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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 주변에서 고무래는 어디에 놓는 게 이상적일까에 대한 통일된 의견은 아직 없다.
오크몬트 벙커
US오픈 개최지이기도 한 오크몬트는 벙커 고무래 날을 성글게 만들어 모래 고랑이 파인 듯 만들기도 했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골프 코스에서 벙커란 빠져서는 안 되는 핸디캡이자 장애물이다. 페에웨이벙커에 공이 들어가면 정규 타수 온그린이 어렵고, 그린 옆 벙커에 빠지면 탈출해서 파를 잡기가 어렵다. 골프 대회에서 ‘샌드 세이브(Sand Save)’란 벙커에 빠진 뒤에 처리에서 정규 타수로 홀아웃 할 수 있는가의 확률이다. 파3, 파4 홀의 그린 옆에서 벙커샷은 홀 근처 원퍼트 거리에 붙여야 하는 데 그게 결코 쉽지 않다. 이때 사소할지 몰라도 꽤나 중요한 의문이 하나 생긴다. 벙커샷을 하고 나서 모래를 고르게 다지는 고무래는 대체 어디에 놓아두어야 할까? 벙커 안에 두어야 할까? 아니면 벙커 밖에 두나? 혹은 벙커와 바깥에 걸쳐두나? 1인1캐디제를 하는 동남아 골프장에서는 고무래를 캐디들이 소지하고 다니기도 한다. 캐디 동반이 의무인 골프장에선 벙커에서 샷을 하고난 뒤에 모래를 고르는 일을 캐디에게 맡겨서 캐디가 카트에 싣고 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셀프 플레이가 일반적인 미국, 유럽 골프장에서는 고무래가 필수적으로 벙커마다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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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노 골프장은 일률적으로 벙커 밖에 고무래가 있었다.

골프전문지 골프다이제스트는 미국골프협회(USGA)에 고무래의 올바른 위치를 물어본 적이 있다. 토마스 파걸 USGA 룰디렉터는 “간단히 말해 올고 그른 게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몇가지 피하는 지점은 있다. 벙커 안 가파른 경사에는 고무래를 넣으면 안 된다. 볼이 벙커에 떨어지면 걸리기 때문이다. 고무래를 벙커 한 가운데 놔서도 안 된다. 대체로 벙커에 빠진 공이 낮은 한 가운데로 구르기 때문이다. 가장자리에 놓인 공을 치고서 고무래를 가지러 벙커를 건너가는 건 일을 오히려 만드는 처사다. 벙커 입구에 고무래를 가로질러 놔서도 안 된다. 다른 골퍼의 공이 벙커로 들어가는 걸 의도적으로 막기 때문이다. 퍼걸은 “USGA대회에서는 고무래를 벙커 밖에 놓되 플레이 선상과 평행하게 놓도록 권유한다”고 말한다. 미국의 한 골프장에서는 이 말을 금과옥조로 받아들여 고무래를 벙커 주변에 묻어두도록 했다. 지면에 플라스틱 튜브를 심어두었고 고무래를 경기방향과 일치되게 놓았다. 하지만 설치하는 비용이 많이 들고 찾기 힘들뿐더러, 대부분의 골퍼들이 고무래를 쓴 뒤에는 미사일 격납고 같은 튜브에 다시 꽂아두지 않아서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이 매체는 이어서 유명선수와 골프 전문가 30명에게 물어봤다. 그 결과 설계가 피트 다이, 줄리 잉스터, 필 미켈슨, 게리 플레이어 등 9명은 벙커 안에 고무래가 들어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반면 마이크 데이비스 USGA 사무총장, 벤 크렌쇼, 톰 왓슨, 잭 니클라우스 등 15명은 벙커 밖에 있어야 한다는 데 표를 던졌다. 벙커 밖에 놓는다는 의견이 우세한 정도에 그칠 뿐 압도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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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오 골프장은 고무래를 벙커 안에 두는 원칙을 일률적으로 고수하고 있다.

고무래가 페어웨이나 혹은 공의 진로를 방해하거나 틀어놓을 개연성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골퍼들이 벙커에서 고무래질을 하고 나오면 옆에다 그냥 두지 플레이 방향으로 꼭 맞춰놓는 건 아니다. 그냥 옆에 둘 뿐이다. 통일된 의견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하라고 권장하거나 계몽할 수도 없다. 일본 고베 지역의 역사 오랜 골프장 두 곳을 최근 방문했었다. 참 특이하게도 두 곳은 서로 다른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원칙이라는 건 18개의 홀에 있는 모든 벙커들에서 고무래의 위치에 일관된 지침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의미다. 아마도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회원들과 운영진 사이에서 이와 관련된 토론이 격렬했던 결과 고무래의 위치가 골프장마다 일관된 원칙으로 정착된 것으로 짐작한다. 1932년 설립된 일본 최고 골프장이라는 히로노에서는 벙커 밖에 3개 정도씩 놓여 있었다. 대체로 벙커 좌우에 하나씩 놓여 있고 뒤에도 있었으나 벙커 앞에 가로놓인 고무래는 찾을 수 없었다. 재미난 건 나무로 만든 고무래에 살이 없었다. 판판하게 밀고 나오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가하면 2020년이면 설립 100년을 맞는 고베의 나루오 골프장은 이빨(살)없는 널빤지를 고무래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히로노와 같았다. 그런데 항상 반만 걸쳐두고 있었다. 벙커 안에 머리가 가고 자루는 벙커 모서리에 걸쳐두었다.

한국에 있는 어느 골프장 사장의 답변도 일리가 있었다. “고무래가 골프 게임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 벙커 옆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공의 진로를 방해할 가능성이 있다. 고무래 손잡이를 지팡이처럼 휘게 만들어서 벙커 옆에 세워두면 된다. 페어웨이에 최소한 닿게 하는 것이다. 고무래는 벙커 주변에서 쉽게 찾아야 하고 공중에 떠 있기 때문에 물기나 모래도 없다.” 예전부터 계속된 이 논쟁은 지역과 실력차와 문화에 따라 앞으로도 계속 끝없이 이어질 것 같다. 물론, 카트에 고무래를 부착시키고 골퍼들이 이를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자율 정비 문화가 정착되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