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인간을 위해 희생된 줄 알았는데”
생후 4~6개월. 아직 채 어른이 되지 못한 개들이 실험자들의 품에 안겨 있다. 언뜻 보면, 약을 먹이는 것 같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바로 살충제, 제초제 등 농약을 강제 주입하는 모습. 제품이 출시되기 전, 농약 성분이 인간에게 얼마나 해로운지를 검증하는 실험이다.
이렇게 농약을 먹이는 기간은 최소 90일. 심지어 농약의 유해성과 무관하게, 이들의 끝은 밝지 않다.
생존한 개체 역시, 몸속 장기와 조직을 살펴 농약이 어떤 독성을 일으켰는지 확인하는 데 이용된다. 살아서 실험실을 나갈 수 없다는 얘기다.
물론 인간의 건강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놀라운 반전이 있다.
유해성 검증을 위해, 개를 동원해야만 했던 ‘어쩔 수 없는 경우’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는 것.
숫자로 따지면 4.6%. 지난 24년간 농약 시험에만 약 1만마리에 달하는 개가 희생된 가운데, 그중 대부분이 불필요하게 실험에 동원됐다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살충제 등 농약 유해성 검증에 동물이 동원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90일 비설치류 경구독성시험’ 지침을 살펴보면, 시험에는 비설치류 포유류를 이용한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동물은 ‘개’. 특히 실험용 개로 알려진 ‘비글’이 이용된다.
개를 이용할 경우 투여는 가급적 생후 4~6개월부터 시작된다. 늦어도 생후 9개월을 넘지 않는다. 한 마리로 한정하지도 않는다. 최소 3개 용량군과 대조군을 두고, 용량별로 암수 4마리씩 최소 8마리를 사용한다. 기본적인 시험 설계만 적용해도 최소 32마리가 투입된다.
농약 성분은 사료나 마시는 물에 섞어 제공하거나 위관, 캡슐 등의 방식으로 투여한다. 90일이 지나면 살아남은 시험 동물도 희생되는 경우가 대다수. 외부 표면부터 뇌와 심장, 간, 신장, 생식기관 등 각종 장기를 부검해 독성이 없는지 점검하기 위해서다.
농약뿐만 아니라, 각종 의약품 실험 등 인간의 편의를 위해 희생되는 동물의 수는 적지 않다. 우리나라의 사정도 마찬가지. 농림축산검역본부 연도별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실험에 동원된 동물은 약 495만마리. 숫자로 따지면, 하루 평균 1만3000마리가 사용된다.
문제는 이같은 시험이 실제 사람의 안전을 판단하고, 적용하는 데 얼마나 효율적인 정보를 제공했느냐다. 쉽게 말해, 시험이 진짜 필요했는지 여부가 관건이다. 그런데, 오랜 기간 이어져 온 농약 독성시험에서 대부분 경우에 굳이 ‘개 실험’을 거칠 필요가 없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 2023년 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현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스)와 농화학기업 신젠타 소속 연구자 등은 국제학술지 ‘Critical Reviews in Toxicology’에 발표한 논문에서, 1998년부터 2021년까지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위해성을 평가한 농약 195종의 기존 시험자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연구진이 90일 개 시험을 대신할 만한 자료를 찾지 못한 것은 전체 195종 가운데 9종, 4.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위해성 판단에 개 시험이 영향을 미친 9개 농약에 해당하는 개는 전체 9700여마리 중 522마리였다.
대부분 결과의 경우 쥐나 다른 기존 시험자료만으로도 유사한 수준의 건강 보호가 가능했다. 9200여마리가 다른 방법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시험을 위해 희생당했다는 것.
그럼에도 개를 이용한 농약시험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오랫동안 유지된 규정과 시험 기준이 남아 있는 데다, 개 시험을 생략할 수 있는 대체 기준 마련도 더디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당수 농약에서 개 시험이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분석은 잇따르고 있다. 유럽식품안전청(EFSA)도 지난 7월 농약 461종을 대상으로 개 독성시험이 실제로 얼마나 필요한지 다시 따져봤다.
그 결과 대부분은 개가 쥐 등 다른 동물보다 농약에 특별히 더 민감하다고 보기 어려웠다. 사람이 평생 먹어도 안전한 농약의 양을 정하는 과정에서는 97%, 농약을 다루는 작업자의 안전기준을 정할 때는 95%가 여기에 해당했다.
개 시험을 하지 않았더라도 다른 동물시험이나 기존 자료만으로 비슷한 안전기준을 정할 수 있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의미. 이에 모든 농약에 개 시험을 반복하기보다, 기존 자료를 먼저 검토한 뒤 꼭 필요한 경우에만 시험을 하는 방식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11월 국립농업과학원 소속 연구자는 유럽식품안전청(EFSA) 국제 워크숍에서 국내 농약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최근 신규 등록된 농약 성분 18종을 살펴본 결과, 사람의 안전기준을 정하는 과정에서 개 시험 결과가 활용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개 시험을 제외하고 쥐 등 다른 동물의 시험 결과와 단순 비교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기존에 개 시험 결과를 기준으로 삼았던 상당수 경우를 다른 자료로 대신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사람이 평생 섭취해도 안전한 양을 정하는 기준에서는 개 시험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비율이 22%에서 5.56%로 낮아졌다. 농약을 취급하는 작업자의 안전기준에서도 50%에서 11.1%로 떨어졌다. 국내 농약에서도 상당수 경우 개를 반드시 시험에 투입하지 않고도 안전기준을 정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한퍈 동물실험을 대체하려는 정책적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과거 농약 승인을 위해 요구했던 1년간의 개 독성시험이 2007년 폐지되고, 90일 규정만 남았다. 올해 1월에는 EPA가 오는 2035년까지 포유류를 이용한 동물시험을 단계적으로 없애겠다는 목표를 재확인했다.
우리 정부 역시 뒤늦게 대체시험 확대에 나섰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올해 민관합동 전담조직을 꾸리고 오는 2027~2035년 화학물질 동물대체시험 활성화 전략과 동물시험 단계적 제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변화의 속도는 더디다. 1년간 이어지던 시험은 사라졌지만, 90일 개 독성시험은 여전히 농약 안전성 평가에 활용되고 있다. 개 시험의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지만, 실제 규정과 시험 기준이 바뀌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고 있는 셈이다.
특히 연구진과 동물보호단체들은 이미 축적된 독성자료와 대체시험법을 적극 활용할 경우, 불필요한 개 시험을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는 “1년 시험을 끝낼 수 있었다면 90일 시험도 끝낼 수 있다”며 “거의 모든 경우 이 잔혹한 실험은 인간에 대한 농약 위험을 판단하는 데 추가적인 가치를 제공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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