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천예선 기자]‘유럽 금융중심에서 나치 수용소터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의 금융정책을 관장하는 유럽중앙은행(ECB)이 이달 초 새둥지로 입주를 시작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은행가에 위치한 ‘유로타워’에서 같은 도시 동부 끝자락인 ‘그로스마르크트할레’로 다.
마인 강변 동쪽에 위치한 그로스마르크트할레 신청사는 45층 높이의 트윈타워로, 2600명의 ECB 직원을 수용할 수 있다
유로존 경제위기로 우여곡절 끝에 완공된 그로스마르크트할레 신청사는 수년간 도매 청과시장이 있었던 건물을 개축한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1940년대 유대인 집단 수용소라는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다.
▶ECB의 역사인식=ECB가 2004년 그로스마르크트할레를 신청사 부지로 선정했다. 일각에서는 정통 은행가를 떠나는 것에 대해 비판이 일었지만 장 클로드 트리셰 당시 ECB총재는 아랑곳하지 않았따.
ECB 측은 신청사 후보지 34개 지역 중 그로스마르크트할레를 최종 결정하면서 “부동산 매입에 든 6000만유로(820억원)의 비용이 적절했고, 이 지역의 탄탄한 인프라와 그로스마르크트할레라는 건물 자체가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선정 근거를 밝혔다.
ECB 본부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해 있는데다 실무진들이 독일 중앙은행 분데스방크 출신이 많은 만큼 독일의 역사적 상황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컬럼비아대 프레드릭 미시킨(경제학) 교수는 ECB본부가 벨기에가 아닌 독일에 있는 이유에 대해 “독일이 2차 대전 이후 인플레이션을 잘 억제해 온 공로가 인정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청사의 과거와 미래=그로스마르크트할레 건물 지하실은 나치 시절 프랑크푸르트 유대인 박해를 위한 임시 대기실로 쓰였다.
나치 정권하의 정치경찰인 게슈타포는 1941~45년 그로스마르크트할레 지하실을 임대해 유대인을 강제 수용했다. 이 지하실에 억류된 유대인만 1만명에 달했다.
이들 유대인은 지하실에 도착한 이후 수시간 내에 열차에 실려 강제 수용소로 끌려갔다.
ECB는 그로스마르크트할레 동편에 있는 이 지하실을 있는 그대로 보존해 나치 시절 억류됐던 1만명의 유대인을 추모하는 기념관으로 만들었다.
지하실 벽에 희생자의 증언을 새긴 동판을 설치했을 뿐 그밖에는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
한 동판에는 “내 앞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며 애써 희망을 표현했다. 또 다른 동판에는 “지옥이었다. 밤샘 검사가 이어졌고 비명과 괴롭힘이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며 비통함을 드러냈다.
프랑크푸르트 유대인사회 대표 살로몬 콘은 공모를 거쳐 선정된 디자인에 대해 “가장 간결한 방법으로, 이 강제이송의 장소에서 어떻게 프랑크푸르트 유대인에 대한 인종청소 길이 준비되고 있었는가를 생생하게 부활시켰다”고 평가했다.
프랑크푸르트 유대인 박물관의 부관장이자 역사학자인 플리츠 바크하우스는 “도시 일상생활의 일부였던 건물이 범죄의 현장이었던 것을 명백하게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3만명의 프랑크푸르트 유대인이 그렇게 고향과 작별을 고했다”며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박해와 학살을 잊지 않는 것은 기본적인 일로, 기념관은 그것에 기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프랑크푸르트에 남아 있는 유대인은 7000명을 조금 넘는다.
▶ECB, 기념관 지원사격=ECB는 그로스마르크트할레 기념관 건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ECB는 건설 비용 총 480만유로(65억700만원) 가운데 100만유로(13억5500만원)를 댔다.
또 ECB는 그로스마르크트할레를 신사옥 부지로 선정한 직후 유대인 사회와 프랑크푸르트 시와 접촉해 기념관 건립을 추진했다.
13년에 걸쳐 완공된 기념관은 유대인 강제 이송을 기억하기 위해 지하실 뿐만 아니라 경사면과 통로, 선로, (철도) 신호소도 특별히 포함시켰다.
일반인에 공개는 내년부터다. ECB 측은 “기념관 다지인은 그로스마르크트할레의 역사적인 면을 ECB직원과 방문자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행인들이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시설의 가치를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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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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