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
2002년 ‘오아시스’로 같은 상 받아
“영화로 뭘 할 수 있나 질문은 계속”
토론토영화제 이어 美아카데미 겨냥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어져 가는 시대에,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영화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이 상은 그 질문을 계속하라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이창동 감독)
이창동 감독이 신작 ‘가능한 사랑’으로 24년 만에 베니스에서 은사자상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가능한 사랑’은 12일(현지시간) 저녁 이탈리아 베니스 리도섬 살라 그란데에서 열린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 수상작으로 호명됐다.
한국 영화가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수상한 것은 2012년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 이후 14년 만이다. 이 감독은 2002년 ‘오아시스’로 베니스에서 감독상(은사자상)을 받은 이후 24년 만에 다시 경쟁부문에 진출해 또 한 번 은사자상을 품에 안았다.
▶“황금사자 아니어서 실망? 이걸로 충분”=이날 폐막식에서 이번 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인 매기 질렌할이 ‘가능한 사랑(Possible Love)’을 호명하자, 이 감독은 제작진과 함께 기쁨의 순간을 나눈 뒤 담담한 모습으로 시상대에 올랐다.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잠시 객석을 둘러본 그는 “24년 만에 아름다운 축제에 저를 불러주신 베니스영화제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소감을 시작했다.
이어 “이 영화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다림과 인내가 없었으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 회상하며 “이 영화를 기다리느라 매일 술을 마셔야 했던 이준동 제작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고 농담 섞인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또한 이 감독은 “이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믿고 제작해 준 넷플릭스에게도 감사하다”면서 “오래전에 접어야만 했던 이야기를 저와 함께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준 오정미 작가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감독이 ‘버닝’(2018)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신작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와 그의 아내, 다큐멘터리 감독과 그의 남편 등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두 부부가 만나 숨은 욕망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밀양’(2007) 이후 이 감독과 재회한 전도연, ‘박하사탕’(2000)과 ‘오아시스’에 이어 이 감독과 세 번째 호흡을 맞춘 설경구, 그리고 조여정과 조인성이 주연했다.
‘가능한 사랑’은 6일 베니스에서 7분간의 기립 박수 속에 성공적으로 월드 프리미어 상영을 마쳤다. 이후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돼왔다. 폐막식을 앞두고는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 수상작으로 선정되면서 기대감이 한층 커졌다.
기대와 달리 이번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은 마이 엘투키 감독의 ‘우먼 언노운(Woman Unknown)’에게 돌아갔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덴마크를 배경으로, 독일군 병사와 관계를 맺었던 과거를 숨긴 채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여성 마리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 감독은 “황금사자가 아니어서 실망하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이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며 “수상 그 자체보다 베니스에서 영화를 처음 공개하고 관객과 처음 만난 경험, 그리고 그 관객들의 표정과 반응 속에서 오간 감정이 저에게 더 큰 의미와 힘이 됐다”고 말했다.
▶닻 올리는 오스카 레이스…“이제부터 시작”=이 감독은 자신의 이야기에 기꺼이 함께해준 배우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이어진 토론토국제영화제 참석 일정 탓에 현장에서 수상의 기쁨을 함께 나누지 못한 아쉬움도 전했다. 그는 시상대에서 “이 상은 여러분들의 것”이라며 배우들에게 수상의 영광을 돌리기도 했다.
‘가능한 사랑’은 10일 개막한 제51회 토론토국제영화제(TIFF)로 무대를 옮겨 북미 관객과 만난다. 앞서 이 감독은 한국 감독 최초로 올해 토론토영화제의 트리뷰트 어워즈 ‘TIFF 에버트 감독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에버트 감독상은 독창적인 비전과 영화적 혁신을 보여준 감독에게 영화제가 수여하는 상이다.
영화는 오는 9월 23일 국내 일부 극장에서 일정 기간 관객을 만난 뒤, 11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스트리밍된다. 내년 초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부문 한국 대표 출품작이기도 하다.
수상의 영광과 함께 베니스 여정을 마무리한 이 감독은, 이번 영화제가 앞으로 이어질 긴 여정의 시작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이제 처음으로 여기서 관객을 만나게 됐는데, 이제부터 저는 시작이라고 본다”며 “많은 관객들과 만나서 이 영화를 통해 얼마만큼 서로 소통하고, 영화에서 하려는 이야기를 관객과 공유하고 서로 공감하게 될지 굉장히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미정 기자
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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