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연, 토크 넘어 리얼리티까지…일반인 예능의 진화
연예인 신변잡기식 예능은 식상 새롭고 파격적 인물 · 콘텐츠 원해 작위성 최소화돼야 대중들 ‘공감’
‘달콤한…’ 고민없는 엿보기 우려 진정성 담보 새로운 시도는 주목
지난달 27일 안방에선 보기 드문 형식의 예능 프로그램이 하나 등장했다. SBS ‘달콤한 나의 도시’다. 인기 미국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한국판이라는 타이틀로 안방을 찾았으나, 드라마가 아닌 리얼리티물이다. 일반인의 일상을 다룬 ‘인간극장’ 같은 진기한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저조했다. 고작 2.8%(닐슨코리아 집계), 하지만 방송 이후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점령한 것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네 여성의 낯선 이름이었다.
일반인을 주인공으로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등장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전 세계 방송시장에서 ‘리얼리티쇼’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국내 방송환경이라고 다르지 않다.
이미 스타들의 신변잡기를 늘어놓는 토크쇼는 하루가 다르게 외면당하고, 시청자들은 점점 낯설고 새로운 인물을 요구한다. 연예인들이 예능 프로그램 안에서 주목받기 위해서는 대중이 미처 보지 못한 모습을 꺼내야 하나, 포털사이트를 통해 연예인들의 일상이 생중계되는 때에 시청자가 접한 적 없는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리얼’에 대한 요구가 커지다 보니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MC격 멤버가 등장하는 것도 시청자는 반기지 않는다. 예능PD들은 “최근의 프로그램들은 진행 최소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어떤 상황을 보여주려고 하지만, 그것이 제작진이 마련한 상황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면 시청자들은 외면한다”(‘1박2일’ 유호진 PD), “암묵적으로라도 진행자가 등장해 ‘이제부터 이렇게 합시다’라는 식으로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려고 할 때 소위 채널이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리얼리티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다는 근거다”(‘꽃보다 청춘’ 나영석 PD)라고 말한다.
지상파 방송3사에선 ‘리얼의 강화’를 위해 관찰카메라 형식을 통해 연예인(‘룸메이트’)이나 스타가족(‘슈퍼맨이 돌아왔다’, ‘오 마이 베이비’)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지만 “일반인을 주인공으로 한 리얼리티쇼는 자원 자체의 폭이 넓어 완전히 다른 그림의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설명했다.
그 와중에 등장한 JTBC ‘비정상회담’과 SBS ‘달콤한 나의 도시’는 일반인 출연 프로그램의 진화라고 할 만하다. 일반인 출연자들이 주인공이 돼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안녕하세요’(KBS2)도 대표적인 일반인 출연 예능이지만, 이 프로그램은 무려 4명의 MC 군단에 연예인 게스트까지 등장시키며 시청률을 담보할 장치를 마련해뒀다.
반면 ‘비정상회담’과 ‘달콤한 나의 도시’는 파격적이다. ‘비정상회담’은 외국인 남성 11명이 하나의 주제를 놓고 그들의 문화와 가치관을 전한다. 예능대세로 떠오른 샘 오취리,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한 에네스 카야, 프로게이머 기욤 패트리를 제외하면 모두 일반인에 가까운 얼굴이다. 지금 이 남자들은 방송가의 대세가 됐다.
정덕현 평론가는 “과거와 달리 방송의 특권화된 부분이 사라지고 있다. 방송이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온 상황에서 TV콘텐츠는 일반인을 출연시키거나 일반인 중 특별한 사람을 찾아야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때가 됐다”며 “‘비정상회담’은 대표적인 사례다. 인지도가 전혀 없는 외국인, 특히 한국말을 굉장히 잘 하는 외국인을 통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달콤한 나의 도시’는 한 발 더 나아갔다. 굳이 알 필요가 없었던 일반인 여성 4명의 일상을 관찰카메라 안에 담으며 그들의 일과 연애,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출연자 논란에 대한 위험성이 따르더라도 진정성을 담보로 한다면 ‘일반인 리얼리티’는 어느 정도의 설정을 필요로 하는 연예인 리얼리티와는 달리 제작진의 기획의도를 잘 드러낼 수 있고, 평범한 일반인을 통해 시청자의 공감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달콤한 나의 도시’는 아쉬움이 적지 않다. 평균 이상의 외모와 직업 등을 가진 여성들의 모습은 자칫 ‘동 떨어진 이야기’로 비칠 소지가 있다. 서른 즈음 여성들의 일상을 들여다보지만, 그들의 현실은 다소 가볍게 그려져 ‘고민 없는 엿보기’에만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불편하지 않은 일반인 리얼리티를 통해 공감대를 높이겠다”는 제작진의 의도대로 나아가려면 4명의 여성들이 가진 고뇌를 담아낼 최소한의 장치는 물론 ‘보편적 감정’에 호소할 인물들의 스토리도 필요해보인다.
고승희ㆍ정진영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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