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동북아는 안중근 시대 보다 더 비극적이고 돌파구가 없어 보입니다. 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둬 놓을 수는 없습니다.”
김훈 작가는 3일 서교동 한 카페에서 가진 소설 ‘하얼빈’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안중근 시대보다 동북아는 더 혼란스럽고 더 절망적”이라며 중국의 군사대국화와 북핵, 일본의 무장 등 동양 평화가 위기를 맞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면서 그는 “초야인으로서 너무 정돈되지 않은 말을 하는 건 아닌가 한다”며 말을 아꼈다.
그는 안중근은 젊었을 때부터 쓰고 싶었던 소설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런데도 “안중근의 짧은 생애가 뿜어내는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했고, 엄두가 나지 않아서 뭉개고 있었다”며, 2021년 몸이 아팠다가 올초 회복되면서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소설 ‘하얼빈’은 1909년 10월26일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토를 저격하는 순간의 전후 며칠에 초점을 맞췄다.
그가 그려낸 안중근은 기존의 영웅적 모습 대신 청춘의 에너지와 생명력을 지닌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이다.
“시대의 고뇌는 무거웠지만 그의 처신은 바람처럼 가벼웠다. 총알 일곱 발이 다였다”며, 그는 특히 안중근이 블라디보스톡 허름한 술집에서 동지 우덕순을 만나 나누는 대화를 청춘의 초상으로, 글을 쓰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돌아봤다.
“둘은 이토를 죽이자며 이 일을 왜 해야 하느냐 대의명분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하얼빈에 가본 적도 없죠. 그런데도 다음날 하바롭스크로 가서 하얼빈으로 갑니다. 이 대목이 가장 놀랍고 기가 막히게 아름답죠.”
“청춘은 완성을 도모하는 기다림의 시간이 아니라 그 순간에 완성된 폭발적 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그는 청춘을 예찬했다.
이토 히로부미를 집중적으로 형상화한 것도 다른 소설과 다르다. 이와 관련, 작가는 “이토를 소홀하게 취급하고 죽어 마땅한 인물이라는 게 지배적인 시각인데, 이토 안에서 문명개화라는 대의명분과 제국주의의 야만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묘사하려고 했다”며, 안중근이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가진 인물과 숙명적으로 만나는 비극성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김훈은 젊었을 때 읽은 두 권의 책이 자신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털어놨다.
안중근의 신문조서와 이순신의 난중일기였다. 둘은 같은 듯 다르다.
그는 ‘칼의 노래’ 속 이순신은 절망적 상황에서 희망의 허상을 제시하지 않고 절망적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들이박고 나가는 인물인 반면, '하얼빈'속 안중근은 희망의 목표를 가진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안중근은 러일· 청일 전쟁에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고 그 위에 일본의 제국주의 패권이 확장하고 있던 시대, 민족과 국가 중심의 동양평화론을 제시했다. 이토의 문명개화 동양평화론에 맞선다.
김훈 작가는 “소설이 반일 민족주의로 이해되는 건 바라는 게 아니다”며 경계했다. 그러면서 “계층간·사회 먹이 피라미드가 적대적인 지금 우리 사회에서 민족주의가 이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윤미 기자/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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