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고승희 기자] “지금은 한국사람이 하는 코미디를 K-코미디라고 부르고 있는 것 같아요. 정말 K-코미디가 되기 위해선 전 세계 어디에서도 통할 수 있는 코드와 함께 한국적인 색을 담아야 하지 않을까요?” (옹알스 조준우)

‘웃음’은 ‘만국공용어’라고 한다. 구구한 설명 한 줄 없어도 몸짓과 표정, 거기에 놀라운 개인기가 더해지면 국경을 초월한 웃음이 온다. 하지만 지난 8월 29일부터 9월 1일까지 나흘간 진행된 제2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에서 확인한 국내 방송코미디의 한계는 조직위원회가 슬로건으로 내세운 ‘K-코미디’의 타이틀을 무색하게 했다.

세계 3대 코미디 페스티벌인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캐나다 몬트리올 ‘저스트 포 래프(Just for laughs)’, 멜버른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각오로 먼 길을 내다보고 있는 제2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은 올해 해외 코미디 공연의 다양한 구성으로 시민들과 만났다.

부산 경성대와 시민공원에서 선보인 이름 모를 해외 코미디언들의 공연을 찾은 국내 관객들은 처음 만나는 기발한 코미디 세계를 통해 ‘언어의 장벽’ 없는 웃음을 마주했다.

영국에서 찾아온 테이프 페이스(Tape Face)는 검은 테이프로 입을 봉한 채 등장해 익히 알려진 팝음악을 코미디의 소재로 치환했다. 말 한 마디 없이도 얼굴의 표정으로 상황들이 설명되자, 객석에선 연신 박수가 터졌다. 인간이 목으로 낼 수 있는 소리를 재조합한 디테일한 마이크 예술을 선보인 호주 듀오 돈트 익스플레인(Don’t Explain)은 물론 스위스에서 날아온 ‘몽트뢰 코미디’는 슬랩스틱의 진수를 선보이는 원초적인 개그부터 담백한 무대 연출로 관객들의 배꼽을 잡았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호주 듀오 6D의 무대에선 사소한 물건들이 관객 참여 소품으로 쓰였다. 무대와 객석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국제’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다채로운 해외공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했을 한국의 코미디는 아쉬움이 많았다.

TV에서 충분히 봐오던 ‘개그콘서트’의 인기코너가 총출동한 ‘개그드림콘서트’의 무대가 주를 이뤘다. 단일 공연도 무대에 섰다. 하지만 코미디라기 보단 정극에 가까운 ‘대박포차’나 말이 넘치고 애드리브가 주를 이룬 ‘변기수의 뉴(NEW) 욕쇼’가 외국인 관객을 사로잡기엔 무리였다.

국내 코미디는 방송을 통해 다져진 콩트식 개그로 언어유희와 각종 패러디를 통해 웃음을 유도하는데,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에겐 웃음이 나오기는 커녕 이해할 수조차 없는 콘텐츠라는 점은 해외로 진출할 가능성을 희박하게 만든다.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을 방문한 브리짓 밴틱(Bridget Bantick) 멜버른코미디페스티벌 부집행위원장은 “한국의 코미디는 논버벌 공연이 별로 없어 이 곳에서도 옹알스 이외의 다른 공연은 접하지 못했다”며 “코미디에선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한국의 코미디가 해외로 진출하기 위해선 영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말이 없어도 웃길 수 있는 공연과 공연의 재미에 임펙트를 더할 수 있는 한 두 마디 정도의 언어만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관광객 1만명 모객을 목표로 했지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의 국내 코미디 공연 무대에서 외국인 관객을 찾기 힘든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다만 K-코미디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무대를 찾은 것과 김준호 집행위원장이 내놓은 미래전략에선 ‘코미디한류’의 희망을 읽을 수 있었다.

국내 유일의 논버벌(Non-verbal) 퍼포먼스팀 옹알스는 페스티벌 기간 중 이틀간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 문화홀에서 공연을 가졌다.

무대 위의 옹알스는 말이 없다. 평균 나이 2~3세의 아기들로 변신하는 건장한 네 남자는 장난감 상자 안에 들어있는 다양한 물건(채찍, 변기뚜껑, 마네킹 등)을 난생 처음 본 아기들의 시각으로 재해석한다. 그 위엔 비트박스와 저글링 등 전문가를 능가하는 수준의 기술들이 더해진다.

잘 짜여진 구성 안에서 저마다의 캐릭터가 살아나고, 해외 퍼포먼스팀과 견줘도 우위에 놓이는 기술력을 갖춘 덕에 옹알스는 이미 영국 에든버러와 멜버른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의 무대에 서며 해외 시장을 놀라게 했다. 에든버러에선 2년 연속 관객들로부터 최고 평점을 받았고, 멜버른에선 아시아 최초로 디렉터스 초이스상을 받았다. 해외 무대에서 한국의 코미디언이라는 점을 알리기 위해 옹알스는 외국인 관객을 상대할 때는 태권도와 사물놀이와 같은 한국적인 코드를 무대에 넣는다. ‘K-코미디’ 전도사라는 수사가 괜히 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런 옹알스도 국내 무대에서의 연출은 흥미롭다. 해외에서와는 달리 옹알스의 국내 무대는 영유아 설정임에도 ‘성인의 말’들이 애드리브로 튀어나오곤 한다. 무대에서 내내 옹알거리던 네 사람은 관객과의 호흡을 위해 간간히 어른들의 언어를 쓰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관객들은 옹알스가 말을 할 때 박장대소한다. 이미 알고 있는 설정을 뒤짚는 애드리브가 ‘반전의 재미’를 주는게 사실이나, 옹알스 멤버들에겐 일종의 선택인 셈이었다.

옹알스의 조수원은 “아직까지 국내 관객들은 말을 하지 않는 코미디 무대를 낯설어한다”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도하기 위해 간간히 말을 하는 애드리브가 나온다”고 했다. 해외 무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국내 무대만 서면 이어졌다. ‘말들의 성찬’인 국내 방송코미디에 길들여진 관객들의 입맛을 맞춘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번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에서 확인한 방송코미디의 한계는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옹알스와 같은 논버벌 퍼포먼스 팀이 설 수 있는 무대가 활성화되고, 공연코미디를 주무대로 삼는 코미디언들이 등장한다면 K-코미디의 미래도 밝겠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방송에 나가기 위해 새로운 개그를 짜며 치열한 정글을 살고 있는 국내 코미디언들에겐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국내 시장에서 코미디는 기타 예능이나 드라마보다는 발전이 더딘 편이라, 아직까지 ‘내수’를 우위에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개그콘서트’의 터줏대감으로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의 집행위원장을 맡은 김준호는 새로운 플랫폼 구축을 통한 방송코미디의 해외 진출을 고려하고 있었다.

김준호는 “방송코미디를 짧은 단편영화로 만드는 작업을 통해 페스티벌 기간 중 상영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며 “올해 페스티벌에 참여한 요시모토 흥업 소속의 코미디언은 UCC를 제작해 상영하는 시도를 했고, 전세계에선 SNS 코미디의 흐름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코너를 업그레이드하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국내 코미디언들의 자원을 미디어물로 만들어 활성화한다면 K-코미디의 새로운 활로가 개척되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사진=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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