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탯줄·태반 줄기세포 주입에 1만8450달러

2000년대 소수에 불과했던 클리닉, 2021년 2700곳 넘어

자폐증·당뇨·발기부전까지 효과 광고…FDA 승인 없어

‘장수 산업’ 부유층 전유물서 대중화…부작용·사망 사례도

3D 렌더링으로 구현한 인간 배아줄기세포의 현미경 관찰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3D 렌더링으로 구현한 인간 배아줄기세포의 현미경 관찰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신생아에게서 얻은 줄기세포는 몸 전체로 보내질 수 있습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 ‘장수 클리닉’. 무릎 관절염 치료를 문의하자 의사는 신생아의 탯줄과 태반에서 추출했다는 줄기세포를 무릎에 직접 주사하는 방법을 권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정맥에도 투여해 줄기세포를 온몸으로 보내면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가격은 1만8450달러. 우리 돈으로 약 2500만원이다.

미국에서 ‘젊음’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지갑을 겨냥한 새로운 시장이 커지고 있다. 한때 억만장자들이 멕시코나 파나마까지 비행기를 타고 찾아가던 줄기세포 시술이 이제는 LA를 비롯한 미국 대도시의 클리닉에서 수천만원짜리 상품으로 팔리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미국의 줄기세포 클리닉을 직접 조사해 장수와 회춘에 대한 관심을 타고 관련 시장이 빠르게 대중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FT 기자가 환자로 가장해 LA의 차라 헬스(Chara Health)에 상담을 요청했을 때도 그랬다. 당시 이곳에서 근무하던 의사 하이디 레게나스는 신생아의 탯줄과 태반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를 제안했다.

무릎에 직접 주사하는 데 더해 정맥을 통해 혈액 속에 넣으면 줄기세포가 몸 곳곳을 돌며 손상된 조직을 회복하고 염증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었다. 클리닉 측이 내세우는 적용 범위도 관절염에 그치지 않았다. 자폐증과 당뇨병, 발기부전 등 수십개 질환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홍보했다.

이처럼 줄기세포를 내세운 미국의 클리닉은 최근 10여년 사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캘리포니아대 어바인의 리 터너 보건윤리센터장이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2000년대 후반만 해도 손에 꼽을 정도였던 관련 클리닉은 2016년 약 600곳으로 늘었다. 2021년에는 2700곳을 넘어섰다.

시장을 키운 것은 단순히 아픈 사람들만이 아니다. ‘오래 사는 것’을 넘어 ‘젊은 상태로 오래 사는 것’에 돈을 쓰는 사람들이 늘면서 줄기세포는 글로벌 장수 산업의 인기 상품 가운데 하나가 됐다.

유명인들의 경험담도 이런 흐름에 불을 붙였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미 보건복지부 장관은 과거 카리브해 앤티가에서 줄기세포 치료를 받은 뒤 큰 도움을 받았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세계적인 팟캐스터 조 로건과 방송인 킴 카다시안 등도 해외에서 줄기세포 시술을 받은 경험을 공개했다.

SNS와 팟캐스트를 통해 유명인들의 ‘회춘 체험기’가 퍼지면서 과거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시술은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익숙한 상품이 되고 있다. 수조달러 규모로 성장한 글로벌 웰니스·장수 산업이 줄기세포까지 끌어안은 셈이다.

[123RF]
[123RF]

문제는 화려한 마케팅과 실제 의학 사이에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줄기세포 자체는 현대 의학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다. 스스로 증식하면서 다른 종류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어 골수 이식이나 피부 이식 등에 사용되며 파킨슨병과 심장질환 등에 적용하기 위한 연구도 활발하다.

하지만 줄기세포를 몸에 주입하기만 하면 스스로 손상된 부위를 찾아가 치료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특히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관절염이나 허리·무릎 통증을 치료하기 위한 이 같은 재생의학 제품을 승인하지 않고 있다.

실제 올해 미국에서 판매되는 탯줄 유래 ‘줄기세포’ 제품 6종을 조사한 연구에서는 모든 제품에서 살아있는 세포가 사실상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비싼 돈을 내고 맞은 ‘줄기세포 주사’에 정작 살아있는 줄기세포가 거의 없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돈만 잃고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10대 시절 오토바이 사고로 척수를 다쳐 다리를 절게 된 미국인 셰인 고더드는 2022년 치료를 위해 멕시코의 한 클리닉을 찾았다. 그가 받은 제안은 탯줄에서 얻었다는 줄기세포 1억4000만개를 척추에 넣는 시술이었다. 가격은 1만5695달러였다.

하지만 치료 직후 고열과 극심한 허리 통증이 시작됐다. 손가락을 움직이기 어려워졌고 다리까지 끌게 됐다. 검사 결과 감염으로 생긴 농양이 척수를 압박하고 있었다. 의료진은 즉시 수술하지 않으면 다음 날 아침에는 마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결국 6주간 병원에 입원했다. 현재도 손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례에도 시장의 성장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FDA가 관련 업체들에 경고장을 보내고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업체들은 이름이나 웹사이트, 광고 문구를 바꾸며 영업을 이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FT가 2021년 이후 미승인 줄기세포 제품 판매로 FDA의 경고장을 받은 25개 업체를 추적한 결과 상당수가 형태를 바꿔 사업을 계속한 정황이 확인됐다. ‘치료’ 대신 ‘실험적 선택지’라는 표현을 사용하거나 자신들이 판매하는 것은 의약품이 아니라 인체 조직이라고 주장하는 식이다.

미국 내에서도 규제 방향은 엇갈리고 있다. 2024년 이후 플로리다와 유타, 와이오밍 등 일부 주에서는 일정한 조건 아래 의사가 승인되지 않은 줄기세포 치료를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연방 차원의 FDA 규제와 별개로 주정부 차원에서는 오히려 문을 열어주는 곳들이 생겨난 것이다.

국제줄기세포연구학회(ISSCR) 회장을 지낸 숀 모리슨은 검증되지 않은 줄기세포 치료 시장을 “중대한 공중보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로버트 칼리프 전 FDA 국장도 정상적인 업체라면 규제당국의 경고만으로 행동을 바꾸지만 이 시장은 그렇지 않다며 사실상 규제 밖에서 움직이는 산업이라고 지적했다.


sj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