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 [한국투자신탁운용 제공]
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 [한국투자신탁운용 제공]

[헤럴드경제=김지윤 기자] 상장지수펀드(ETF)는 이제 주식 시장의 대세가 됐다. 지난달 말 기준 상장 종목수는 1163개로, 5년 전인 2021년 8월 말(502개)과 비교해 두 배 넘게 증가했다. 순자산총액은 450조원을 넘어서며, 같은 기간 600% 급등했다.

특히 액티브 ETF는 322개로, 5년 전(30개)과 비교하면 10배 넘게 늘었다. 액티브는 기초 지수의 성과를 그대로 추종하는 패시브와 달리, 기초 지수 대비 초과수익을 목표로, 펀드매니저가 종목 선택과 매매 타이밍을 재량으로 운용하는 ETF를 의미한다.

▶종목 선정에 기대는 방식, 장기 성과 담보 못해=2000년대 초 국내에 처음 ETF 상장을 주도하고, ETF 시장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하면서 ‘한국 ETF 아버지’로 불리는 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는 최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액티브 ETF에 대해 “액티브의 정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배 대표는 액티브가 패시브를 이기기 쉽지 않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액티브 운용이 한창 인기를 끌던 시절에도 패시브 투자를 강조해 온 인물이다. 배 대표는 “중소형사들이 집중하는 부분이 기존 ‘퓨어액티브’라고 보면 된다”며 “열심히 종목을 선정해 수익률을 추구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이 방식은 감각이 맞으면 잘될 때가 있지만, 못할 때도 있다”며 “종목 선정 능력에 기대는 방식으로는 성과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투운용이 주력하는 방식은 기존 패시브를 추구하면서, 운용에 유연성을 갖는 수준에서 액티브를 활용하는 것이다. 배 대표는 “종목을 적극 바꾼다기보다는 운용에 있어 플렉시빌리티를 갖는게 내가 생각하는 액티브”라고 말했다.

배 대표는 한투운용의 ‘ACE 글로벌반도체TOP4 Plus ETF’를 예로 들었다. 위 상품은 반도체 세부 4개 카테고리(메모리, 비메모리, 파운드리, 장비)의 시가총액 1위 종목을 각 20%씩 편입하고, 나머지 6개 종목을 동일가중으로 편입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배 대표는 “메모리 1등이 처음에는 삼성전자였으나, 시장이 변화하면서 이를 SK하이닉스로 바꾸고 싶었다”며 “지수 공급자한테 상황을 설명해 바꾸는데만 6개월이 걸렸고, 시장 변화에 따라 이를 다시 삼성전자로 바꾸려면 또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높은 투명성, 매매의 편리함, 분산투자 등 장점이 많은 패시브지만, 발빠른 변화에 있어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앞서 타 회사에 재직하던 시절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해당 ETF는 미국 대표 기술주에 투자하는 상품이었다. 배 대표는 “미국 기업 8곳, 중국 기업 2곳이 들어가있는 구조였는데, 트럼프가 처음 대통령이 되고 중국 기업들의 상황이 안좋았다”며 “당시에는 완전 패시브만 할 때였는데, 중국을 빼고 미국을 넣으려고 했으나, 지수 운영자가 바꿔주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 사이 경쟁사가 나스닥 주요 기술주에 집중 투자하는 상품을 출시했고, 투자자들의 자금이 이탈했다.

배 대표는 “수익률이 잘 날 것 같다는 문제가 아니라, 시장에서 투자자들의 수요가 바뀌었는데 못 빼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며 “이에 운용의 플렉시빌리티를 갖는 정도에서 액티브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한투운용은 유가증권펀드 및 머니마켓펀드(MMF) 사업 부문을 인적분할해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으로 이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업계에서는 한투운용이 기존 강점을 갖고 있는 패시브 ETF 위주의 사업을 구사하고, 액티브 부문은 밸류운용에서 담당하는, 큰 틀의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배 대표의 이 같은 기준에 따라 재편 이후에도 운용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수준의 액티브 상품은 한투운용에서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펀드매니저의 종목 선정 역량이 중요한 이른바 퓨어액티브는 이관 대상으로 점쳐진다.

▶수익이 너무 좋은 액티브도 문제?=유연성에 대한 갈증은 규제 문제로도 이어진다. 지난 7월 한투운용의 ACE 액티브 ETF 4종은 상관계수 미달로 무더기 상장폐지됐다. 액티브 ETF는 비교지수와의 상관계수를 0.7 이상 유지해야 하고, 0.7 미만이 3개월 이상 지속되면 퇴출된다. 한투운용의 경우, 수익률이 비교 지수를 크게 상회하면서 상관계수가 0.7 밑으로 떨어진 게 상폐의 원인이 됐다.

그동안 ‘순자산 총액이 50억원 미만’이어서 퇴출당한 ETF는 여럿 있었지만, 비교 지수를 초과하는 수익률로 상폐가 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후 타임폴리오자산운용 등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정부 역시 올해들어 운용 자율성 보장을 위해 액티브 ETF의 상관계수를 폐지 또는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최근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배 대표는 “이런 부분에도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ETF가 1100개를 넘어서며 업계 내 베끼기 논란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베끼는 것은 자존심 문제인데, 규제보다는 업계에서 자정노력이 필요하다”며 “돈을 못 벌어도 운용자산(AUM)을 늘리겠다는 식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어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방향과 시간, 성공 투자의 요건=배 대표가 꼽는 성공 투자의 요건은 두 가지다. 방향과 시간. 방향은 어디에 투자할 것이냐를 정하는 논리적 판단이고, 시간은 투자 이후 찾아오는 변동성을 견디는 감정적 영역이다. 배 대표는 최적의 투자 시점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돈이 생길 때마다 투자하는 게 최선이고, 방향이 옳았다면 타이밍이 나빠도 수익은 따라온다고 강조한다.

특히 배 대표가 ETF 투자를 강조하는 것은 감정적인 영역을 견딜 수 있다는 점에서다. 배 대표는 엔비디아와 나스닥의 사례를 들었다. 2016년 2월 1일부터 10년간 엔비디아에 투자했다면 올해 1월 말 기준 수익률은 266.5배다. 같은 기간 나스닥100은 5.5배였다.

숫자만 보면 개별 종목의 압승이지만 배 대표의 결론은 반대였다. 이 기간 엔비디아는 고점 대비 30% 하락을 두 차례, 50%대와 60%대 하락을 각각 한 차례 겪었다. 266배가 되기까지 엄청난 등락을 반복한 것이다.

배 대표는 “나스닥은 여러 종목이 있으니 크게 실패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지만 개별 종목은 가파른 등락을 거듭하며 불안이 증폭된다”며 “운 좋게 견뎠다면 부자가 되겠지만, 개인이 견디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 버블 논란에 대해서는 다른 각도를 제시했다. ‘버블이 없는 기술은 정말로 큰 기술이 아니다’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인터넷 시대가 열리며 무수한 기업이 난립했고, 버블을 겪은 뒤 살아남은 곳이 지금의 빅테크라는 것이다.

또 새로운 기술이 오려면 인프라가 동반돼야 한다. AI 시대가 열리며 빅테크 기업이 세상을 주도하고, 이를 뒷받침할 반도체, 컴퓨터, 전기 등 인프라 기업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jiy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