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까지 경제학에서 가치는 상품이나 재화의 속성에서 나온다고 봤다. 노동이 얼마나 투입됐는지(노동력), 얼마나 유용한지(유용성), 희소한지(희소성) 등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20세기 이후 경제학 주류로 자리잡은 신고전학파가 등장하자 판도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들은 상품의 가치는 주관적이어서 상품 자체가 아니라 가치를 평가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고 판단했다.

평소 1리터 수돗물은 10원도 안되는 돈으로 구할 수 있지만, 사막을 걷는 상황이라면 수천만원이라도 내겠다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반대로 장마로 물난리가 난 지역에서 물은 수천만, 수억원이라도 퍼내서 없애버리고 싶은 대상이다. 물은 그 자체로 가치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그걸 소비하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신고전학파의 가장 중요한 핵심 개념은 ‘한계효용(marginal utility)’이다. ‘한계’는 ‘추가적인’이란 뜻이다. 빵을 한 개 먹을 때와 두 개째 먹을 때, 세 개째 먹을 때 추가적인 효용은 계속 감소한다. 네 개째 먹을 때는 구역질이 날 수도 있다. 같은 재화지만 가치는 계속 달라진다. 효용은 계속 줄고 변화한다. 신고전파 이후 등장한 제도학파 경제학의 ‘과시소비’ 개념도 효용이 주관적이라는 맥락에서는 결을 같이 한다. 사람들은 제품을 구매할 때 상품의 비용과 혜택을 합리적으로 판단해 선택하지 않고, 남들과 구별되고 싶고, 특별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따라 소비한다는 이론이다. ‘명품소비’를 설명할 때 늘 등장하는 개념이다.

경제학의 이런 발견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게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다. 분양가상한제는 집의 가치를 택지비와 건축비, 가산비로 따져 일정 금액 이상으로 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수요자들의 필요와 욕망에 따라 형성된 시장의 시세를 따르지 않고 ‘원가’를 고려해 집값을 규제하겠다는 사고방식이다. 당장 사고 팔 수 있는 모든 물건의 가치가 개개인의 필요와 기호·습관·상황 등에 따라 좌우되는데, 이를 정부가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게 가능하겠느냐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집의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 집은 그냥 잠을 자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는 과시소비재다.

오는 10월부터 시행하겠다는 분양가상한제의 타깃이 서울 강남권 재건축단지인 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들 단지에서 나오는 새 아파트는 아무리 가격을 낮춰도 중도금 대출이 안되는 9억원 이상일 것이다. 우리나라 중산층이 쉽게 감당하기 어려운 가격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중간 소득자(3분위)가 주로 강남권 아파트에 해당하는 5분위(상위 20%) 주택을 사려면 월급을 한푼도 안쓰고도 27.7년이 걸린다. 강남 주택 수요자는 어차피 부자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돈 많은 이들이 수요층인 강남 고가 주택을 굳이 분양가상한제를 통해 그야말로 ‘후지게’ 지으라고 할 이유가 있을까? 감당할 능력이 있는 부자들이 자신들의 취향과 니즈에 맞게 고급으로 짓겠다는 데 왜 정부가 막으려고 할까? 강남의 아파트 가격의 상한선을 정한다고 이런 부자들의 욕망을 막을 수 있을까? 그에따라 강남 기존 집값이 떨어질까?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미션이다. jumpc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