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오 감독 신작 영화 ‘철들 무렵’ 리뷰
기주봉·하윤경·양말복이 그리는 가족극
‘가족’이란 이름으로 짊어진 돌봄의 무게
“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돌봄인가” 질문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사람은 누구나 늙고, 누구나 죽는다. 쫓기듯 내달리는 일상은 이 단순한 진리를 가끔 잊게 만든다. 그런데 이 당연함은 늙고 죽는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다. 자식의 인생을 책임지는 부모, 부모의 노후를 지키는 자식, 힘들 때 힘을 보태줘야 하는 형제. 우리는 이 당연함을 저마다의 편의대로 ‘이용’하며 살아간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많은 이들이 마땅히 해야 한다는 의무 속에 묶여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하기에, 그 굴레는 쉽게 우리에게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피할 수 없다면 마주하는 것이 맞다. 그것이 문제라면 짚고 넘어가야 한다. 불편하다면 왜 불편한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정승오 감독의 신작 ‘철들 무렵’은 한 가족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관계성을 들여다보며 애써 외면해 왔을, 이 말 못할 가려움을 촘촘히 긁어낸다. 어쩌면 철이 든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실은 당연한 게 아니었음을 깨닫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영화는 그 중심에 ‘돌봄’이라는 단어를 굵은 글씨로 거듭 새긴다.
영화는 철없기 짝이 없는 용접기사 철택(기주봉 분)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영정사진 앞에서 ‘로또 당첨’을 기원하며, 술을 벗 삼아 살아가는 그에겐 단역 배우로 살아가는 외동딸 정미(하윤경 분)가 있다. 귀신 1, 친구 2 등 이름 없는 역할을 전전하면서도 볕 들 날을 바라보며 살아가던 정미는 어느 날 철택이 암 말기라는 소식을 듣게 된다.
제 앞가림하기도 바쁜 딸은 반찬까지 해 나르며 아빠의 건강을 살뜰히 살피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치 아빠의 치료가 모두 제 책임인 양 나서는 딸의 모습을, 철택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네가 하는 게 다 그렇지.” 오디션을 보느라 병원에 늦게 도착한 딸에게 건넨 아빠의 철없는 이 한마디가,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정미의 노력에 비수를 꽂는다.
정미가 홀로 짊어지는 것처럼 보였던 돌봄의 무게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서서히 다른 얼굴들을 드러낸다.
철택과 사실상 이혼한 상태로 홀로 노후를 즐기던 전처 현숙(양말복 분)에게는 형제들이 연락을 해온다. 구순을 맞은 어머니 옥남을 이제 네가 모실 차례라는 것이다. 아들 부부와 함께 살며 손자 동민의 돌봄까지 책임지고 있는 철택의 형 관택에게는, 아빠의 수술비를 도와달라는 정미의 전화가 걸려 온다. 누구도 서명한 적 없는 이 자식과 형제로서의 의무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두 사람을 곤란하게 만든다. 거절하면 불효가 되고, 외면하면 의절이 되는 것일까. 필요에 의해 ‘가족’을 소환한 가족은, 그들의 거절을 마치 대단한 잘못인 양 여기려 든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돌봄’을 한 사람의 효심이나 도덕적 당위로 축소하지 않는다. 철택의 보호자가 되면서 정미는 비로소 떨어져 지내던 가족들의 얼굴과 마주한다. 현숙의 나머지 네 형제는 어머니의 돌봄 부담을, 혼자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현숙에게 떠넘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누군가 돌봐야 한다’는 당연함이 실은 누구 한 사람에게만 조용히 떠넘겨져 왔다는 사실을 함께 깨닫는다. 그 대상이 유독 ‘딸’이었다는 점, 반대로 관택의 아들은 오히려 아버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점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사실 따지기 시작하면 돌봄은 머리 아픈 문제가 맞다. 그것이 제 카드 빚 하나 해결하기 힘든 정미와 같은 이에게도 해당된다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영화는 이 복잡한 문제를 지나치게 진지한 톤으로만 접근하지 않는다. 특히 처음엔 화이팅 넘치게 철택의 간병을 자처하던 정미가 시간이 지나면서 시들어가고 지쳐가는 모습과, 그 간병 덕에 점차 얼굴이 좋아지는 철택의 대비는 단지 환자와 보호자의 관계를 넘어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간병’의 현실을 재치 있게 비춘다. 당신이 자식을 먹이고 키웠기에, 자식이 자신을 간병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철택을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서사의 밀도를 메우는 것은 배우들의 얼굴이다. 기주봉은 철택이라는 인물을 단순한 ‘못난 아버지’로 그리지 않는다. 뻔뻔함과 무안함,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새어 나오는 미안함 사이를 오가는 그의 얼굴은, 관객으로 하여금 이 인물을 완전히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하윤경은 조금씩 지쳐가는 정미의 마음을 무너지는 표정과 말투의 온도 차로 표현해 내며, 돌봄 노동이 사람을 얼마나 서서히 갉아먹는지를 체감하게 한다.
양말복이 연기하는 현숙의 억울함과 체념, 그리고 노년의 옥남까지 더해진 앙상블은, 이 영화가 특정 세대나 특정 인물의 이야기로 좁아지지 않고 가족 구성원 전체의 온도로 확장되도록 만든다.
결국에 영화에는 어떤 명쾌한 해답도 없다. 무릇 돌봄에 대한 수많은 문제 제기가 그러하듯, 이것을 단지 사회 시스템의 책임으로만 돌리지도 않는다. 돌봄을 누가 맡아야 하는지, 그 부담을 어떻게 나눠야 공평한지에 대해 영화는 끝내 침묵한다. 그리고 그 침묵은 이것이 애초에 정답이 없는 문제라는 정직한 인정처럼 들린다.
영화 말미, 옥남은 현숙과 함께 살라는 자식들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다. “나한테 너희는 과거야. 나도 미래를 그려봐도 되지 않겠니.”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자식들 뒤치다꺼리하지 않고 편안하게 살겠다는 옥남의 말이, 천편일률적으로 재단된 돌봄에 대한 시각을 환기하게 만든다. 그래서 돌봄이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인가. 유쾌하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한 편의 가족극이 남기는 질문이 더없이 무겁다.
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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