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는 2010년대 중반부터 상승장에 진입했다. 1980년대생은 이 시기 ‘집을 샀냐’에 따라 자산 격차가 벌어졌다. 서울 집값은 그 후로 등락이 있긴 했지만, 상승폭이 더 컸다. 월급을 모아선 집값 상승폭을 따라잡기 힘들게 됐다.
학습효과는 무섭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벼락거지’가 되지 않기 위해, 기회가 있을 때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해 ‘패닉바잉(공황매수)’에 나서는 게 서울 주택 시장의 모습이다.
헤럴드경제의 로그인콘텐츠 <김부장은 어떻게 서울에 집 샀나>는 1980년대생, 부장 혹은 차장 직함을 가진 평범한 K-직장인들의 부동산 투자기를 연재한다. ‘사고 싶은 집’과 ‘살고 싶은 집’의 경계에서, 월급 모아 내 집마련에 성공한 이들이 이야기는 <실전 재테크>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한 이야기를 꾸밈없이 전달하기 위해 주인공의 실명은 밝히지 않기로 했다.
사회초년생 시절, 회식이 끝나고 집까지 1시간 30분 걸려 가면서 체력적으로 벅차 서러운 마음이 든 적이 있다. 회사든, 약속장소든, 30분이면 도착해 내 발 뻗고 누울 수 있다는 경험은 감히 생각도 못해봤던 편리함이다. ‘강남 신축’을 원하게 한 원동력이 됐다.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박 차장의 서초 나홀로 아파트 생활은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특히 직주근접은 출퇴근 시간과 에너지를 크게 아껴줬다.
박 차장은 “(집 근처인) 양재역 쪽에는 카페, 헬스장, 골프연습장이 밀집해 있어 골라가는 재미가 있었다”면서 “재테크 측면에서는 적극 추천하지는 않지만 ‘입지가 좋은 나홀로아파트는 커뮤니티 시설이 필요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누릴 수 있는 게 많다”라고 돌아봤다.
3시간 걸리던 출퇴근이 1시간으로 줄어든 것은 일상을 바꾸는 일이었다. 몸은 덜 피곤하고 아내와의 대화는 늘어났다. 하루 2시간이 생긴다는 건 일주일이면 10시간, 한 달이면 이틀을 새로 얻는 것과 같았다. 취업 후 왕복 3시간을 10년 가까이 길에서 보내 본 박 차장은 이 시간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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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안에 3억을 갚자.
대출을 끼고 산 집은 ‘원리금 상환’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이들 부부에게 심어줬다.
그는 “결혼이 재테크의 전환점이 됐다”면서 “사회초년생 때처럼 주변의 종목추천, 단기 투자 등으로 수익을 내는 주식 투자는 배우자에게도 부담을 주는 일이라 멈춰야 했다. 대신 출퇴근 길에 경제 유튜브를 보고 책을 찾아보면서 우리 가정에 맞는 주식 투자 스타일을 익혔다”라고 했다.
이 노력은 코로나19 시기, 이들 부부에게 6000만원이라는 수익을 안겨준다. 코로나19 국면이었던 2020년 3월~2021년 2월 시기는 주식 활동계좌 수가 843만 개 증가, 개인 투자자들의 87조원 가까운 순매수(자본시장연구원 자료)가 일어났던 ‘주식 열풍’ 시기다. 때로는 강의를 듣고 경제기사를 찾아보던 박 차장의 꾸준한 공부가 기회를 준 것이다.
“옆 단지 래미안은 10억 올랐대, 이사가자”
2021년, 아내가 “빚을 더 내 이사가자”고 말을 꺼냈다. 서초그랑자이, 래미안리더스원 신축 단지들과 생활권을 공유하자, 시간이 흐를수록 상승폭의 차이가 커 상대적 박탈감이 들었다. 실제 박 차장의 84㎡(이하 전용면적) 나홀로 아파트가 10억에서 14억(40%↑)이 될 때, 같은 평수인 인근 래미안서초에스티지의 시세는 18억원대에서 29억원대(60%↑)로 올랐다.
이들 부부는 송파구 신천동의 대단지 아파트였던 파크리오로 ‘갈아타기’를 결심했지만 이루지 못한다. 첫 집 매수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어려움이 발목을 잡았다.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두 번째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기존 집을 팔아야했다. 하지만 금리 인상이 본격화되며 주택시장이 하락기에 접어들자 거래가 끊겼다.
박 차장은 “매도까지 2년이 넘게 걸렸는데 그동안 우리 집에 방문한 분은 서너팀이 전부”라며 “아내가 부동산에 주기적으로 전화를 돌리고 집 보러 오는 날은 대청소하는 날이었다”라고 돌아봤다.
우리집도 6억이 올랐다…“이제 신축이 될 곳 가자”
2023년 8월, ‘부동산 사장님의 추천으로 우연히 집을 보러 온 한 가족’이 집을 사겠다고 했다. 그렇게 박 차장은 10억원에 샀던 나홀로아파트를 16억3000만원에 팔게 된다.
매수인을 기다리는 사이 이들 부부는 ‘신축이 될 강남아파트’로 목표를 바꾼다. 결혼 생활 5년간 처음 일으켰던 대출을 대부분 갚은 게 컸다. 매도 시 16억원의 자금을 마련하게 된 것은 더 높은 가격의 아파트를 감당할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박 차장은 “결혼 직후부터 가족카드를 만들어 각종 공과금, 생활비 등 소비는 모두 제가 관리하며 5년 동안 3억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대부분 갚는데 ‘올인’했다”면서 “대기업 맞벌이가 자차, 명품, 해외여행 없는 생활을 유지하며 소비를 늘리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결과”라고 했다.
다음 집은 신축이 될 강남 재건축이되, 속도가 빠르고 ‘실거주’가 가능한 매수인이라는 자신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단지로 찾기로 했다.
강남역 5분 거리, 615세대, 서초 진흥으로 갈아탔다
삼풍, 럭키 등 후보지가 있었지만 당시 서초동에서는 진흥이 서울시 신속통합기획으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었던 점이 박 차장의 눈길을 끌었다. 규제 때문에 시세 대비 더 저렴한 부분이 있었고 실거주가 가능한 부부의 상황이 장점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초진흥을 사기 위해서는 5억5000만원의 주담대가 필요했다. 박 차장은 “신혼 초기 아끼고 아껴 어렵게 갚은 주담대를 또 일으킨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이 방법 외에는 신축아파트를 살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이들 부부는 5년 간 저축과 주식 투자 수익 등으로 모은 2억원의 추가 자금, 기존 매수자금 16억원, 5억5000만원의 주담대를 받아 그해 가을 서초진흥 101㎡ 매물을 약 23억원에 매수한다. 이번에도 양가 부모님의 재정 지원을 구하지 않았다.
박 차장은 “대출 원리금은 한 달에 470만원 정도였는데 월 소득의 40%가 넘지 않게, 과소비를 하지 않는다는 저희 부부만의 기준을 세웠고 ‘질러놓은 만큼 강제 저축한다’는 생각이 있기에 가능했던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결심엔 근거가 있었다.
이들 부부는 ‘본업’을 잘했다. 이직으로 연봉이 15% 이상 올랐다. 또 앞으로도 맞벌이를 이어나갈 의지, 대기업 정규직으로 얻는 월급을 투자로 불려 나가는 재테크 습관은 박 차장의 ‘믿을 구석’이 돼 주었다.
서른여덟 가을, 그는 그렇게 자신보다 더 나이가 많았던 44년차 서초진흥(1979년 준공)에 입주한다.
1층 엘리베이터로 가는 유일한 진입로에 계단이 있어 유모차를 끌기에 참 불편하겠다 싶었다. 거실엔 구리색 라디에이터가, 방엔 쥐구멍 같은 난방밸브가 있었다. 아이가 손대지 못하게 ‘저기는 쥐구멍이야’라고 설명해줬던 기억이 난다.
그에게 서초진흥 아파트는 투자와 실거주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선택이었지만 대가가 따랐다.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노란 장판의 서초진흥 아파트는 작은 발코니, 투베이 구조인 탓에 101㎡ 매물이었지만 실제로는 82㎡ 면적이었다. 첫 집보다 더 낡고 좁은 컨디션을 가지고 있었다.
박 차장은 “인테리어 과정에서 벽체의 곰팡이와 벽이 휘어져 있는 구조적 문제를 겪으며 당황스러운 순간이 많았던 게 사실”이라며 “그래도 정을 붙이고 살면 괜찮을 거라고 서로 다독이며 이사 준비를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두번째 집에서의 생활은 같은 서초동이지만 또 달랐다. 강남역 5분 거리라는 입지는 더욱 교통이 편리해짐을 의미했다. 테헤란로를 바로 앞에 두고 ‘어디든 30분’ 내 갈 수 있다는 장점은 박 차장이 수천만 원에 달하는 자동차 구입비를 아끼도록 만들었다.
시세 30억원대 아파트에 살게 된 박 차장 부부가 꿈꾸는 다음 집은 어디일까. 이 질문에 대한 박 차장의 대답은 ○○였다. 3번째 보금자리에서의 삶을 위해 그는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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