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목마름으로·오적 등 남겨
민청학련 배후조종 혐의 투옥
‘황톳길에 선연한/핏자욱 핏자욱 따라/나는 간다 애비야/네가 죽었고/지금은 검고 해만 타는 곳/두 손엔 철삿줄/뜨거운 해가/땀과 눈물과 모밀밭을 태우는/총부리 칼날 아래 더위속으로’( ‘황톳길’ 일부)
김지하(사진) 시인의 등단작 ‘황톳길’은 시인으로서, 사상가, 혁명가로서 그의 출사표나 다름없었다.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을 낳은 민중민족문학의 길과 생명문학의 길은 역사와 민중을 직시한 여기서 시작됐다.
유신시대 민주화와 자유의 상징이었던 저항시인 김지하(본명 김영일·81)가 8일 별세했다. 고인은 전립선암 등으로 투병생활을 해오다 이날 강원도 원주 자택에서 타계했다.
민주화의 길에서 고인의 족적은 뚜렷하다. 1964년 대일굴욕외교 반대투쟁때 ‘곡(哭) 민족적 민주주 의’라는 조사 등을 써 첫 투옥된 이후 1970년 ‘사상계’에 정부를 비판하는 저항시 ‘오적’을 발표, 반공법 위반 혐의로 다시 옥살이를 했다. 1974년엔 민청학련 사건을 배후조종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투옥됐다. 국제적인 구명운동으로 풀려났으나 사건의 진상을 알리는 글을 써 유신이 끝날 때까지 6년을 더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1975년 옥중에서 ‘제3세계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리는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회의의 ‘로터스’ 특별상을 받고, 노벨문학상과 노벨평화상 후보로도 추천됐다.
그는 감옥생활 중 폐쇄공포증에 시달리다 형무소 창틀에 날아온 민들레 꽃씨와 풀씨들을 보고 깨달음과 함께 선과 생명사상으로 나아간다. 1991년 학생 운동권에서 분신이 잇따르자 시인은 생명을 경시하는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칼럼을 게재, 일대 파장을 일으켰다. 2012년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공개 지지하고,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를 공개 비판해 진보 진영으로부터 외면을 받게 된다.
고인은 1973년 소설가 박경리의 딸 고(故) 김영주 전 토지문화재단 이사장과 결혼, 유족으로는 장남 김원보(작가)씨와 차남 세희(토지문화재단 이사장 겸 토지문화관 관장)씨가 있다. 빈소는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에 마련됐다. 이윤미 기자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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