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미국 라스베이거스 남서부의 한 사막에서 우승 상금 100만달러가 걸린 자동차경주 대회가 열렸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차량 2대는 멈춰 섰고, 1대는 출발과 동시에 뒤집어지는 등 큰 소란이 벌어졌다. 결승점까지의 거리가 240㎞이었는데 완주에 성공한 차는 한 대도 없었고, 12㎞를 달린 차가 가장 멀리 간 차였다. 미국의 한 잡지는 이 대회를 ‘대실패’라고 표현했다. 이 자동차경주대회에서는 특이한 미션이 있었는데 그것은 전 구간 240㎞를 ‘무인’자동차로 완주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DARPA 그랜드 챌린지’의 첫 대회 이야기다. 이 대회로 인해 자율주행자동차에 대한 연구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2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완전자율주행 시대에 다가서고 있다. 결국 이 대회는 새로운 혁신기술이 성장할 수 있는 씨앗을 심었다는 점에서는 ‘대성공’이라 할 수 있는 대회였다.
이처럼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 DARPA는 실패를 권장하는 것을 넘어 실패를 전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DARPA의 이러한 연구철학은 인터넷의 원형인 아파넷(ARPANET),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 스텔스 기술, 위성항법장치 GPS 등 세상을 바꿔놓은 수많은 혁신기술을 계속해서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런 연구 체계로 전환하면 되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지난 수십년간 우리는 추격형 연구·개발(R&D)을 통해 선진국을 따라잡아 왔다. 앞선 기술을 그대로 따라 하면서 성장해왔기에 우리는 ‘2등 성공’에 익숙해졌고, 이는 우리가 단기간에 압축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동력이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가 낮은 수준의 목표 달성에 도취되어 있는 사이 ‘실패’는 기필코 회피해야 하는 개념으로 각인되어 버렸다.
이렇게 실패를 철저히 배척하는 문화가 형성된 것은 낡은 평가 체계, 관리와 감사 중심의 행정 체계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연구과제가 ‘실패’로 규정되는 순간 연구 과정까지 총체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낙인이 찍히게 된다. 그리고 각종 감사를 거쳐 검찰 고발 내지는 중징계를 받는 등 연구자 개인은 씻을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받게 된다.
모든 R&D에서는 목표를 100% 달성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많은 새로운 사실과 함께 다양한 경험을 얻게 된다. 실패도 소중한 경험인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실리콘밸리의 지속 가능한 경쟁력의 시크릿은 ‘실패를 존중하는 문화’ ‘실패로부터 보호받는 문화’ 덕분에 다양한 도전을 마음껏 지원할 수 있는 생태계에 있다.
이제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선 우리가 지속적인 혁신성장의 모멘텀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R&D 문화를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근본적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지난 십여년간 말잔치로만 떠들어 왔던 선도형으로의 전환을 이제는 더 늦출 수 없다.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야 하는 상황에서 이제는 실패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래야만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는, 실패를 딛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혁신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자들의 손발을 묶어 놓고, 틀에 가둬두는 기존 평가 체계, 관리 및 감사 체계, 각종 규제를 과감히 개혁하고, 연구자들이 더 넒은 광야에서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는 연구 시스템이 작동되어야 한다.
너무 익숙해져서 그 의미가 희석된 말을 다시 한번 곱씹게 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nbgk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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