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억 인구의 손과 발은 단연 오토릭샤다. 인도 근무를 시작하고 틈날 때마다 이 앙증맞은 삼륜차를 탄다.
뉴델리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인도의 가을은 햇볕이 매우 강했다. 오토릭샤 기사는 스마트폰 빛 반사를 피하려고 상자의 골판지를 찢어서 가리고 운전했다. 거리에서 주워서 급조한 게 분명했다. 미관은 훌륭하지 않았으나 기능만은 확실했다. 이 광경을 보면서 인도에 오기 전 숙지한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주가드(Jugaad)다.
인도인들이 주가-아르에 가깝게 발음하는 이 힌디어 여성형 명사는 임시방편을 뜻한다. 다시 말해 즉흥적이거나 집에서 만든 해결책이다. 일시적 방법, 땜질 작업, 우회로, 수단·방법 가리지 않기,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자원을 싹싹 긁어모으는 행위 모두 주가드가 될 수 있다. 영어로는 보통 ‘알뜰한 혁신(frugal innovation)’으로 번역한다.
주가드는 결핍이 일상이었던 인도에서 오랜 세월 생존을 지탱해 준 원동력이다. 나사가 빠지면 테이프를 감고, 기차에 자리가 없으면 바닥에 앉으면 그만인 인도인들의 기지는 자원이 부족한 환경에서 빛을 발했다.
하지만 혁신가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반창고 붙이기식’ 주가드에 대한 성찰이 하나둘 나오고 있다. 근본 원인을 찾는 대신 손쉬운 우회로만 택하다 보면 임시방편이 고착화되고 본질적 체질 개선은 가로막히기 때문이다.
인도 퀵커머스 기업 ‘빅바스켓’ 창업진이 현지에서 펴낸 책 제목은 “주가드에 ‘노’라고 말하기”다. 이 책은 회사를 키우며 자신들이 마주한 딜레마를 정면으로 다룬다. 저자들은 시장 선점이 절박했던 초기에 주가드가 불가피했음을 털어놓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한 가지 사실만은 놓치지 않으려 했다. “시간에 쫓겨 임시 반창고를 남용하면 결국 막대한 기술 부채가 쌓인다”는 공통된 인식이었다. 빅바스켓은 언제든 기회가 생기면 비싼 비용을 치르더라도 시스템의 뿌리를 캐내어 고쳤다. 주가드가 사내 표준으로 굳어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 셈이다.
이달 국제통화기금이 전망한 2027년 명목 국내총생산(GDP) 순위에서 인도는 미국, 중국, 독일에 이어 세계 4위로 관측됐다. 손꼽히는 경제 대국이 되려는 인도의 시각은 이제 지속 가능한 기술을 향하고 있다.
세계 핀테크 업계의 벤치마킹 대상이 된 인도의 통합결제인터페이스(UPI)는 저비용이더라도 정밀한 엔지니어링과 연구개발이 뒷받침될 때 진정한 혁신이 나온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지난 4월 이재명 대통령의 국빈 방문에 맞춰 발표한 ‘한-인도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위한 공동전략비전’에서 인도 핀테크 혁신의 대표사례로 제시됐을 정도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혁신기업을 인도계가 경영한 지도 십수년이 지났다. 이제 인도 내 창업가들도 임기응변식 주가드에 안주하지 않고 원천 기술과 지식재산권을 축적하려는 정공법을 택하고 있다. 비가 새는 지붕 아래 거대한 양동이를 놓아두는 방식으로는 세계적 혁신을 선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골판지로 햇볕을 가리던 오토릭샤 너머로 구조를 만들고 시스템을 설계하는 인도의 혁신가들이 떠오르고 있다.
김욱진 코트라 한-인도 비즈니스협력데스크 운영팀장
ey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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