3월 발표한 제39차 글로벌금융센터지수(GFCI)에서 서울은 세계 8위, 부산은 23위를 기록했다. 금융위 역시 당시 이를 한국의 금융중심지 위상이 높아진 결과로 평가하고 글로벌 금융기관의 국내 투자 확대와 MSCI 선진국지수 편입을 위한 제도 개선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도 지난 3월 ‘한국 금융허브 추진전략’을 내놓고 글로벌 금융기관의 한국 투자 확대를 위해 규제 투명성, 시장 접근성, 글로벌 금융시스템과의 연계 강화 등 39개 개선 과제를 제시했다. 이후 금융위원장과 경제부총리 등을 만나 관련 정책 방향을 논의하기도 했다.
주요국의 금융감독 체계 역시 기관 전체를 한곳에 모으는 단일한 형태는 아니지만 핵심 금융시장과 연결되는 거점은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 금융청(FSA)은 도쿄에 있고 영국 금융행위감독청(FCA)은 리즈와 에든버러 등에 사무소를 두면서도 본부는 런던에서 운영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워싱턴DC에 본부를 두되 뉴욕을 포함한 지역사무소에서 검사·조사 업무를 수행한다. 독일 연방금융감독청(BaFin)은 본과 프랑크푸르트에 거점을 두고 있으며 증권감독·자산운용 업무도 프랑크푸르트에서 수행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금융기관을 지역별로 흩어놓는 방식이 오히려 이 같은 금융클러스터 육성 기조를 약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중심지 같이 금융권 클러스터를 만드는 게 아니라 지금 논의되는 방향처럼 중구난방식으로 금융회사를 배치할 경우 외국계 바이어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나”라며 “사업 효율이 극심히 저해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아직 이전 여부가 결정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전날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금융위와 금감원의 지방이전과 관련해 “아직 확정된 게 없다”며 “국토교통부에서 실제 준비 중에 있다는 보도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여러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노조는 “아직 정부로부터 공식 입장 전달 받은 것은 없어서 노조 입장이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다”라며 “계속해서 논의 경과를 지켜보고 대응방안을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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