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은행에 맞긴 예금에서 돈을 찾고 있다.

은행들이 제대로 대비를 못한 탓일까? 비싼 이자를 내고 서둘러 은행채를 발행하고 있다.

은행들이 채권 발행에 더 쓴 비용은 결국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이들의 이자 부담이 된다.

정부는 은행들이 주담대로 손쉽게 돈 벌게 해줬다. 이런식으로 유동성 관리에 문제가 계속되면 국민들이 은행들 뒤치닥거리를 해야할 수 있다.

요즘 자금시장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화제다. 올해 이익이 급증하면서 운용 자금이 커졌는데 이 ‘반도체 머니’가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일반 가계의 대출이자 부담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잘못은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우리나라 은행의 영업 구조와 금융정책 탓이다.

※챗GPT의 도움을 받아 만든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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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시중은행, 웃돈 주고 급전 당겨 쓴 이유는

투자은행(IB) 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 17일 우리은행 9개월물 8500억원, 국민은행 1.5년물 3600억원, 신한은행 2년물 4100억원의 채권이 민평 대비 각각 9bp, 9.4bp, 9.3bp 높은 발행금리가 적용됐다.

지난 16일에는 KB국민은행 1조1000억원, 하나은행 9500억원, 우리은행 800억원을 조달했다. 국민은행이 동일 만기 민평 대비 무려 9.6bp 높은 금리를 제시하면서 시장에 충격을 줬다. 하나은행은 6.4bp 높은 수준이었다. 우리은행은 변동금리부채권(FRN)으로, 1개월 양도성예금증서(CD) 대비 47bp 높은 수준이었다.

한국은행이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올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도 긴축에 나섰다. 금리의 방향은 위쪽이다. 실제로 국고채 1년물은 이달 8일 3.479%에서 21일 3.676%로 보름 새 0.2%포인트 올랐다. 3년물은 3.901%에서 4.056%로 올라 4%를 넘었다. 월평균 기준으로 국고채 3년이 4%를 웃돈 것은 2023년 10월이 마지막이다.

그래도 신용등급 AAA인 시중은행이 민평 대비 9bp나 높은 금리를 제시한 건 이례적이다. 평상시 오차 범위의 서너 배다. 현금이 급했다는 뜻이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 거액 예금이 인출되면서 은행들의 자금 사정이 다급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 상황 자체가 이해가 어렵다.

기업 예금, 특히 대기업의 거액 예금은 은행의 유동성에 상당한 부담이다. 그래도 정기예금의 만기는 갑자기 찾아온 뱅크런과 다르다. 은행은 돈을 받을 때부터 반환 날짜를 알고 있다. 만기가 되면 인출될 가능성을 대비하는 게 당연하다. 은행 업무의 핵심 중 하나인 자산부채관리(ALM)다.

특히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예금은행의 예금 중 기업 비중은 올 2분기말 35.11%로 1980년 말 35.93% 이후 가장 높다. 가계 비중은 42.63%로 2021년 말 42.15% 이후 가장 낮다. 올 상반기 기업 예금은 57조원 늘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현금성자산 및 단기금융상품 증가액(별도 기준)이 34조원이다. 물론 이 돈이 모두 국내 은행 예금으로 간 것은 아니지만, 기업예금 급증과 반도체 기업의 현금 축적이 상당 부분 같은 시기에 진행된 것만은 분명하다.

설마 만기에도 이들 대기업이 예금을 인출하지 않거나 다시 가입할 것이라 여긴 걸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대규모 투자와 주주 환원을 이미 예고했다. 천문학적 투자계획도 밝혔다. 그런데도 여러 은행이 비슷한 시기에 시장금리보다 높은 비용을 감수하며 자금조달에 나섰다면, 과연 사전에 충분한 유동성 계획을 세운 것인지 따져볼 일이다.

레버리지 최대로 주담대 집중…유동성 빠듯해져

국내 시중은행은 대부분 만기가 짧은 예금(보통 3년 이하)으로 자금을 조달해 주택담보대출과 같은 만기가 긴(5~30년) 대출로 운용한다. 은행 고유의 구조적인 만기불일치다. 이 때문에 은행은 30일간의 단기 유동성 위기 상황에서도 외부 지원 없이 버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을 100%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4대 은행의 상반기말 LCR은 신한 104.95%, 국민 104.80%, 하나 106.66%, 우리 107.31%로 규제(100% 이상) 대비 초과분이 10%포인트 미만이다. 미국은 115~130%, 유럽은 150~170%이다.

자산운용에 필요한 안정적 자금에 비해 인정되는 안정적 조달 재원이 얼마나 있는지를 보여주는 순안정자금조달비율(NSFR)은 1분기 기준 국민 117.1%, 신한 106.7%, 하나 105.9%, 우리 110.3%다. 유럽연합(EU)과 EEA(유럽경제지역) 평균 126.9%보다 크게 낮다.

국내 시중은행들의 유동성 사정은 왜 이렇게 빠듯할까? 은행은 조달한 자금 대비 최대한 많은 돈을 대출해야 수익이 극대화된다. 최대한 많은 돈을 빌려주다 보니 유동성이 빠듯해진 것이다.

2025년 말 국내은행의 단순기본자본비율은 6.76%로 EU·EEA 은행의 평균 레버리지비율 5.9%보다 높다. 두 비율은 기본 자본을 위험가중 전 익스포저로 나눈 것으로, 높을수록 레버리지가 낮다는 뜻이다.

그런데 위험가중치를 적용하면 그림은 달라진다. 2026년 6월 말 국내은행의 위험가중자산 대비 보통주자본(CET1) 비율은 13.62%다. 이를 뒤집으면 위험가중자산이 CET1의 7.34배다. EU·EEA 은행의 CET1 비율 16.3%를 같은 방식으로 환산한 6.13배보다 약 20% 높다.

그나마 금융당국은 올해부터 주담대 위험가중치를 15%에서 20%로 올렸다. 유럽은 이미 20% 이상인 곳이 많다. 그동안 금융당국이 시중은행들이 높은 레버리지로 주담대에 집중할 여건을 만들어줬던 셈이다.

기업예금 만기 기회비용 가계대출 이자에 붙여질 수

은행이 가장 싸게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은 예금이다. 그런데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 규제로 은행들이 당장 주담대 총액을 늘릴 유인은 크지 않다. 이미 나간 대출 금리를 더 올리는 게 최선이다. 실제로 최근 가계대출 가산금리는 역대 최고 수준까지 벌어져 있다.

은행 입장에서 대출을 더 할 것도 아닌데 예금금리를 올려 돈을 더 모을 필요가 없다. 자금 조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예금 부문의 금리 인상은 전체 비용을 크게 높인다. 실제로 올들어 시장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했지만 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국고채 금리를 밑돌고 있다. 최근 국민은행이 1년 이상 2년 미만 정기예금 금리를 시중은행 최고 수준인 3.5%로 높였지만, 21일 종가 기준 1년만기 국고채(3.676%), 2년만기 통안증권(4.012%)의 수익률 보다 낮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정기예금 금리가 1년물 국채 금리를 밑돈 것은 2022년 8월 이후 올 3월이 처음이고, 이후 역전이 이어지고 있다. 은행이 예금으로 자금을 모을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러면 기업 입장에서도 국채보다 낮은 은행 예금에 굳이 큰 돈을 오래 넣어둘 이유가 적다. 은행 입장에서 기업예금 만기는 은행채로 맞추면 된다. 충분히 미리 대비할 수 있다. 문제는 대비가 소홀했을 때 더 큰 비용이 드는데, 그 부담을 누가 지느냐다.

은행채 발행금리 상승은 대출금리로 연결된다. 고정·혼합형 주담대에는 직접 영향을 주고, 코픽스(COFIX)를 통해 변동형 주담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9월 16~17일 이틀간 발행액은 모두 3조7500억원이다. 이번 발행분만으로는 9bp의 추가금리는 미미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규모의 은행채 발행에 계속 웃돈이 붙는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4분기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상당한 자금 수요가 예상된다. 자사주 매입과 배당, 투자로 인한 자금 인출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시장에서는 두 기업이 가입한 은행 예금에서 올해만 수십조 원이 인출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반면 환율 하락으로 달러로 받은 수출 대금을 원화로 바꿀 유인은 2분기보다 크게 줄었다. 당장 쓸 돈은 환전하겠지만 여유 자금은 해외에 둘 가능성이 상당하다. 그만큼 은행채 발행금리가 높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5대 은행의 4분기 은행채 만기는 27조1250억원으로 레고랜드 사태 때인 2022년 4분기(20조3000억원)를 넘어 사상 최대다. 차환 물량까지 겹친다. 대기업 예금 이탈이 가계 대출 이자부담을 높일 수 있는 경로다.

한국은행 통계로 은행채는 예금은행 수신 잔액의 12.6%, 8분의 1 남짓이다. 은행채가 전체 조달의 9분의 1 남짓임을 감안할 때 9bp를 더 내면 전체 대출금리는 1bp가량 올라갈 수 있다. 1억원을 대출 받은 개인들도 ‘그냥’ 연 1만원을 더 낸다는 뜻이다.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예금은행 가계대출 잔액 1028조원에 같은 1bp를 적용하면 한 해 1000억원이 넘는다. 빌린 사람이 원인이 아닌 은행 고유 비용이다. 왜 일반 고객이 이 돈을 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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