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서 상경, 은평구 원룸서 첫 서울살이
전입신고 미루다 경매로 보증금 잃기도
원룸 전전하다 ‘저축왕’ 여자친구 만나 ‘2막’ 열려
15년 간 서울에서 원룸, 1.5룸을 전전했어요. 정말 막막했었죠. 그런 제가 어떻게 돌파구를 찾았냐고요?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서울 성동구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강재혁(가명) 차장은 20년 전 경북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 진학을 위해 상경했다. 외곽지역 원룸에서 ‘서울살이’를 시작한 강 차장은 2년 전 내집마련에 성공한 뒤 아내,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혈혈단신 서울로 올라왔던 이 청년은 어떻게 시세 17억원대 아파트에 살게 된 걸까.
2006년, 대학에 입학한 강 차장의 첫번째 보금자리는 은평구 녹번역 인근 원룸이었다. 가격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25만원. 역세권임에도 저렴했던 가격엔 이유가 있었다. 경매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부동산에 관심이 많던 강 차장의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알고 일부러 그 집을 계약하게 했다. 대신 만일을 대비해 전입신고를 꼭 하라고 당부했다.
대학 생활에 몰두하던 강 차장은 ‘나중에 해도 되겠지’라며 전입신고를 미루고 만다. 강 차장은 “부모님이 보증금과 월세를 마련해 주셨는데도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며 “결국 일이 터졌다”고 말했다.
전입신고 안한 20살 대학생, 보증금 다 잃다
“방을 빼 주셔야 합니다.”
얼마 뒤, 경매에서 낙찰자가 나오면서 당시 세입자였던 강 차장은 집을 비워줘야 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점유와 전입신고 조건을 만족하면 보증금을 지킬 수 있었지만 강 차장은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대항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방공제(소액임차인이 은행보다 먼저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세입자 보호제도) 혜택을 받지 못한 강 차장은 부모님이 어렵게 만들어 주신 1000만원의 보증금을 졸지에 잃게 된다.
강 차장은 이때 크게 혼났다고 한다. 강 차장은 “제도를 잘 알아야 자산을 지킬 수 있다”는 교훈과 함께 아버지로부터 잊지 못할 인생의 조언을 듣게 된다.
“아들아. 내가 본 너는 경제관념이 부족하다. 너가 그걸 잘 키울 수 없거든 경제관념이 철저한 사람을 옆에 둬야 한다. 잊지 말거라.”
강 차장은 그 집에서 나와 종로구의 또 다른 원룸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경복궁 인근에 있는 고즈넉한 동네 분위기의 8평짜리 공간이었다. 이번에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가 40만원으로, 주거비가 늘었다.
1년가량 그곳에서 생활한 그는 군 복무를 마친 뒤 또다시 살 집을 찾아야 했다. 마침 친동생이 서울로 오게 되면서 2010년, 전세 8000만원의 관악구 투룸빌라에 살게 됐다. 이번에도 부모님이 도움을 주셨다.
주거의 질은 좋지 못했다. ‘옆집의 싸움소리가 생중계될 정도’로 방음이 되지 않았다.
고향에서 큰 부족함 없이 아파트 생활을 해왔던 강 차장은 원룸과 빌라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파트가 그리워졌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졸업 후 취업에 성공하면 조금 더 넓고 쾌적한 집에서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공부에 전념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종로, 마포, 영등포…계속된 원룸살이
2014년, 강 차장은 첫 취업과 함께 마포구의 오피스텔로 집을 옮긴다.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는 60만원. 직주근접을 위해 역세권을 선택한 대가는 높은 주거비였다. 이제부터는 스스로 월세를 내야했다.
강 차장의 당시 첫 월급은 약 280만원. 관리비를 포함해 버는 돈의 30% 가까이를 주거비로 내다 보니 한달에 모을 수 있는 돈은 100만원을 넘기기 어려웠다.
“이렇게는 안돼. 전세로 가자.”
마포 오피스텔의 ‘2년 계약’이 끝난 2016년, 강 차장은 1억2000만원짜리 영등포구 원룸 전세를 구해 입주한다. 대학시절 부모님이 보태주신 4000만원의 자금에 8000만원을 추가로 대출받아 보증금을 마련했다.
주거비가 절반 가까이로 줄었지만 강 차장은 여전히 월급의 70% 가까이를 썼다. 그는 “서울의 물가가 워낙 비싸고 아끼는 성격이 아니었다 보니 신용카드 없는 생활을 꿈꾸지 못할 정도였다”면서 “비트코인도 한참 유행이어서 이런저런 투자에 도전했지만 잔고에 쌓이는 것은 없었다”고 돌아봤다.
그런 그에게 전환점이 된 건 2019년 코로나19 시기다.
2020년 3월, 코로나19 여파로 한국은행이 당시 금리를 내리면서 이른바 ‘제로금리’ 시대가 열린 것이다. 4억원을 빌려도 월 이자는 25만원에 불과해 원룸 월세 비용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신축아파트 전세살이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강씨 주변에서도 신축아파트 전세로 이사를 가는 경우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계속 원룸에만 살 수는 없어. 나도 아파트에 살고 싶어.”
다만 보증금을 한 번 잃은 경험이 있는 강 차장은 접근을 달리했다.
경매와 계약만료, 5번의 이사를 겪은 그에게는 당장의 주거비 절감보다 4년 이상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임차 조건이 더 중요했다.
강 차장은 “청약 같은 제도를 공부하면서 임대료 상승률이 5%로 제한되고 최대 8년을 거주할 수 있는 공공지원 민간임대 아파트를 알게 됐다”면서 “제로금리인데 왜 월세를 내냐고 주변에서 말렸지만 제도를 잘 이용하면 결국 자산을 불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했다.
민간임대 아파트를 알게 된 강 차장은 구로구 고척아이파크 민간임대아파트(전용 64㎡) 청약을 신청, 당첨된다. 고척아이파크는 IPARK현대산업개발이 옛 서울남부구치소 부지에 지은 최고 45층 높이 2205가구 규모 단지로, 청년을 위한 특별공급은 64㎡A 물량 9가구 경쟁률이 29.89대 1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2022년 10월, 강 차장은 보증금 2억2700만원에 월세 42만원을 내는 조건으로 민간임대 아파트에 입주한다. 부모님 돈 4000만원에 더해 7년 간의 직장 생활로 모은 금액 약 7000만원, 나머지는 2%대 전세자금대출을 받아 자금을 마련했다.
“8년 간 살 집은 구했다!”
강 차장은 이때까지만 해도 집을 매수할 생각이 없었다. 강 차장은 “주거비, 생활비, 교통비 등 각종 고정비를 내고 나면 저축가능한 금액이 수입의 30%를 넘지 못했다”면서 “15년 간의 원룸생활이 끝난 게 마냥 기뻤고, 값비싼 가전제품을 사서 입주를 준비하는 일명 ‘욜로(YOLO, you live only once)’족에 가까웠다”고 돌아봤다.
민간임대아파트에서 8년 가까이 살 수 있을 거란 강 차장의 계획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달라진다.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바로 지금의 아내인 박보람(가명) 씨다. 박 씨는 본가에 살며, 70% 이상의 수입을 저축 및 투자로 운용해오던 직장인이었다.
“당시 여자친구가 대화 중에 ‘성과급은 비정기저축이야’라는 말을 했는데 저는 큰 충격을 받았어요. 저는 성과급을 받으면 쇼핑을 하거나 해외여행을 하는데 썼는데 이 사람은 저와 정 반대의 삶을 살았더라고요.”
강 차장은 “당시 여자친구는 제가 풀빌라에 놀러 가자고 하면 더 저렴하고 합리적인 숙소가 있다고 저를 설득하는 사람이었다”면서 “외모도 제 이상형이었지만, 경제관념을 갖춘 사람을 만나라는 아버지의 조언에 꼭 들어맞았다”고 했다.
강 차장은 다음해, 박씨에게 청혼한다. 미소로 승낙한 보람 씨는 강 씨가 예상하지 못한 말을 꺼냈다. “오빠, A4용지 한 장이랑 펜을 가져 와. 확인해야 할 게 있어.”
강 차장의 인생이 또 한번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자신의 넷플릭스 정기구독료 결제일이 언제인지도 몰랐던 강 차장은 경제관념이 투철한 여자친구를 만나 결혼을 꿈꾸게 된다. 대출의존도가 높았던 강 차장과 저축 전문가였던 박보람씨는 서로 역할을 분담해 내집마련의 목표를 갖게 되는데…(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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