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교통·복지 현장 두루 거친 ‘정책통’…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로 제2의 인생
최장수 언론과장 기록부터 기후동행카드 탄생까지…“이론과 현장 잇는 인재 키울 것”
[헤럴드경제=박종일 선임기자] 서울시 공직생활 33년을 마친 윤종장 전 복지실장이 이번에는 대학 강단에 섰다.
서울시청에서 언론홍보의 기틀을 다지고, 시민의 발인 대중교통 정책을 지휘하고, 취약계층의 삶을 보듬는 복지행정을 총괄했던 그가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초빙교수로 변신했다.
공직을 떠난 뒤 한 학기 정도 쉬며 앞날을 준비하는 통상적인 경로도 택하지 않았다. 지난 7월 31일 명예퇴직한 그는 9월부터 곧바로 강의를 시작했다. 자칫 나태해질 수 있는 자신을 다시 한번 채찍질하기 위해서였다.
윤 교수는 “서울시 교통정책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학생들과 나누고 싶다”며 “이론과 정책 현장을 연결해 미래 교통 분야가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기획·언론·교통·복지 두루 거친 ‘서울시 정책통’
윤 교수는 1969년 충남 논산, 현재의 계룡시에서 태어났다. 유성고와 충남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과 미국 콜로라도대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MPA)를 받았다. 서울시립대 대학원 행정학 박사과정도 수료했다.
충남대 행정학과 4학년이던 1993년 제37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다. 이후 서울시에서 기획과 언론홍보, 교통, 복지 등 핵심 분야를 두루 거쳤다.
사무관 시절에는 기획 분야에서 정책의 밑그림을 그렸다. 서기관이 된 뒤에는 언론홍보 현장에서 서울시와 언론의 소통 방식을 바꾸는 데 힘을 쏟았다. 국장과 실장 시절에는 시민 생활과 밀접한 교통과 복지 분야의 굵직한 현안을 이끌었다.
교통기획관과 서울시립대 행정처장, 광진구 부구청장, 시민소통기획관, 한강사업본부장, 도시교통실장, 복지실장 등을 역임했다. 서울시 행정의 여러 축을 두루 경험한 ‘정책통’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특히 교통실장과 복지실장을 연이어 맡은 이력은 서울시에서도 보기 드문 사례다. 두 조직 모두 예산과 사업 규모가 큰 데다 시민 생활과 직결된 현안과 민원이 끊이지 않는 대표적인 격무 부서다.
윤 교수는 교통과 복지라는 서울시 행정의 ‘양대 사령탑’을 잇달아 맡으며 빠른 판단력과 강한 추진력을 보여줬다.
3년 넘게 언론과장…아직 깨지지 않은 최장수 기록
윤 교수의 공직 이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리가 언론과장이다.
그는 2011년부터 3년 넘게 서울시 언론과장으로 근무했다. 서울시 과장급 보직 가운데서도 업무 강도가 높고 조직 안팎의 긴장감이 큰 자리다. 그가 세운 최장수 언론과장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윤 교수가 당시 만들고 시행한 언론홍보 매뉴얼의 기본 골격은 현재도 서울시 대변인실에서 활용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단순히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언론 보도에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 정책 속에서 뉴스가 될 이슈와 아이템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홍보의 중심을 옮겼다.
윤 교수는 “언론홍보의 기본이 언론과의 소통을 바탕으로 정책 이슈와 아이템을 발굴하는 방향으로 바뀐 시점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서울시와 출입언론의 관계를 형식적인 갑을관계가 아닌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상호 협력 관계로 전환하려 했다는 설명이다. 출입기자들이 신뢰하는 언론담당 공직자는 정책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쟁점에 대한 서울시의 입장을 신속하게 정리해주는 사람이다. 윤 교수는 이런 언론홍보의 기본 원칙을 서울시 대변인실에 뿌리내린 인물로 평가받는다.
서울시 대표 정책 기후동행카드 만든 ‘기동카의 아버지’
윤 교수의 이름을 시민들에게 가장 널리 알린 정책은 기후동행카드다.
그는 도시교통실장 재임 당시 도시철도 계획과 서울지하철 관리, 교통수요 관리, 대중교통 요금 조정, 버스준공영제 혁신, 버스·택시 자율주행, 자전거와 보행친화정책 등 서울의 교통정책 전반을 총괄했다.
이 가운데 2024년 1월 출시된 기후동행카드는 서울시의 대표적인 정책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일정 금액을 내면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이 카드는 청년과 학생을 비롯한 많은 시민에게 호응을 얻었다. 중앙정부도 이를 벤치마킹해 ‘모두의 카드’ 정책으로 발전시켰다.
정책 아이디어를 실제 제도로 만들어 시민의 일상에 정착시키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교통수단별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했고, 요금과 재정 부담을 계산해야 했으며, 시스템도 새로 구축해야 했다.
윤 교수는 기획부터 시행까지 전 과정을 진두지휘했다. 정책결정자인 시장부터 실무 팀원까지 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조율하며 사업을 현실로 만들었다.
당시 사업에 참여했던 직원들은 “윤 실장과 일했던 때가 가장 열정적이고 행복했던 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지금도 그를 ‘기동카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다.
기후동행카드는 윤 교수의 업무 스타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방향을 정해야 할 때 판단을 미루지 않고, 일단 결정된 정책은 강한 추진력으로 실행하되 실무자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는 방식이다.
기피 부서 복지실을 ‘일하고 싶은 조직’으로
윤 교수는 2025년 1월 복지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복지실은 기초생활수급자 생활보장, 저소득층 소득 지원, 노인·장애인 복지, 보훈단체와 사회복지법인 지원, 노숙인과 저소득층 자활, 고독사 예방, 통합돌봄, 1인가구 정책 등을 담당한다.
예산과 사업 규모 면에서 다른 실·국을 압도한다.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민원이 많고 업무 강도도 높아 서울시 안에서도 근무를 부담스러워하는 부서로 꼽힌다.
윤 교수는 이런 복지실을 직원들이 근무하고 싶어 하는 조직으로 바꾸려 했다. 새로 발령받은 직원이 오면 간부들이 직접 환영하도록 하고, 관행적으로 이어지던 불필요한 일을 줄였다. 현안에 대한 방향을 빠르고 명확하게 제시해 실무자들이 겪는 혼선과 부담도 덜어주려 했다.
직원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소통하는 것도 중시했다. 직급을 앞세우기보다 담당 직원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책임져야 할 사안에서는 간부가 앞에 섰다.
그의 명예퇴직 소식이 알려지자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와 내부 게시판 등에 연임을 바라는 글이 잇따랐다. 복지실 직원들은 “업무 방향에 대한 판단이 빠르고 정확하다”, “직원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소통한다”, “인성과 실력을 모두 갖춘 간부”라고 평가했다.
직원들이 마련한 퇴임식…“현재 맡은 일이 가장 소중”
지난 7월 31일 명예퇴직을 앞두고 복지실 직원들은 윤 교수를 위한 퇴임식을 직접 마련했다. 행사에는 복지실 직원뿐 아니라 교통실과 홍보기획관, 한강사업본부 등에서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33년 공직생활 동안 여러 부서를 거쳤지만 함께 일했던 직원들이 부서를 넘어 한자리에 모였다는 점에서 그의 공직생활을 압축해 보여준 장면이었다.
윤 교수는 퇴임사에서 “지난 33년 공직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친다”며 “지금 이 자리, 현재 맡은 일이 가장 소중하다. 일 때문에 소중한 사람이나 순간을 놓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는 또 “많이 듣고, 많이 보여줘야 한다”며 “내가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줘야 상대방도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그래야 소통이 가능하고 서로 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완벽한 모습만 내세워서는 상대의 진솔한 마음을 얻기 어렵다는 뜻이다. 빠른 판단과 강한 추진력 못지않게 인간적인 소통을 중요하게 여긴 그의 리더십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행정학 대신 교통공학…현장의 경험을 교실로
윤 교수는 제2의 인생을 준비하면서 행정학과와 교통공학과 사이에서 고민했다.
33년 동안 행정 현장을 누빈 만큼 행정학은 익숙한 분야였다. 그러나 많은 서울시 선배 공무원이 이미 행정학 강의를 통해 공직 경험과 식견을 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자신이 한 손을 더 보태는 것보다 교통이라는 전문 분야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는 편이 의미가 크다고 판단했다.
그가 최종적으로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를 선택한 배경이다.
서울시 교통 분야에서 과장과 국장, 실장을 거치며 쌓은 경험은 그의 가장 큰 자산이다. 도시철도 계획과 운영, 기후동행카드 도입, 버스준공영제 혁신, 자율주행, 택시·자전거·보행정책 등은 교과서만으로 익히기 어려운 살아 있는 정책 사례다.
윤 교수는 앞으로 이런 경험을 연구와 강의에 접목할 계획이다. 정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고, 수많은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정하며, 좋은 아이디어를 시민이 체감하는 제도로 어떻게 완성하는지를 학생들에게 전하겠다는 것이다.
이론과 기술 중심의 교통공학에 행정과 정책의 관점을 더하는 다학제적 교육도 구상하고 있다. 미래의 교통 전문가는 기술만 이해해서는 부족하며, 시민의 삶과 행정의 작동 원리까지 함께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언론홍보의 틀을 만들고, 서울의 교통 혁신을 이끌고, 복지 현장의 조직문화를 바꾸려 했던 윤종장 교수. 그는 이제 33년간 축적한 공직의 경험을 다음 세대에 건네는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
서울시청의 ‘정책 사령탑’에서 대학 강단의 교육자로 변신한 그의 제2막이 시작됐다.
seouldream0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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