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덮치고 모든걸 태웠다” 화재 피해 이리저리 옮겨다녀
지난 4일 발생한 고성 산불은 삽시간에 속초까지 번지며 주민들의 삶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영랑호 인근 주택에서 아들과 저녁을 먹다 대피한 김모(73) 씨는 5일 오전 헤럴드경제 기자와 만나 “산에서 불덩이가 날라왔다. 집을 덮쳤고 모든걸 태웠다”고 말했다. 집 앞에 높아둔 포장된 자재들로 옮겨 붙은 불은 순식간에 집을 집어삼켰다. 그는 대피소로 이동하라는 경고방송에도 자신의 차에서, 하얗게 재로 변하는 집을 바라 봤다. 김 씨는 “내 집이 타고 있는데, 어떻게 대피소로 가겠냐”고 했다.
이날 발생한 산불로 속초 주민인 50대 남성 1명이 연기에 질식돼 숨지고 4011명이 대피했다. 임야 250㏊와 건물 125채가량이 불에 탔다. 인터넷이 끊겼고, 전기가 나갔다. 날이 밝은 뒤 일부 통신은 재개됐지만 현장 주민들은 지난밤 태풍같은 바람에다 덤벼드는 불구덩이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야 했다.
속초 동명동에 사는 허경욱(70) 씨는 “소방관도 경찰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바람이 심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있었는데,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장사동 다리 앞에 놓여 있는 관광버스가 불에 타는 걸 목격했다.
자영업자들도 화마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속초시 자율 방범대 연합대장 김용태(50) 씨는 이번 강원도 산불로 인해 자신이 운영하는 유리공장을 잃었다. 김 씨는 ”7시 45분쯤에 불이 붙어서 한시간만에 공장 전체가 다 타버렸다”고 했다. 새벽까지 속초 하늘은 붉게 타올랐다. 조모(48) 씨는 “모든 하늘이 새빨개졌다. 세상이 모두 다 타 버리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경동대학교 인근에서 불이 옮겨 붙은 것을 본 조 씨는 “그래도 하늘이 도왔다. 불이 학교로 옮겨 붙기 전에 갑자기 바람이 멎었다”고 했다. 조씨가 목격한 바에 따르면, 바람이 잠시 멎자 준비하고 있던 소방관들이 물을 뿌리고 방화벽을 쳐, 불이 인근 주택가로 번지는 걸 막았다.
일부 주민들은 불이 속초 시 전체로 옮겨 붙을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의용소방대와 경찰들은 사이렌을 울리며 주민들을 대피시켜야 했다. 김용태 연합대장은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학생들을 대피시킬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검은 연기가 도시 전체를 가득 채우면서 주민들은 대피소에서 또 다른 대피소로 옮겨 다녀야 했다. 이번 강원도 산불로 인해 속초시가 입은 피해는 천문학적이다. 전날 오후 11시께에는 속초 한화리조트의 대조영 촬영장이 불에 탔으며, 인근 일부 아파트 상당수 주민은 불이 옮겨붙을 것에 대비 옷가지만 챙겨 대피하느라 도심은 전체가 아수라장이 됐다. 확산하는 불로 속초 삼환아파트에서 토성으로 진입하는 국도 7호선이 전면 통제 되기도 했다.
인근 콘도 숙박객과 주민들은 급히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으나 일부 주택과 기숙사, 연립건물 등에도 불이 붙어 대규모 인명피해까지 우려되는 심각한 순간을 맞기도 했다. 영랑호 인근에서는 가스 폭발로 추정되는 ‘펑펑’ 폭발음이 들렸다는 신고가 잇따랐다.
문제는 대피소에서도 발생했다. 이날 오전 8시 30분께 영랑초등학교에는 최대 430여명의 주민들이 모여들었지만, 10시가 되자 확산된 불로 인해 학교안으로 검은 연기가 차고 들었다. 이들은 인근에 있는 속초시 생활체육관과 교동 체육관 등으로 다시 흩어져야 했다. 강원 지역에서는 속초 25곳, 고성 20곳, 강릉 2곳 등 47개 학교가 이날 휴업한다.
속초=박병국·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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