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앞 한 가게에 붙은 벽보 논쟁

주민 “가난을 스타일로 소비하는 방식 진부”

업주 “단어 하나만으로 철학 규정은 유감”

노숙인이 많이 다니는 서울역 앞 한 거리에 ‘HOMELESS’란 간판명을 두고 주민과 업주가 논쟁을 벌여 화제다. [Em is EM X 갈무리]
노숙인이 많이 다니는 서울역 앞 한 거리에 ‘HOMELESS’란 간판명을 두고 주민과 업주가 논쟁을 벌여 화제다. [Em is EM X 갈무리]

[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 노숙인 밀집지역인 서울역 인근에 ‘HOMELESS(홈리스)’란 이름의 가게 명칭 사용을 두고 반대하는 주민과 이에 반박한 업주의 ‘벽보 논쟁’이 온라인에서 확산하며 화제다.

2일 소셜미디어(SNS) 엑스(X·옛 트위터)에는 지난달 31일 서울역 인근 한 가게 앞에 붙은 벽보를 촬영한 사진 여러 장이 올라 왔다.

사진을 공유한 A 씨는 “비오는 서울역 앞에는 무료 급식을 받는 사람들이 줄 지어 있고, 어느 가게 앞의 벽에선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라며 “홈리스(homeless·노숙인)들이 다니는 거리에 ‘Homeless’라는 간판을 다는 것에 대해”라고 적었다.

사진을 보면 가게 유리 앞에 ‘7월 오픈(Open) Homeless 직원 모집’이란 제목으로 악기 연주자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붙어있고, 그 옆에는 자신을 청파동 주민이라고 밝힌 한 주민의 항의문이 남겨져 있다.

주민 B 씨는 “가게 이름이 HOMELESS인 것을 보고 인근 주민으로서 메모 남긴다”라며 “서울역 일대에서 홈리스 당사자들이 겪는 차별과 배제의 현실을 지우고, 이미지만 차용해 언더그라운드 감성을 연출하는 네이밍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길은 실제로 많은 홈리스 당사자가 오가는 곳”이라며 “그러나 HOMELESS란 이름의 이 공간은 그들을 위한 공간도, 그들이 편히 드나들 수 있는 공간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B 씨는 “타인의 가난을 하나의 스타일로 소비하는 방식은 전위적이기보다 진부하게 느껴진다”고 비판하며, “누군가의 열악한 삶의 조건을 브랜드 컨셉으로 사용하는 방식은 이 길을 함께 사용하는 주민으로 매우 불쾌하다. 부디 가게 이름이 아니길 바란다”라고 정중하게 항의했다.

B 씨의 항의문 바로 아래에는 업주 C 씨의 반박문도 붙었다.

C 씨는 “가게명은 홈리스를 비하하거나 특정 계층을 조롱하기 위해 만든 이름이 아니다”며 “세상에는 조폭떡볶이도, 바보낙지도, 미친양념치킨도 있지만 그런 이름들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 ‘조폭미화’ ‘장애인 조롱’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저희 역시 마찬가지다”라고 했다.

이어 “저희에게 HOMELESS는 집이 없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라 정해진 소속 없이 살아가는 사람, 예술과 음악, 여행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보다 자신의 취향과 감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세상 어딘가에 자신만의 집을 만들어가 가는 사람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편협한 시선으로 단어 하나만 떼어내서 누군가의 의도와 철학까지 규정하는 것은 아쉽고 유감스럽다”며 “이름은 그대로 두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신 공간이 어떤 의미인지, 시간이 증명할 것이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게시물을 접한 대다수 누리꾼들은 주민의 손을 들어줬다. 이들은 “시간이 증명할 것이다. 망할 것이다” “타인과 소통하려 하지 않는 영업장의 말로는” “위치가 문제다. 적어도 진짜 홈리스라서 고통받는 사람들 눈에 띄게는 하면 안 된다” “개똥 철학” “홈리스보단 노마드(Nomad· 유목민) 말하고 싶은 거 아닌가” “자기 세계에만 빠져있는 나르시시즘이랑 다를 게 없다” 등 업주를 향해 비판을 쏟아냈다.

한편 서울시가 펴낸 ‘2025 서울시 노숙인 실태조사 보고’에 따르면 서울 지역 홈리스 규모는 2023년 이후로 증가해 지난해 3110명으로 집게됐다. 이 가운데 시설에 수용되는 걸 거부하고 거리에서 지내는 노숙인은 543명(17.5%)이다. 자치구별 거리 노숙인은 서울역이 있는 중구(162명)가 가장 많고, 서초구(98명), 영등포구(94명), 용산구(74명)가 뒤를 이었다.


jsh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