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금융감독원 사칭은 ‘옛날 이야기’

코로나 긴급대출·저금리 대환대출 빙자

수거책-피해자에 각기 다른 정보 ‘롤 부여’

[일러스트=권해원 디자이너]
[일러스트=권해원 디자이너]

#1. 2020년 4월 14일

주부 정현옥(61·가명) 씨는 전화를 받았다. “A은행 김이호 과장입니다. 코로나 관련해서 저금리 상품이 새로 나왔습니다. 연 2.2% 금리에 최대 3500만원까지 대환대출 가능 하십니다.”

솔깃한 제안을 정 씨는 덥썩 물었다. A은행 직원이라는 이는 신용조회를 운운하며 문자로 은행 어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할 수 있는 링크를 보내겠으니 설치하고 기본정보를 입력하라고 안내했다. 정 씨는 그대로 따라했다.

다시 김이호 과장이 전화를 해왔다. “조회했더니 B은행에 대출이 있으시네요. 일단 1000만원을 상환해서 신용도를 높여야 우대조건으로 대출 이용 가능 하세요. 저희 직원 보낼테니 상환금 보내시면 저희가 빠르게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2. 2020년 4월 16일

[Web발신] (광고) 일자리가 없어 고민이신가요? △△△에서 힘든 시기 함께 할 외근직 수습(임시) 직원을 모집합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연락주세요.

송지민(35·가명) 씨의 스마트폰에 이런 문자가 찍혔다. 코로나19로 일하던 가게가 문을 닫으면서 새 일자리를 찾던 와중이었다. 청각장애가 있는 어머니(60)를 혼자 돌보는 그에겐 새 일자리가 시급했다.

연락하자 ‘김대성 실장’이라고 소개한 이가 “대부업체 대출 건을 처리하는 업무다. 고객님에게 돈 받아서 무통장 입금하면 된다”고 소개했다. 송 씨는 “당사자가 아닌 제가 왜 (입금을) 해줘야 하나요?”라고 물었다. “우리 고객들이 신불자가 많아서 계좌 이용이 어렵고, 이렇게 무통장 입금을 하면 세금도 안 내기 때문”이라고 김 실장은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 5일, 오전 10시~오후 6시 근무하면 일당 10~3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정규직 전환 가능성을 묻는 송 씨에게 김 실장은 “일단 한 달 임시직으로 일해보고 잘 되면 전환 검토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임시직 직원이 됐다.

#3. 2020년 4월 21일

‘서울 XX구 □□길로 가면 고객님 나와 계실거예요. 1000만원 수령하시면 됩니다.’

이날 아침 9시. 송지민 씨는 채용된 이후 처음으로 업무를 받았다. 지시대로 이동한 곳은 대형 쇼핑센터 앞이었다. 행인이 많았지만 김 실장이 인상착의를 설명해준 덕에 고객을 어렵지 않게 찾았다. 바로 정현옥 씨였다. 가까이 다가갔더니 정 씨도 자신을 알아보는 눈치였다. 그는 스마트폰을 붙잡고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그가 대뜸 전화기를 건넸다. 상대방은 “송지민 씨 맞죠? 잘 처리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전화기를 돌려주자 정 씨는 두툼한 봉투를 건넸다.

[권해원 디자이너]
[권해원 디자이너]

쉽게 쓰고, 언제든 버린다

송지민 씨의 사례는 지난해 폭발적으로 증가한 대면편취 보이스피싱의 매커니즘을 보여준다.헤럴드경제는 지난 8~9월 현금 수금책 피의자 14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러면서 대면편취 보이스피싱의 작동하는 ‘삼각구조’를 파악했다.

2019년까지 3244건에 그쳤다가, 지난해 들어선 1만5111건으로 폭증한 대면편취형 보이스피싱은 피해자를 만나 돈을 받은 뒤 계좌로 입금하는 역할자가 필요하다. 총책 입장에선 경찰에 붙잡히더라도 조직 본체엔 손상을 주지 않을 ‘도마뱀 꼬리’가 필요하다. 때문에 일반인 수요가 생긴다.

박현근 변호사는 “세상물정 모르는 20대를 구글이나 페이스북에서 무제한으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수거책은 말 그대로 쓰고 버리고 쓸모 없어지면 버리는 도구에 그친다. 새 인력은 국내에서 끊임없이 공급된다”고 말했다.

누구나 아는 사이트라 믿었는데

취재팀이 만난 14명의 사례자들은 보이스피싱에 연루되기 직전에 공통적으로 일자리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그 가운데 7명은 알바몬, 알바천국, 벼룩시장 같은 구인구직 사이트를 통해 ‘채권 회수’ 혹은 ‘채권 추심’ 아르바이트라는 안내를 보고 구인공고에 접근했다. ‘법률사무소 외근직 아르바이트’, ‘부동산경매업무’ 같은 제목이 달린 구인공고를 보고 엮이게 된 이들도 있다.

최근엔 중개사무소 외근직이라는 허울로 “고객들이 다운계약서를 써서 계약금을 현금으로 받아야 한다”고 구직자를 유인한다.

이 밖에 ▷네이버 밴드(2명) ▷네이버 카페(1명) ▷온라인 구인 광고(3명) ▷온라인 게임(1명) 등을 통해서 일자리 정보를 얻었고 결과적으로 보이스피싱에 연루됐다.

‘총책’이 조종하는 연극

일자리를 미끼로 평범한 시민들을 전달책으로 섭외한 보이스피싱 조직은 다른 한 편에선 피해자를 물색한다. 삼각구조를 완성하는 다른 축이다. 보이스피싱 범죄를 상징하던 검사, 금융감독원 사칭은 줄었다. 대신 은행, 카드사 등을 빙자해 대출상품을 안내하는 방식이 증가했다. 코로나19로 돈 필요한 사람이 많이지면서 피해자가 늘었다.

이병찬 변호사는 “작년, 올해 벌어진 사건의 90%는 코로나 긴급대출, 저금리 대환대출 등을 운운하면서 거짓말을 하는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은 현금을 건네받기로 한 사람(수거책)과 피해자는 대면하지만 상황을 전혀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피해자-피의자에게 각기 다른 거짓정보를 주면서 롤(역할)을 부여하는 셈이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이들이 약속된 장소에서 실제로 만났을 때 불필요한 소통을 하지 않도록 애쓴다. 가장 널리 쓰이는 방식은 피해자를 통화로 계속 붙잡고 있는 식이다. “우리 직원이 확실한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댄다.

취재팀이 만난 피의자들은 “담당자가 ‘고객이 통화 중인 상태로 만나기 때문에 인사만 하면 된다’고 설명한다”라거나 “피해자는 통화하고 있는 상태다. 서로 OOO 맞으세요? 하고 고개만 끄덕이면 끝이다. 대화를 나눌 겨를이 없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박준규·박로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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