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회적 역할 강화 모델 제시
구성원 개념·외연 확장 공감대 도출
임직원·주주·고객 이익 극대화 고민
사외이사들 ‘어항 속 메기役’ 충실
이사회서 ‘CEO 승계계획’ 수립해야
新사업등 투자심사기구역할 수행
상속 막기보단 ‘오너+이사회’ 대안
오랫동안 학교에서 행정학·정치학을 가르쳤던 염재호 SK㈜ 이사회 의장이 SK그룹에 합류한 때는 고려대학교 총장 임기가 끝난 2019년이었다. 교단에서 학생들을 마주하던 것이 익숙했던 그가 처음 기업의 의사봉을 쥐게 됐을 때는 다소 생소함이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지난 3년 간 SK의 지배구조 선진화를 위한 다양한 실험을 펼쳤다. 특히 작년에는 대표이사 평가·보상체계를 수립하는 등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화하는 성과를 거뒀다. 오는 29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재선임안이 통과될 경우 염 의장은 오는 2025년까지 3년 더 이사회에서 활동하게 된다. 임기 후반전을 앞두고 있는 그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 강화에 있어서 SK가 모델이 될 수 있도록 매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염 의장은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SK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SK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그룹 구성원에 대한 개념이 획기적으로 확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작년에 내부적으로 우리의 구성원이 누구냐에 대한 많은 토론이 있었고, 구성원의 개념과 외연을 굉장히 크게 넓혀야 한다는 공감대를 도출하게 됐다”며 “임직원뿐만 아니라 주주와 제품을 이용하는 고객도 SK의 구성원으로 보고, 그 구성원들 전체 이익의 극대화를 항상 고민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에 그룹의 가치와 비전이 있다”고 말했다.
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계속 ‘SK의 모토가 행복이라고 하는데 돈 많이 벌어서 나만 행복하고 SK 구성원들은 불행하면 그게 무슨 행복이냐’, ‘또 SK끼리는 행복한데 사회가 불행하다면 이게 진짜 행복일까’라고 얘기하는 것에 크게 공감했다”며 “결국 기업이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의 행복을 위해 노력해야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염 의장은 이처럼 SK가 ‘기업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확대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이사회 중심 경영 노력이 더 요구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염 의장은 “만일 최고경영자(CEO)를 대체해야 되는 상황이 갑자기 왔을 때 단순히 순번대로 후임을 정하는 게 아니라 사전에 적임자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차원에서 세부 내용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외국에선 CEO에 대한 ‘석세션 플랜(succession plan·승계계획)’도 이사회가 준비하는데, 저희도 아직까진 구체화된건 아니지만 그런 방향으로 가야되는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SK가 CEO 승계 시스템까지 수립한다면 이사회 중심 경영이 한 차원 더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럴 경우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서 지배구조에 대한 평가 제고도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염 의장은 “사외이사들끼리 분기마다 워크숍을 하면서 SK의 가치가 10년, 20년 뒤에도 이어지고 세계적인 기업이 되게 하기 위해 뭘 해야 될지를 놓고 토론을 많이 하고 있다”며 “결국 SK와 같은 큰 조직은 결코 한 사람이 움직일 수 없고 결국 시스템으로 작동해야 하며, 최 회장도 시스템으로 가야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사회의 위상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고도 했다. 염 의장은 “저도 3년 전에 이사회에 참여하게 됐는데 처음에는 눈치도 보고 ‘이미 다 얘기가 된 건이겠지’ 하면서 괜히 찬물 끼얹지 말자며 언급을 피했는데, 점점 최 회장이 이사회의 자율권을 크게 강조하고 어떤 면에서는 딴지를 거는게 사외이사들의 역할이라고 하니까 점차 목소리를 높이게 됐다”고 말했다. 염 의장은 이어 “그때부터 얘기를 하는 게 오히려 자극이 될 수 있다고 봐서 자신감을 갖게 됐고, 중요한 방향에 대해서는 최 회장이 사외이사들에게 일임하고 있어 부담이 될 정도”라고 언급했다.
그는 “예전에는 오너 한명이 의사결정을 하다가 지금은 이사회도 많고 왜 이렇게 복잡해졌느냐는 말도 있는데, 사실은 이게 ‘체크 앤 밸런스(견제와 균형)’를 통한 리스크 매니지먼트(위험관리)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사회가 일종의 투자심사기구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SK㈜(SK Inc.)는 지난해 영문사명에서 ‘홀딩스(holdings)’를 빼면서 투자형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선언, 디지털·바이오·그린·첨단소재 등 4대 핵심 부문 진출을 꾀하고 있다. 염 의장은 “신사업 안건이 올라오면 향후 프로젝션(projection·전망)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저는 과거의 레코드(실적)가 없다면 프로젝션이 될 수 없고 그저 익스펙테이션(expectation·기대)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곤 한다”며 “SK가 잘 나간다는 과학기술 부문에서도 ‘과연 시장성이 있느냐’, ‘장밋빛 청사진은 아니냐’면서 일종의 ‘어항 속 메기’를 자처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그는 “어떤 투자 안건의 경우 한 사외이사가 불편하다는 입장을 이사회에서 밝혔고 최 회장도 이와 같은 부정 견해를 표시한적도 있다”며 “사외이사 중에는 이제 투자를 3~4년 진행했으니 엑시트(투자회수)도 검토할 때가 됐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의 자녀 승계와 관련해서는 “우리나라는 상속세 등으로 무조건 못하게만 하려고 하는데 하버드대 논문 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전문경영인 체제가 반드시 성공하는 건 아니고 오히려 더 문제가 많을 수 있다”며 “입헌군주제에서 왕과 수상이 함께 존재하는 것처럼 기업도 오너 체제가 이어지면서도 이사회가 거버넌스를 수여받아 경영하는 방향도 하나의 발전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염 의장은 “누구는 고려대 총장까지 한 사람이 또 일을 하냐는 말도 하는데, 기업의 사회적 역할 변화를 SK가 주도하는 일에 기여할 수 있다면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기업은 3년마다 확확 바뀌어야 되고 가만히 있으면 자연적 도태를 겪을 수 밖에 없는데 이런 측면에서 연임이 되면 그룹에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정리=서경원 기자
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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