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 감사위원 표대결 완승
고려아연 측 백인규 후보 찬성 82%
MBK·영풍 측 박유경 28%…과반 실패
독립이사 4석은 양측 2명씩 확보
최윤범 측 이사회 ‘12대7’로 우위 확대
정관변경안 가결…분리선출 감사위원 2명
2년째 경영권 분쟁…내년 3월 재격돌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MBK파트너스·영풍 연합과의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다시 한번 승기를 잡았다. 경영권 분쟁의 핵심 승부처였던 감사위원 자리를 고려아연 측이 차지하면서 이사회 내 세력 구도는 기존 9대5에서 12대 7로 벌어졌다. 최 회장 측의 이사회 장악력도 한층 강해졌다.
고려아연은 9일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호텔에서 제53기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분리선출 감사위원 확대를 위한 정관 변경 ▷집중투표에 의한 독립이사 4명 선임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독립이사 선임 등 3개 안건을 처리했다. 이날 주총에는 전자투표와 위임장 제출 등을 포함해 의결권 있는 주식의 90% 이상이 참여할 정도로 높은 관심이 쏠렸다.
승부가 갈린 것은 마지막 3호 안건이었다. 고려아연 측은 한국·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을 보유하고 딜로이트에서 30년간 회계감사와 재무자문 경험을 쌓은 백인규 후보를 내세웠다. MBK·영풍 측은 네덜란드 연기금 운용사 APG에서 약 17년간 아시아·태평양 지역 책임투자와 기업지배구조 업무를 담당한 박유경 후보로 맞섰다.
표결 결과 백 후보 선임안의 찬성률은 출석 의결권 기준 81.8%로 집계됐다. 반면 박 후보 선임안의 찬성률은 27.9%에 그쳐 과반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두 후보에 대한 안건은 별개 안건이어서 한 주주가 두 후보 모두에게 찬성할 수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과반을 넘긴 고려아연 측 백 후보가 감사위원이 되는 독립이사로 선임됐다. 이번 감사위원 표 대결은 고려아연 측의 승리로 끝났다.
‘3%룰’서 갈린 승부…기관·소액주주 표심 최윤범 손 들어
이번 임시주총에서 감사위원 1석이 최대 승부처로 꼽힌 것은 양측의 전체 지분율만으로 승패를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MBK·영풍 연합은 지분율 기준 약 42.1%를 확보해 최 회장 측의 38.76%를 앞섰지만, 감사위원 분리선출에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해 3%까지만 인정하는 이른바 ‘합산 3%룰’이 적용됐다. 대주주의 지분 우위가 크게 희석되면서 기관투자자와 주요 주주, 소액주주의 표심이 승패를 가를 변수로 떠올랐다.
표결을 앞두고 분위기는 고려아연 측으로 기울었다. ISS와 글래스루이스를 비롯해 이건존스, PIRC, 서스틴베스트, 한국ESG연구소, 한국의결권자문, 한국ESG평가원 등 국내외 주요 의결권 자문사 9곳 가운데 8곳이 백 후보 선임에 찬성을 권고했다. 백 후보의 회계·감사 및 내부통제 분야 전문성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반면 MBK·영풍 측 박 후보를 지지한 곳은 한국ESG기준원(KCGS) 한 곳이었다.
고려아연 지분 5.44%를 보유한 국민연금은 백 후보와 박 후보 모두에게 찬성표를 던지기로 하면서 사실상 중립을 택했다. 이에 한화와 LG 등 주요 전략적 주주와 기관·소액주주의 선택이 더욱 중요해졌다.
주총장에서도 양측은 마지막까지 날 선 공방을 이어갔다. 영풍 측 대리인은 백 후보가 몸담았던 딜로이트와 고려아연 간 업무 관계를 거론하며 독립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고려아연 측에 우호적인 주주는 “한국과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을 가지고 있고 딜로이트에서 30년 동안 회계감사와 재무자문 업무를 했다”며 “감사위원회 역할을 고려했을 때 적합한 전문성”이라고 맞섰다.
박 후보도 직접 발언에 나서 “한 사람도 없는 것보다 한 사람의 독립이사가 있는 것이 전체 주주의 이익에 훨씬 더 부합한다”며 “전체 주주의 이익을 중심에 두고 경영진에 대한 견제와 감시 역할을 충분히 하겠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표심을 뒤집지는 못했다.
독립이사 4석은 2대2…감사위원 가져간 최윤범
앞서 독립이사 4명을 뽑는 2호 안건에서는 예상대로 양측이 두 자리씩 나눠 가졌다.
이형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와 서은숙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이준봉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심혜섭 변호사 등 후보 4명 전원이 독립이사로 선임됐다.
이 후보는 최 회장 측 우호주주로 분류되는 유미개발이 주주제안했고 서 후보는 고려아연 이사회 추천을 받았다. 이준봉·심혜섭 후보는 YPC·영풍·한국기업투자홀딩스 측이 제안했다.
이번 선임에는 주주가 보유주식 수에 선임 이사 수를 곱한 만큼의 표를 받아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는 집중투표제가 적용됐다. MBK·영풍 측 후보인 심혜섭·이준봉 후보가 득표 순위 1·2위에 올랐고, 이형규·서은숙 후보가 뒤를 이어 4명 모두 이사회에 진입했다.
독립이사 4석은 양측이 2석씩 나눠 가졌지만, 감사위원 자리까지 고려아연 측이 확보하면서 이사회 내 최 회장 측 우위는 더 커졌다. 기존 14명 이사회는 최 회장 측 9명, MBK·영풍 측 5명으로 분류돼왔으며, 이번에 독립이사 4명과 백인규 감사위원이 추가되면서 총 19명으로 확대됐다. 이에 따라 이사회 구도는 최 회장 측 12명, MBK·영풍 측 7명으로 재편됐다.
1호 안건인 분리선출 감사위원 확대를 위한 정관 변경안도 찬성률 100%로 가결됐다. 지난 3월 정기주총에서 한 차례 부결된 뒤 약 6개월 만에 문턱을 넘었다.
개정 상법 시행에 맞춰 감사위원 가운데 다른 이사와 분리해 선출하는 인원을 기존 1명에서 2명으로 늘리는 내용이다. 고려아연은 정관 변경안이 가결되면서 이날 백 후보를 추가 분리선출해 새 제도에 맞춘 감사위원 구성도 갖추게 됐다.
3월엔 부결됐던 정관변경도 통과
이날 장내에서 표 대결이 이어지는 동안 호텔 밖에서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주황색과 남색 작업복을 입은 고려아연 노조 조합원들은 ‘노동자의 터전 고려아연’, ‘MBK OUT’ 등이 적힌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영풍·MBK의 경영권 확보 시도에 반대하는 집회를 이어갔다.
주총장 안에서도 ‘적대적 M&A냐, 경영권 분쟁이냐’를 두고 양측의 신경전이 벌어졌다. 최 회장 측 우호주주인 유미개발 대리인은 “5년, 3년의 짧은 시계로 회사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금융자본의 입장에서 50년의 시계로 먼 미래의 먹거리를 추구해야 하는 고려아연 같은 회사에 제대로 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YPC 측 대리인은 “현재 상황의 본질은 적대적 M&A가 아니라 경영권 분쟁 상황”이라고 반박하며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이사회 구성이 필요하다고 맞섰다.
역대 최대 실적도 ‘방패’…최윤범 체제 힘 실려
이번 승리로 최 회장 측은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 다시 한번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기게 됐다.
고려아연은 그동안 MBK·영풍 측의 경영권 공격에 맞서 현 경영진의 실적과 미래 성장 전략을 적극 부각해왔다.
올해 2분기 연결기준 매출은 6조372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6.6%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5871억원으로 126.8% 늘었다. 상반기 누적 영업이익은 1조3332억원으로 반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비철금속 가격 상승도 실적에 힘을 보탰다. 고려아연의 주총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평균 국제가격은 아연이 전년 동기 대비 약 22%, 금은 53%, 은은 141%, 동은 39% 각각 상승했다.
기존 아연·연 중심의 제련사업에서 핵심광물과 자원순환, 이차전지 소재로 사업 영역을 넓히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켐코는 황산니켈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고려아연은 미국에서 핵심광물 공급망 구축을 위한 대형 제련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미국 통합 비철금속 제련소는 2029년 시운전을 목표로 핵심광물 11종을 포함한 비철금속 13종과 반도체용 황산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고려아연은 미국의 탈중국 공급망 정책에 맞춰 북미 전략광물 시장의 생산 거점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끝난 싸움은 아니다…내년 3월 다시 ‘빅매치’
다만 이날 승리로 2년 가까이 이어진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번 임시주총에서 최 회장 측이 이사회 우위를 유지했지만 MBK·영풍 연합은 여전히 고려아연 최대주주 측으로서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양측 모두 장기전에 대비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음 승부처는 내년 3월 정기주총이 될 전망이다. 이사 8명과 감사위원 1명의 임기가 만료될 예정인 만큼 이사회 구성을 놓고 다시 대규모 표 대결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번에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정관안까지 통과될 경우 내년 주총에서는 감사위원 선임과 이사회 주도권을 둘러싼 양측의 의결권 확보 경쟁이 한층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영풍·MBK 측은 이번 결과에 대해 “이번 선임으로 추천 이사가 총 7명으로 늘어나 이사회의 견제·감시 기능을 강화할 기반이 확대됐다”며 “박 후보가 감사위원으로 선임되지 못한 것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많은 주주들께서 현 경영진이 이뤄낸 성과와 거버넌스 개선을 위한 노력 등을 높게 평가해 경영 연속성 및 중장기 기업가치 제고에 힘을 실어주신 것으로 판단된다”며 “고려아연은 회사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저해하는 MBK·영풍 측의 부당한 경영 간섭 시도를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차단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프로젝트 크루서블과 트로이카 드라이브 전략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 주주와 시장의 기대에 부응하고, 국가기간산업이자 글로벌 핵심광물 공급망 허브로서 국가경제와 한미 경제안보 강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kwat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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