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폭락 때 주식을 더 담지 못했습니다. 회원들에게 더 큰 수익률을 돌려줄 수 있는 기회였는데, ‘동학개미’들보다 못 했다는 자괴감이 드네요.”

1400선까지 고꾸라졌던 코스피지수가 3개월 만에 회복된 뒤 다시 만난 한 연기금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폭락장에 더 담는다”는 아주 일반적인 투자전략을 염두에 두고 물었더니 적기임을 알고도 들어가지 못했다는 한탄이 돌아왔다.

‘연기금과 공제회가 증시상승 랠리를 수익률 제고 기회로 삼지 못했다.’ 최근 증권가 안팎에서 공통적으로 내린 중간 평가다. 실물 경기와 괴리된 주가상승을 어떻게 바라볼지 판단하는 것과는 별개로, 주식시장 ‘큰손’인 기관들이 증시가 쭉쭉 밀고 올라오는 시점에 이를 적절히 활용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적극적으로 주식투자에 나서지 못한 것은 내부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평시 리스크 관리는 기금 자산운용의 울타리 역할을 한다. 경기가 속절없이 추락해도 일정한 장기 수익률을 낼 수 있도록 투자행동을 제한하는 보조장치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대폭락 이후 증시가 급상승하는 구간에서도 리스크 관리가 공격적인 투자를 가로막은 ‘복병’이 됐다.

배경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 기관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제히 리스크 관리 강화에 나섰다. VAR(Value at Risk, 위험가치분석)은 이때 탄생한 지표다. 주식·채권·대체투자 등 자산군별로 시장 변화에 따라 최대 리스크를 얼마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수치화한 것이 VAR다. 주가·시장변동성 등을 기반으로 표준편차를 내 구간을 산출한다. VAR지표는 각 기관의 회원 성격이나 운용철학 등에 따라 상이하다.

한 공제회 관계자는 “코스피가 1% 안팎 등락을 반복하는 평시에는 관계없지만 하루에 4~5%가 떨어질 때에는 기준에 걸려 추가 매입을 할 수 없게 되거나 반대로 오를 때는 매입은커녕 자산을 팔도록 유도하는 것이 VAR”라고 설명했다.

연기금과 공제회 모두 기본적으로는 자산 운용 시스템인 ‘전략적 자산배분(SAA)’을 취하고 있다. 장기 수익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산별 비중을 설정해두는 전략이다. 증시 폭락으로 전체 운용자산에서 주식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면 그만큼 추가 매수를 통해 비중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

증시변동성이 커지면 전략적 자산 배분 방침과 VAR 간 상충이 일어나 상식적인 투자가 어려워질 때가 있다. 최근 같은 경우가 그 예다.

물론 정교한 리스크 관리는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나 국민의 미래를 담보로 운용하는 자금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리스크 관리도 시의적절해야 한다. ‘동학개미’보다 둔하다는 평가까지 감내해야 하는 현실은 바람직하지 않다.

은행권에서 주로 쓰는 지표인 VAR를 연 단위로 반드시 수익을 내야 하는 일부 공제회나 연기금에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 질문거리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