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는 2010년대 중반부터 상승장에 진입했다. 1980년대생은 이 시기 ‘집을 샀냐’에 따라 자산 격차가 벌어졌다. 서울 집값은 그 후로 등락이 있긴 했지만, 상승폭이 더 컸다. 월급을 모아선 집값 상승폭을 따라잡기 힘들게 됐다.
학습효과는 무섭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벼락거지’가 되지 않기 위해, 기회가 있을 때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해 ‘패닉바잉(공황매수)’에 나서는 게 서울 주택 시장의 모습이다.
헤럴드경제의 로그인콘텐츠 <김부장은 어떻게 서울에 집 샀나>는 1980년대생, 부장 혹은 차장 직함을 가진 평범한 K-직장인들의 부동산 투자기를 연재한다. ‘사고 싶은 집’과 ‘살고 싶은 집’의 경계에서, 월급 모아 내 집마련에 성공한 이들이 이야기는 <실전 재테크>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한 이야기를 꾸밈없이 전달하기 위해 주인공의 실명은 밝히지 않기로 했다.
▶박 차장은 누구인가
1985년생, 8살 아이 아빠
2010년 대기업 입사한 차장
2018년 서울 서초구 나홀로 아파트를 10억원에 매수한 후 5년 만에 서초 진흥으로 갈아탔다.
사내 커플로 만난 아내가 해외 주재원으로 파견돼 잠시 휴직, 그녀를 내조하며 육아에 전념하고 있다.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금수저 아니에요?”
2023년 박 차장이 서초구 대표 재건축 아파트 서초진흥아파트를 매수하자, 주변인들은 이렇게 물었다. 30억원이 넘는 강남 아파트를 평범한 직장인이 월급 모아 사기란 꿈도 꾸기 어렵지 않은가. 하지만 그는 양가의 자금지원 없이 그야말로 ‘아끼고 아껴’ 강남에 ‘내돈내산’ 입성했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 매수를 일으킬 수 있었던 건 그가 본업을 잘하는 ‘일잘러’ 였다는 것과 똑똑하고 과감했던 첫 투자라는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입사 8년차, 신축보다 입지…서초 나홀로로 갔다
1985년생 박재민(가명) 씨는 대기업 16년차 차장이다. 아내는 사내 커플, 부부 합산 연봉은 높지만 첫 연봉은 3500만원에서 시작했다. 입사 후 13년 만에 연봉 100배에 달하는 30억원대 아파트를 자가 소유한 그는 부모님에게 받은 돈은 사실상 없다. 어떻게 서초 진흥 소유주가 될 수 있었을까.
박 차장은 “첫 집 마련이 빨랐다”고 했다. 그는 서른 셋, 2018년 결혼을 앞두고 “집을 사자”고 마음을 먹는다. 모아뒀던 목돈(4억원)과 배우자의 저축액(3억원)을 합했다. (☞7억원이나 모은 비법은 뒤에 나온다)
경기도와 강북에 더 저렴한 집이 있었지만 이들 부부는 ‘처음 살 때 크게 오를 집을 사자’고 뜻을 모은다. 서울에 30년 넘게 살면서 수천만원 차이였던 강남과 강북의 집값이 수억원으로 벌어지는 것을 본 박 차장은 ‘살고 나와도 오를 집’을 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와 함께 ①직주근접이 가능한 ②좋은 입지의 ③저평가된 아파트를 찾아 나섰다. 강남권 맞벌이 부부인 두 사람은 직장과 40분대 거리의 역세권 서초구 아파트를 돌아다니며 A아파트를 발견했다. 당시 9억원대였던 송파구 가락동 대단지 아파트 헬리오시티보다 1억 가까이 비싼 가격이었다. 나홀로아파트라는 단점이 있었지만 3억5000만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더해 매수에 뛰어든다.
그는 “집의 연식, 커뮤니티의 부재 등 모든 것이 열위였지만 입지를 우선한 선택”이었다며 “A아파트는 몇 년 안에 횡단보도 하나만 둔 거리에 대단지 신축 아파트가 들어올 예정이었다. 생활권을 공유하지만 주변 신축 대비 같은 평수가 10억원 넘게 저렴해 투자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실거주 만족도도 높았다. 우선 3시간 걸리던 출퇴근이 1시간 내로 줄며 시간이 생기고 체력이 좋아졌다. 세대 수가 100세대도 안 되는 아파트라는 점은 장점도 있었다. 사생활 보호와 조망이 더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거실에서 옆 동이 아닌 ‘산책로 뷰’를 볼 수 있고 365일 내내 커튼을 칠 필요가 없어 정원을 끼고 사는 느낌이 드는 집”이었다고 했다.
“빨리 일을 시작하자” 스물 여섯, 입사가 빨랐다
내 집 마련이 빨랐던 것은, 입사가 빠른 덕이다.
그는 스물 여섯, 2010년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무엇보다 대학 졸업을 서둘렀다. 어학연수도 없었고 휴학도 없었다. “스펙보다 빨리 일을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라는 한 선배의 말을 듣고, 이른 졸업을 택했다.
일을 빨리 시작한 것은, 그의 목표가 ‘돈에 얽매이지 않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서초구 우면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전세로 시작한 부모님이 1992년 노원구 아파트를 첫 집으로 매수하게 되면서 박 차장은 27년을 강북에서 살았다. 그가 유년기를 보낸 1990년대는 대규모 택지개발이 이뤄지면서 각계각층의 가정이 노원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어린 시절 10평짜리 주공아파트에 사는 친구, 달동네에 사는 원주민, 음악실을 집에 가진 친구 등 다양한 계층의 가족들을 볼 수 있었던 배경이다.
박 차장은 “부모님이 장사를 하시기도 했고 자산에 따라 누릴 수 있는 것이 다르다는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다”면서 “경제관념이 일찍 확립된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서 5억을 모아 대출을 활용해 꼬마빌딩을 사자. 월세를 받으며 사는 파이어족(FIRE, 조기은퇴자)이 되자는 꿈을 꿨다”면서 “결혼을 계획하며 꼬마빌딩보다 내 집 마련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바꿨다”고 밝혔다.
삼시세끼 구내 식당만…결혼할 때 7억 종잣돈 비법
이른 입사 후 ‘파이어족’을 꿈꿨기 때문에 철저히 소비를 통제했다. 마이너스 통장을 뚫어 유럽여행을 가거나 명품을 사는 동기들도 있었지만 박 차장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는 “목돈을 만들기 위해서는 돈 쓰는 습관을 들이지 않아야 했다”면서 “회사에서 하루 세 끼 식사를 줘 ‘구내식당돌이’로 살았고 일부러 술, 담배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20대 때 한 달 용돈은 50만원, 30대가 돼서도 용돈을 70만~80만원으로 유지한 탓에 돈이 불어나는 속도는 기대 이상이었다.
‘본가 거주’와 대기업 직장인이라는 환경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했다. 주거비를 아끼기 위해 노원구 본가에서 평일 새벽 5시반 집을 나서며 왕복 3시간을 길에서 보냈다. 2010년 당시 저축은행의 금리가 6~7%에 달해 ‘저금하는 맛’을 누릴 수 있었다. 연봉의 70% 이상을 저축하는 삶을 유지하며 해외여행, 시계, 명품은 포기했다. 꼭 여행을 가고 싶을 때는 회사 복지로 제공되는 국내 콘도를 이용했다.
박 차장은 “결혼 전엔 해외여행을 돈을 내고 가 본 적이 없다”면서 “3~4일을 위해 몇 주의 급여를 쓰는 것이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여행에 가서 하루 50만원을 쓰는 것 대신 1년간 그 돈으로 즐겁게 노는 것도 괜찮다는 가치관은 결과적으로 목돈을 만드는 데는 도움을 줬다.
이렇게 결혼 전 모은 목돈이 4억원. 단순히 계산해도 1년에 4000만원을 모았다는 건데 저축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시대적 특성도 영향을 끼쳤다. 박 차장은 2018년 주52시간제가 시행되기 전까지 주68시간, 혹은 그 이상을 일하는 삶을 살았다고 했다. 그는 “평일 2시간 초과근무가 기본이었는데 그때마다 교통비 명목으로 1만5000원을 받았고 매주 주말 출근을 하니 수당이 붙었다”면서 “업무시간이 너무 많아 힘들었지만 이렇게 받은 야근비가 연평균 1000만원이 넘었다”고 했다.
근무시간이 과도해 스트레스가 컸지만 2017년 예상치 못한 보상이 돌아왔다. 1년 동안 회사가 보내는 해외 연수 대상자로 선발된 것이다. 박 차장은 “업무시간이 항상 ‘탑’이었어서 상위 고과를 받았고 체류비를 지원받으며 공부하는 기회가 생겼다”면서 “연봉을 100% 저축했고 해외 생활을 하는 사이 묵혀뒀던 주식이 5000만원 가까이 수익을 나면서 그 해만 1억 가까이 순자산이 늘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차근차근 재산을 불린 덕에 마련한 서초 나홀로 아파트는 5년 만에 10억원에서 16억3000만원으로 값이 올랐다. 그런 그가 서초 진흥으로 갈아타기에 성공한 비법은 바로 ○○였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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