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가족 발길 이어지는 전북 익산
500여 그루 메타세쿼이아 하트모양 도열
요새 성벽 처럼 둘러쳐진 ‘아가페 정원’
용안생태습지 위 멋진 Y자 데크 여행길
바람개비길 MZ세대 데이트 핫플레이스
100년 역사 ‘ㄱ’자형 한옥 두동교회 눈길
가장 오랜 역사 가진 낭만 간이역 춘포역
익산은 백제의 고도라서 ‘고백’도시다. 서동이라 불리던 무왕이 선화공주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새로운 포부와 함께 익산 천도를 실행했다는 점에서 사랑의 도시를 표방한다.
왕궁면이 아니라도 금강변 익산 용안의 바람개비길과 습지공원, 익산시내 고백스타 포토존 등에는 MZ세대 연인, 젊은가족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익산의 사랑은 최근들어 ‘무조건 적인 사랑, 아가페’로 진화한다. 어쩌면 김대건 신부가 신부 서품을 받고 처음 상륙한 성당포구와 나바위성당이 있고 여러 종교의 성지가 많은 곳이라, ‘로맨스’ 뿐 아니라 ‘아가페’ 역시 익산이 이미 품고 있었던 사랑의 덕목인지도 모른다.
▶세번의 무조건적 사랑, 아가페정원=익산 황등면엔 잠실야구장 만한 우람한 나무 ‘요새’가 있다. 500여 그루 메타세쿼이아가 12만 ㎡의 요새 성벽 처럼 둘러쳐진 모습으로, 유럽의 웬만한 성(城)이 부럽지 않은 위용이다. 어떤 고난도 막아낼 것 같은 이 요새의 이름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뜻하는 ‘아가페 정원’이다.
1970년 고(故) 서정수 신부는 오갈데 없는 노인들을 보살피는 복지시설 아가페 정양원을 설립하면서 건강에 좋은 나무들을 심고 그 사이에 오솔길과 쉼터를 만든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이 주는 감정정화도 함께 도모한다. 좋은 나무를 많이 심은 데엔 다른 이유도 있었다. 복지시설 운영비용을 지원금으로만 충당하기에 버거워 사람들에게 좋은 나무를 잘 가꾼 다음, 필요한 국민들에게 팔아 정양원 어르신들의 음식과 생활에 모자람이 없도록 했던 것이다.
▶호위무사 메타세쿼이아 500그루 하트모양 도열=호위무사 메타세쿼이아 500주는 사랑을 뜻하는 하트(♥)모양으로 도열해 있고, 섬잣나무, 공작단풍, 배롱나무, 향나무, 소나무 등 17종, 1416주가 건강하게 자라면서 황등의 산소통이 되고 있다. 지난해 무료 개방하면서 2040 MZ세대의 인스타 맛집으로 떠오른다.
아가페 정원은 상사화 꽃길, 단풍나무길, 밤나무, 포멀가든, 은행나무 산책길 등으로 꾸며져 있다. 수목 병정들을 믿음직한 뒷배 삼아 사진찍으면 어디서든 작품이 된다. 중간중간 벤치도 놓이고, 계절마다 수선화, 튤립, 목련, 양귀비 등 번갈아 피는 화단도 잘 가꾸어져 있다.
아가페 정원에서 여생을 보내다 영면에 든 어르신들의 비석은 정원 한켠 피에타 조각상 아래 도열시켜, 이승을 떠나도 이 숲을 계속 즐기도록 배려했다. 인근 식당가의 건강미식 황등 육회는 덤이다.
▶사랑의 바람개비길 옆 남녀칠세부동석 교회=도심 중앙로의 발랄 포토존 ‘고백스타’, 금강변 성당포구 바람개비길 등 MZ세대 데이트 핫플레이스로 유명세를 얻은 익산이 최근들어 바람개비길 옆 갈대바다 용안생태습지를 접근성 좋게 단장했다. 습지 위로 멋진 Y자 데크길이 놓이고, 안전 하이킹을 위한 편의 시설도 좋아졌다. 용안생태공원 옆엔, 갈대수피아와 미로가 만들어진, 55만평 규모 전국 최대 시범 억새단지가 있는데, 공원과 습지를 합친 넓이는 여의도의 1.5배쯤 된다. Y자 한복판은 여름이 되면 초대형 연꽃밭의 중심이 된다. 살아있는 현장생물학습도감이기도 하다. 청개구리광장, 풍뎅이광장, 잠자리광장, 나비광장, 조류전망대, 야외학습장, 식물관찰원, 갈대체험원에서 가족들은 에듀테인먼트를 즐긴다. 연꽃, 코스모스와 억새, 오색나비메뚜기, 소금쟁이, 호랑거미 등 다양한 생물이 살고, 나무에 붙어사는 ‘보라해’도 있는데, 방탄소년단(BTS)의 아미(ARMY)들이 재미있어 할 것 같다.
용안습지를 떠나 김대건 신부가 사제서품 이후 첫 상륙한 성당포구를 거쳐 조금만 내륙으로 들어오면 100여년 역사를 가진 ‘ㄱ’자형 한옥 두동교회를 만난다. 남성과 여성을 수직으로 분리배치한 남녀칠세부동석 교회라, 좋아하던 교회오빠 얼굴 보기가 어렵다. 애처로움은 창문 너머 잠깐 본 모습으로도 금새 풀렸을 것이다.
▶재잘거리는 익산토성, 웃으며 걷는 수탈지 춘포=신라 선화공주를 사랑에 빠지게 한 로맨스 원정대장 백제 무왕이 익산 천도를 도모하며 건설했던 왕궁리 유적에선 많은 과학이 엿보인다. 동서 245m, 남북 490m의 성내 생활공간에 완반한 경사의 인공수로와 저수시설, 전각 요소요소에 물을 활용하고 배수하는 치수시설을 만들었다. 1400년전 기술이다. 또 궁의 가장 낮은 지역에 공동 수세식 화장실을 만들어 눈길을 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 분뇨의 자정작용이 어느정도 이뤄진 후에야 수로로 배출하는 지혜도 엿보인다. 오금산의 익산토성은 최근 연인, 친구, 가족들이 가볍게 거닐수 있는 산책로를 만들어두었다. 익산엔 국내 간이역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춘포역도 있다. 춘포역을 나가면 대장교회, 호소가와 가옥(농업 및 정미 기술자 일본인의 집)과 농장, 만경강길, 김성철(일본인 소유 농장 관리인) 가옥, 대장정미소, 지서집 등을 돈다. 수탈 거점에 대한 동학군의 항일 습격도 있었던 곳이다. 그래도 지혜롭게, 다치지않고,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온 춘포사람들을 보면서, 웃으면서 밟아본 일제강점의 흔적이었다. 사랑으로 고도(古都)의 근엄함을 풀고, 슬픔을 이겨내 미소지을 줄 아는 익산이 다음엔 어떤 ‘신상’을 내놓을 지 궁금하다.
함영훈 기자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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