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피노키오’
고승희=기레기 창궐의 시대에 던진 의미심장한 화두…유치하게 잘 만든 드라마 ★★★☆
정진영=거짓말 하면 딸꾹질하는 기자…적응이나 가능할까 ★☆
tvN ‘미생’
고승희=팍팍한 현실에도 장그래가 부러운 건 역시 ‘사람’의 문제인가 ★★★★★
정진영=이런 대리 만족이라면 얼마든지 판타지에 빠져주마 ★★★★★
OCN ‘나쁜 녀석들’
고승희=공권력도, 악의 무리도 조롱하는 짐승들의 속 시원한 판타지 ★★★★☆
정진영=정말로 현실성은 없지만 은근히 설득력 있는데? ★★★★
[헤럴드경제=고승희ㆍ정진영 기자]“팩트(사실, 진실)보다 중요한 건 임팩트(효과, 영향)”(SBS ‘피노키오’)라는 언론, 유명무실해진 공권력 앞에 ‘나쁜 놈이 더 나쁜 놈들을 잡는다’는 역발상(OCN ‘나쁜 녀석들’), “그래봤자 바둑”이고, “그걸로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tvN ‘미생’) 해도 저마다 자기만의 바둑을 두며 일상의 부조리를 감내하는 ‘을’의 이야기에 대중이 화답했다. 최근 안방극장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세 편의 드라마다.
소재는 각기 다르지만 이들 드라마에선 공통의 분모가 읽힌다. 누구나 겪는 직장생활을 통해, 법과 질서가 무의미해진 사회 시스템과 공권력에 대해, 팩트를 가장한 무례한 언론을 빗대 대중의 분노를 건드리며 공감과 위로, 카타르시스를 안긴다는 점이다.
이 같은 드라마 세 편이 나란히 안방극장을 찾은 데에는 올 한 해 대한민국을 둘러싼 분위기의 영향과 다르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2014년 한 해, 대한민국에선 믿기 힘든 후진국형 참사가 빚어낸 비통한 공기가 수개월 내려앉았다. 우리의 속살을 들춰낸 대형 참사는 국민들에게 자괴와 수치, 분노가 뒤엉킨 감정을 안겼다. 예기치 못한 참사로부터 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는 공포도 키웠다. 일상의 문제를 뛰어넘은 국가적 재난에 노출됐던 국민들은 그 어디에서도 위로받지 못한 채 일상으로 돌아갔다. 대중의 정서를 먼저 어루만진 건 TV였다. 드라마에선 평범한 직장인의 이야기(미생)를 밀착해 현실을 보듬었고, 흉악범죄에 노출된 시민들을 구원할 히어로로 초강력 범죄자(나쁜 녀석들)들을 불러들였다. 세월호 침몰사고와 함께 맨얼굴을 드러낸 언론의 폭력(피노키오)도 정조준했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지난해부터 올초까지 안방의 드라마들이 현실을 초월한 판타지를 이야기하거나 멜로를강조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에 반해, 이 세 편의 드라마는 우리가 익히 접하고 있는 일들을 상당히 현실적으로 표현하며 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한다는 점에서 공감대 형성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고,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면서도 그 안에 판타지를 녹여내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켜준 대표적인 드라마 세 편”이라고 분석했다.
tvN ‘미생’에 대한 직장인들의 반응은 특히나 뜨겁다. 일개미가 돼 먼지 같은 삶을 사는 직장인들은 때로는 장그래에게 때로는 오 과장에게 자신을 이입했다. 일희일비로 점철되고 수없이 화가 치밀어 올라도 결국 술 한 잔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현실 속 직장인에게 드라마는 잠시나마 기대쉴 수 있는 위안과 공감을 전해줬다. ‘미생’의 이재문 기획PD는 “드라마의 인기에서 직장인들이 그간 많이 분노했었다는 것이 느껴졌다”며 “매일이 치열한 장그래나 오 과장에게선 너무도 보편적인 직장인의 모습이 담겨있다. 화가 나도 참고 슬퍼도 참아야 하는 삶, 무언가를 간절히 원해도 여전히 나아지지 않는 팍팍한 현실을 그려간 것이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찾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나쁜 녀석들’은 ‘통쾌한 역발상’을 바탕으로 범죄자들이 ‘악의 무리’를 소탕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를 테면 ‘이이제이’, 오랑캐로 오랑캐를 무찌른다는 발상이다. 법과 질서는 무기력해졌고 공권력은 공범이 돼 흉악범죄를 방조하는데, 나쁜 짓만 골라하던 범죄자들이 나쁜 놈 소탕의 주역이라는 점은 ‘안티 히어로물’의 구조를 따르고 있다. 그러면서도 드라마가 담아내는 사건은 실제 범죄를 연상케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나쁜 녀석들’을 집필한 한정훈 작가는“어떤 특정집단(경찰, 정부)을 무능력하다고 치부하는 것도, 범죄자를 미화하는 것도 아니”라면서도 “사회상을 반영해 답답함을 풀어주면 카타르시스가 있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범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것에 어떤 불만을 가지고 있는 지를 보여주고, 고도화되는 범죄에 노출된 불안감을 드라마를 통해 해결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여과 없이 드러난 언론의 침몰 과정은 최근 첫 방송을 시작한 SBS ‘피노키오’를 통해서도 상세히 비쳤다. 진실보다는 ‘보도의 효과’를 노리며 과장보도를 일삼는 언론의 행태를 비추며 드라마는 우리 사회의 정의를 묻는다.
이들 세 편의 드라마는 저마다 다른 장소에서 목격한 소재들을 담아내며 의도했건 의도치 않았건 분노의 시대에 살고 있는 시청자를 어루만지고 있다. 그것은 현실 속에 적절하게 뒤섞인 판타지가 개입하며 시작된다. 장그래의 멘토가 돼주는 오 과장과 영업3팀의 이상적인 분위기(‘미생’)는 모든 직장인들의 선망의 대상이며, 악을 소탕하는 무자비한 범죄자라는 설정(‘나쁜 녀석들’)과 사회부 수습기자가 돼 바른 언론인으로 성장할 주인공들과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는 ‘피노키오 증후군’이라는 가상의 설정(‘피노키오’)은 시청자에겐 ‘그래도 살 만한 세상’이라는 보편적인 희망과 더불어 대리만족을 안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현실이 살벌하고 리얼하게 보여질수록 판타지에 대한 욕구는 더 커지는데, 이 두 가지를 함께 섞으며 현실 속의 부재를 충족시키고, 대중의 공감대는 더 커지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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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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