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각장애인용 영화관 자막·해설 제공 소송
대법 “2심, 영화관 측 재정적 부담 과도 고려”
다시 판단하라며 서울고법에 돌려보내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시각·청각장애인들이 차별 없이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영화관에서 화면해설과 자막, 수신 기기 등을 제공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전국 법원에서 ‘이해하기 쉬운(이지 리드·Easy-Read) 판결문’이 쓰여지고 있는 가운데 나온 대법원의 첫 이지리드 판결이다.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시청각장애인 4명이 CJ CGV, 롯데컬처웍스 등 영화관을 상대로 낸 차별구체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심(2심)의 원고 패소 부분을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면서 “이 사건 선고에는 청각장애인 및 청각·언어장애인인 원고들을 위한 수어통역이 지원됐고, 원고들을 위해 이해하기 쉬운(Easy-Read) 판결문이 일반 판결문과 함께 제공됐다”고 밝혔다.
원고들은 지난 2016년 2월 “한국 영화 관객이 1000만명을 넘었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장애인은 그 관객 속에 없다”며 시·청각장애인 영화 관람권을 보장하라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했다. 구체적으로 “영화관에서 화면 해설과 자막, 이를 수신할 수 있는 기기 등을 제공하지 않은 것이 장애인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1심은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지난 2017년 2월 “영화 제작업자나 배급업자가 화면 해설과 자막 파일을 제공한 영화에 대해 화면 해설과 자막을 제공하고 FM 보청기기 등 보조기기도 마련하라”고 판결했다. 이어 “화면 해설·자막이 제공되는 영화와 상영관을 안내하고 점자 자료·수어 통역 등을 제공하라”고 했다.
2심 역시 지난 2021년 1월 “차별을 고쳐야 한다”는 취지로 이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그 범위를 줄였다.
2심 재판부는 “상영관 좌석 수가 300석을 넘을 경우 전체 상영 횟수의 3%에만 ‘배리어프리 영화’로 상영하라”고 판결했다. 영화관 측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고려한 판단이다. 배리어프리 영화는 음성 화면해설, 문자 자막이 제공되는 영화다.
대법원은 이러한 원심(2심) 판단이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2심이 영화관의 비용만 지나치게 고려했다며 장애인의 권리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헌법이 지향하는 장애인의 보호라는 이념과 영화상영업자의 재산권 및 경제상 자유 보호라는 가치가 합리적으로 조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원심은 영화관 측 재정적 부담만 과도하게 고려해 수긍하기 어렵다”며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함께 영화를 즐기면서도 영화관의 재정적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수단은 없는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로써 사건을 다시 판단하게 된 서울고법은 대법원이 지적한 내용에 따라 장애인과 영화관 양쪽의 입장을 모두 살펴 새로운 판결을 내놓게 됐다.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에서 이지리드 판결서가 제공된 첫 사례”라며 “최종심에서 판결 요지 또는 안내 수준을 넘어 판결서 자체에 이지리드 방식으로 내용을 작성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쉽게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법원은 장애인이 영화라는 정보에 접근하고 이를 향유할 권리의 사회적·문화적 의미에 대해 최초로 판시했다”고 밝혔다.
notstr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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