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의 배터리 사업은 기술보다 자본조달 경쟁의 성격이 강해졌다. SK이노베이션에서 해당 사업부를 물적분할한 SKIET와 SK온을 상장해 시장에서 투자자금을 조달하려 했다.

S☞ KIET 공모자금은 LG와의 뜻밖의 분쟁에 소모됐다. SK온 상장은 LG엔솔 논란 때문에 때를 놓쳤다. 전기차 캐즘까지 겹치면서 SK온은 고전했고, SKIET도 허우적됐다.

☞ SK이노베이션은 비상장인 SK온 살리기에는 현금은 물론 알짜 계열사를 떼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반면 상장사여서 외부주주가 있는 SKIET는 최저가(?)로 합병한 후 지원하기 했다.

☞ 2021년 상장 때 가장 큰 돈을 번 곳은 SK이노다. 이번 합병으로 가장 큰 손해를 본 이들은 상장 당시 SK이노의 수익원이 된 SKIET 투자자들이다. SK이노와 이들은 남이다. 사업이 잘 되고 말고는 여러 요인이 결정하지만, 어려울 때의 생사는 지배구조가 결정한다.

☞ 이번 합병은 중복상장의 구조적 이해충돌을 다시 보여준다. 자회사와 모회사 주주가 다르다면 주주와 주인은 다르다. 물론 지배구조에 따라 한 회사 내에서도 그럴 수 있다.

주주는 모두 같을까? 주주라도 다 다를까? 가설로 시작해보자.

‘주주가 주인은 아니다(?)“

SK의 사례로 검증을 해보자. 마침 SK그룹이 최근 ‘중복 상장’ 성공의 대표 사례였던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를 애초 모기업이던 SK이노베이션과 합병하기로 했다. 분리막 사업 정상화를 위한 부득이한 선택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SK이노베이션 주주 입장에서는 떼어 갈 때는 서운했는데, 이제 다시 들어온다고 하니 불안하다. SKIET 주주는 도움은 반갑지만 하필 주가가 바닥일 때 합병을 택한 게 불만일 수 있다. 얼마전 솔리다임 ‘4중 상장’ 가능성을 점검했을 때 확인했다. 중복 상장은 주주간 이해 충돌로 이어지기 쉽다. 이번도 그 경우다.

SK그룹의 이번 선택을 이해하려면 2차 전지, 즉 배터리 역사를 읽어야 한다.

21세기 SK 배터리 역사 최대 전환점 SKIET

SK의 배터리 사업은 기존 주력인 에너지·화학에서 파생됐지만 뿌리는 오래됐다. 1982년 최종현 선대회장이 석유 이후의 미래 사업으로 ‘에너지축적 배터리 시스템’을 제시했고, 1996년 리튬이온전지 연구에 들어갔다. 2000년대 들어 전기차 시대가 가시화되자 그룹 차원의 미래 먹거리로 격상됐고, 2012년 서산에 첫 양산공장을 세웠다.

2017년부터 SK는 배터리를 ‘딥 체인지(Deep Change)’의 핵심 성장사업으로 정하고 글로벌 생산능력을 공격적으로 확대했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을 선점하려면 경쟁사보다 먼저 공장을 지어야 했다. 결국 배터리 사업은 기술 경쟁보다 자본조달 경쟁의 성격까지 띠기 시작했다.

2019년 4월 SK이노베이션은 소재 사업 부문을 물적 분할해 SKIET를 설립했다. 스마트폰, 노트북, 전기차 등에 들어가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소재 중 하나인 분리막 사업을 주력으로 했다. 전기차 수요가 팽창하면서 SKIET는 2020년부터 매출과 영업이익이 급증하기 시작했고 2021년 유가증권시장 상장에 성공했다.

공모 규모만 2조원이 넘었다. 공모가는 10만5000원으로 공모희망가격(7만8000원~10만5000원)의 최상단이었다. 추정된 시장가치(EV)는 7조5000억원으로 세전영업이익(EBITDA)의 48배가 넘었다.

분리막 사업 육성을 위한 자금조달이 명분인 상장이었지만 전체 공모 물량의 60%가 SK이노베이션이 보유했던 주식을 파는 구주 매출이었다. 그 결과 SK이노베이션이 SKIET보다 더 많은 1조3000억원의 현금을 손에 쥐게 됐다. SK이노베이션은 왜 이 돈이 필요했을까?

2019년 4월 LG화학은 영업비밀 침해를 이유로 SK이노베이션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했다. 분쟁은 2021년 4월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2020년 LG화학에서 물적분할)에 2조원을 지급하기로하면서 마무리됐다. 거액의 합의 배경에 불과 열흘 전 확정된 SKIET 구주 매출 계획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필사적 구출작전SK 배터리 적장자 悲運의 SK온

SK이노베이션은 SKIET 기업공개(IPO)와 거의 동시에 배터리 부문을 물적분할해 SK온을 설립하기로 했다.

SK온은 설립과 함께 투자대금 마련을 위한 상장을 추진했지만, 2022년 초 LG에너지솔루션의 중복 상장 논란으로 계획을 연기해야 했다. 대신 대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2022년 IPO를 염두에 둔 재무적투자자(FI)가 8243억원, 최대주주인 SK이노베이션이 2조원을 출자했다. 돈에는 꼬리표가 없다. SKIET 상장으로 확보한 자금이 없었다면 이때 SK이노베이션이 거액을 출자하기는 쉽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SK의 배터리 사업은 쉽지 않았다. 설비투자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고, 중국과 치열한 가격 경쟁을 벌여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캐즘(chasm)으로 수요까지 곤두박질쳤다. SK이노베이션은 SK온 정상화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2024년에도 1조5000억원을 출자했고, 2025년에는 FI들이 보유한 전환우선주를 3조5880억원에 다시 사들였다. 2025년 성공한 2조원의 3자 배정 증자도 주가수익스와프(PRS) 방식이어서 SK이노베이션이 투자손실 보전 책임을 져야 한다. 회계상으로는 자본 확충이지만 사실상 SK이노베이션이 보증을 선 대출이다.

SK이노베이션은 이도 모자라 보유했던 알짜 계열사를 통째로 SK온과 합쳐서 자본과 수익을 강화했다. 2024년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SKTI), 2025년 SK엔무브다. 석유 트레이딩 기업인 SKTI는 2023년 자기자본 1조1278억원, 매출 49조원, 순이익 5463억원을 기록한 알짜다. 윤활유를 만드는 SK엔무브도 2024년 자기자본 1조7448억원, 매출 5조원, 순이익 4348억원의 성과를 낸 알토란이다.

SK온을 최대고객으로 하는 SKIET도 허우적거렸다. 상장 직후인 2021년부터 매출 성장이 둔화되고 영업이익이 급감했다. 2022년에는 적자로 돌아섰고, 2024년부터는 영업적자가 매출액보다 더 커졌다. 투자는 늘었는데 장사는 안 되면서 고정비 부담으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결과다. 올 상반기에도 SKIET의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반토막이 났다. 그래도 영업적자는 지난해 상반기와 비슷했다. 장사는 안 되지만 고정비용은 계속 들어간 것이다.

적어도 한국에서, 주주가 주인은 아니다

적어도 한국에서, 주주가 주인은 아니다

※ 숫자 그래프는 금융감독원 자료를 바탕으로 챗GPT가 디자인했습니다.

AI 덕분에 방전에서 반전으로…SKIET의 빅 배스

최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관련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가 커지면서 배터리 업황에도 회복 조짐이 뚜렷하다. SK온과 SKIET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SK온은 올 상반기 1조7000억원 가까운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석유사업 3288억원, 기유·윤활유사업 8811억원, 배터리 4725억원 등이다. 배터리 부문 흑자는 1조원 안팎으로 추정되는 고객보상금 등 일회성 요인의 영향이 컸다. 당장 SK온의 배터리 부문이 적자를 벗어날 가능성은 낮지만 상반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9.71%나 증가한 점은 인상적이다. 제조업에서는 매출이 늘어야 고정비 부담이 줄어 수익성이 개선된다. 고객보상금 등의 유입과 SKTI와 SK엔무브 합병으로 인한 재무개선 효과도 결코 적지 않다.

SK온이 잘되면 SKIET에도 호재다. 회사 상황은 경영진이 가장 잘 안다. SK이노베이션이 SK온에 이어 SKIET 살리기에 나선 시점이 꽤 오묘하다. 힌트는 회계처리에 있다.

SKIET의 올 상반기 영업손실은 1367억원으로 전년 동기 1234억원과 비슷하다. 그런데 순손실은 1조4095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407억원 보다 34.6배 급증했다. 유형자산손상차손 8550억원, 매각예정자산평가손실 5801억원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일종의 ‘빅 배스(Big Bath)’와 비슷한 효과다. SKIET는 또 새로 지은 폴란드 생산법인을 핵심거점으로 재편하기 위해 낡은 증평 공장은 폐쇄하고, 중국 공장은 매각하기로 했다.

폴란드 법인은 지난해 매출 1585억원, 순이익 406억원을 기록한 곳이다. 그런데 올 상반기에는 매출 772억원, 순손실 6792억원의 실적을 밝혔다. 매출 흐름만 놓고 보면 지난해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순손실이 수천 억원에 달한 것은 영업부진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미 투입한 투자비 가운데 앞으로 회수가 어렵다고 본 부분을 장부에서 미리 털어낸 것으로 보인다.

손상차손은 이미 나간 돈의 장부가치를 낮추는 비현금 비용이다. 장부가가 줄어든 만큼 앞으로 발생할 감가상각 부담도 줄어든다. 사업 자체의 경쟁력이 갑자기 좋아진 것은 아니지만, 향후 수요가 살아나 폴란드 공장의 가동률이 높아진다면 손익분기점을 낮추고 이익 회복 속도를 높이는 효과는 기대할 수 있다. 줄이면 SKIET는 올 상반기에 ‘빅 배스’(Big Bath)를 단행한 셈이다.

지원 대신 합병…이유 있는 SK이노베이션의 선택

그래도 SK이노베이션의 지원 없는 SKIET의 독자 생존은 어렵다. 영업현금흐름이 계속 적자다. 자체 현금창출력만으로 투자와 차환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올 6월 말 기준 유동자산은 5986억원인데 유동부채는 1조3506억원이다. 1년 안에 갚거나 차환해야 할 차입금과 사채만 1조2500억원을 넘는다.

최대주주인 SK이노베이션이 지원하는 방법이 있지만 SKIET는 상장사다. 독립회사인 상태에서 지원하면 기업가치 상승의 수혜가 외부주주 46.65%에도 그대로 돌아간다. 비상장사인 SK온에는 증자와 알짜 계열사 합병이란 카드를 썼지만 SKIET에는 합병을 선택한 이유로 볼 수 있다. 낮아진 기업가치를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먼저 확정하면 이후 지원에 따른 회복의 과실을 별도 상장사의 외부주주와 나누는 구조는 사라진다.

SK이노베이션의 지원과 수요 회복, 잠재 부실 제거, 최신 폴란드 법인으로의 생산 집중 등이 주효한다면 SKIET의 기업가치는 지금이 바닥일 수도 있다. 합병비율을 정하는 시점에 SK이노베이션 대비 SKIET의 상대가치가 낮을수록 기존 SK이노베이션 주주가 내줘야 할 지분은 줄어든다. 실제 7월 SKIET 주가는 18% 이상 하락했고, 7월 30일에는 사상 최저가까지 추락했다. 7월 SK이노베이션 주가는 16% 이상 반등했다.

SK이노베이션 주주들은 SKIET 지원이 달갑지 않을 수 있다. 다만 SKIET 상장 때 구주매출로 1조3000억원을 챙겼다. 비용만 부담한다고 볼 수는 없다. SKIET 주주들은 주가가 가장 낮은 때 합병이 이뤄지는 게 탐탁지 않을 듯하다. SKIET 일반주주 입장에서는 상장을 유지하며 SK온과 같은 전폭적 지원을 받는 게 최선일 수 있다. 종합하면 SKIET를 높은 값에 시장에 내놓아 현금을 먼저 회수한 SK이노베이션이 이번 배터리 잔혹사에서 손실을 가장 잘 방어한 셈이다. 가장 큰 손실을 떠안은 쪽은 높은 공모가에 들어와 지금까지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들이다. 중복 상장이 낳은 이해충돌이 SKIET에서 다시 확인된 셈이다.

백마는 말이 아니다주주는 주인이 아니다

이번 합병은 SKIET 주주총회 특별결의만 거치면 된다. SK이노베이션으로서는 소규모 합병이라 주총이 필요 없다. SK이노베이션이 SKIET 지분을 53.35%나 보유하고 있어 가결 가능성은 높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액이 3500억원을 넘으면 회사 측이 합병계약을 해제할 수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전체 주식의 약 29.3%, SK이노베이션 보유분을 제외한 외부주주 지분의 약 63%가 나서야 한다. 현실적으로 매우 높은 문턱이다.

중국 전국시대 때 조(趙)나라의 사상가 공손룡(公孫龍)은 “백마는 말이 아니다(白馬非馬)”라고 했다. 궤변일까? 공손룡의 풀이를 들어보자.

“여러 색의 말에서 색을 뺀 게 말이다. 백마는 그런 말에다가 흰색을 더한 것이므로 말이 아니다”

말이라는 일반개념과 백마라는 특수개념을 동일시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개정된 상법은 이사에게 회사뿐 아니라 주주에게도 충실할 의무를 지운다. 그런데 중복 상장 구조에서는 이게 참 어렵다. 모회사 주주와 자회사 주주, 최대주주와 일반주주는 모두 ‘주주’다. 그러나 이해관계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백마도 말이다. 하지만 백마와 말이 같은 개념은 아니듯, 주주도 그렇다.


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