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취약차주 지원방안 내년 시행
“실질적 재기 사다리” 업계 환영 속
성실상환은 금리 우대 그쳐 불만도
원금 갚되 금리는 인하…대안 거론
술집을 운영하던 김모(42) 씨는 코로나19를 버티지 못하고 2022년 문을 닫았다. 김씨는 가게를 운영하면서도 배달 일을 병행하고 주말에는 대리운전까지 뛰며 약 3년에 걸쳐 2000만원의 대출금을 모두 갚았다. 김씨는 “당시 주변에서 ‘뭐 하러 그렇게까지 갚느냐, 어려워지면 정부가 결국 탕감해줄 거다’는 말을 많이 했지만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거봐, 버티면 된댔잖아’라는 이야기가 요즘 제일 듣기 싫다”고 말했다.
반면 2019년 식당을 개업한 이모(29) 씨는 장기연체에 빠진 소상공인들의 사정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테이블을 중심으로 영업하는 업종 특성상 배달로 매출을 대체하기 어려워 코로나 당시 매출 타격을 대출로 버텨 왔다. 이씨는 대출금을 갚고 있는 상황이긴 하나 최근 금리까지 오르면서 상환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이씨는 “탕감이 아니라 조정만 해줘도 숨통이 트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며 “정책이 오히려 늦게 나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코로나 때 어떻게든 버텼던 사람들은 금리까지 올라 나를 포함해 지금 더 힘들어진 경우도 많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28일 ‘금리 상승기 대비 취약차주 지원방안’을 내놓고 코로나19 피해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장기연체채무를 내년부터 소각·조정하기로 했다. 대상은 금융권과 공공기관이 보유한 코로나 피해 소상공인의 무담보채권 가운데 2023년 6월 이전 연체가 발생해 현재까지 이어진 채권이다.
단순히 장사가 어렵거나 이자 부담이 커진 차주가 아니라 이미 3년 넘게 정상적인 상환이 이뤄지지 않은 장기연체자가 핵심 대상이다. 코로나19 기간 개인사업자 대출 358조7000억원 가운데 현재 미상환 잔액은 154조7000억원이며, 이 중 3개월 이상 연체액은 6조3000억원이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정부 대책을 반겼다. 코로나19 당시 영업금지와 제한에 협조하면서도 충분한 손실보상을 받지 못해 소상공인들이 생존을 위해 빚을 질 수밖에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소공연은 장기연체채무 조정을 “실질적인 재기의 사다리”라고 평가했다. 성실상환자에 대한 금리·보증료 우대와 대출한도 확대도 “형평성 문제를 보완하고 성실상환자의 상대적 박탈감을 최소화”하는 조치라고 봤다.
실제 장기연체자 지원이 필요하다는 현장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 소상공인은 “지원 대상에 해당할 정도인 사람 중에는 인간으로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할 만큼 생활이 무너진 사람이 정말 많다”며 “형평성도 중요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사람 대우를 못 받는 경우도 고려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자영업자도 “나도 올해 빚을 다 상환했지만 빚 독촉에 시달리며 돈 걱정을 하는 것보다는 갚는 쪽을 택하겠다”며 “저 사람들은 선택할 기회 자체가 없었던 경우도 있다. 일부러 망하고 싶어서 망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했다.
다만 성실상환자들의 박탈감도 뚜렷하다. 한 자영업자는 “연체시키지 않고 내 힘으로 갚으려고 한 달에 얼마씩이라도 5년에 걸쳐 이번에 다 갚았는데 허탈하다”며 “부모님이 생사를 오가는 순간에도 빚 갚으려 일했던 내가 바보 같다”고 전했다. 또 다른 소상공인은 “어려우면 돕는 것은 맞지만 대부분이 악용하는 구조가 되는 게 문제”라며 “대출 4건은 연체 없이 다 갚고 2건은 아직 갚는 중인데 후회가 된다”고 토로했다.
정부도 이런 형평성 논란을 의식해 성실상환자 지원책을 함께 내놨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정책자금에 0.3%포인트 우대금리를 적용하고 지원한도를 2억원으로 높이는 등의 내용이다. 기업은행의 소상공인 희망드림대출 공급도 확대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장기연체자에게는 원금 소각·감면 가능성까지 열어둔 반면 성실상환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금리 우대 등에 그쳐 지원의 무게가 다르다는 불만이 나온다.
원금을 없애기보다 금리를 대폭 낮추고 상환기간을 늘려 끝까지 갚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대안으로 거론하는 이들도 있다. 한 소상공인은 “상환기간을 5년이든 더 길게든 늘려주고 금리를 최저 수준으로 낮추더라도 원금은 끝까지 갚도록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자영업자는 “1년 이상 연체 없이 갚았다면 금리를 조금이라도 쉽게 낮춰주고, 일정 기간 이상 상환한 대출은 저금리 대출 하나로 갈아탈 수 있게 해줬으면 한다”며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에게 조금만 도와줘도 빚을 정리할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전했다.
‘이미 망한’ 소상공인 지원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도 남아 있다. 이미 폐업한 사람은 이번 장기연체채무 소각·조정의 대상이 아니다. 채무 부담을 견디지 못해 이미 개인회생이나 파산 등 별도의 절차를 밟은 이들과의 형평성을 어떻게 보완할지도 과제다. 실제 소상공인들 사이에서는 “3년 이상 연체한 사람이 대상이라면 그사이에 버티지 못하고 폐업한 사람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이미 폐업한 사람도 비슷한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올해 4분기 중 채무조정 대상과 감면 수준 등 구체적인 기준을 확정할 계획이다. 장기연체자의 재기를 돕는 동시에 성실상환자와 이미 폐업·회생 등을 택한 소상공인의 박탈감까지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가 정책 수용성을 가를 전망이다. 홍석희·김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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