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장바구니로도 찾아온다. 눈깔사탕 문 아이의 볼 같이 둥근 살구가 나왔다. 진한 주황이어야 한 입 당장 베어 물겠는데, 때깔이 흐릿해 성에 안 찬다. 그래도 작렬하는 6월초 태양에 놀란듯 평소보다 서둘러 등장해 반갑다. 성급한 건 복숭아도 마찬가지다. 엉덩이 부분만 발그레하다. 정수리 쪽은 민둥산이다. 미완임에도 몸값은 천정부지다. 어른 주먹 만한 것 하나에 5000원꼴이다. 냉큼 집었던 손이 방황한다. 그럼에도 제철 즈음에 몸단장하고 나선 마음이 대견하다.
여름 과일엔 침이 고이지만, 사람 속 모르고 타는 볕은 얄밉다. 쩍쩍 갈라지는 건 강바닥이나 농심(農心)이나 매한가지다. 매화향 가신지 얼마 안 된 섬진강도 끓는다. 시인 김용택이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이라고 했지만, 넉넉함이 예전만 못하다. 애초 고운모래가 많은 걸로 유명했다지만, 굽이굽이 속살이 드러났다.
곤란해진 4대강에 포함되지 않은 건 천운이다. 전북 진안에서 시작해 광양만으로 흘러 들어가기까지 212㎞는 섬진강을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긴 강에 올려놨지만, 토목바람에서 목숨은 건졌다. 섬진강 기차마을 발(發) 증기 기관차가 그 강의 유연한 곡선 10㎞를 느릿느릿 달려줘 고맙다.
아, 그 때 정겨운 차내 방송. 현충일이 들어있는 호국보훈의 달 6월과 딱 맞아 떨어지는 섬진강 작명의 유래다. ‘섬진강의 섬자(字)는 뚜꺼비 섬(蟾)으로, 고려시대 1385년 섬진강 하구에 왜구가 침입하자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떼가 울어 왜구가 광양 쪽으로 피해갔다고 하는 전설이…’
설화라곤 하지만, 세상 만사 어느 하나 허투루된 게 없다. 나라 지키는 일에 두꺼비만도 못한 군상(群像)이 적지 않음도 섬진강에서 배운다.
홍성원 기자/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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