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기사 출입금지’ 매장 늘어

기사들 “무시받는 느낌에 눈치”

플랫폼업체들 “업주 방침 간섭 못해”

‘갑질 아파트’ 문제도 시정 없어

배달 라이더들 모습(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연합]
배달 라이더들 모습(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연합]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1. ‘땀냄새 나니 에어컨 앞에 서 있지 마세요.’ 5년차 배달기사 김정훈(40) 씨는 올 여름 음식을 수령하려 방문했던 서울의 한 매장에서 이런 문구를 목격했다. 야외에서 종일 배달을 하다 무심코 에어컨 앞에 섰던 김씨는 “매장 손님을 신경 쓰는 업주들도 이해는 된다”면서도 “무시 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털어놨다.

#2. 부산에서 15년째 활동하고 있는 윤영원(39) 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음식이 나오는 시간을 정확히 맞추기 어려워 5분가량 매장에 일찍 도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업주가 손사래를 치며 “나가달라”고 하는 경험이 쌓이다 보니, 윤씨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매장에 들어가지 않고 있다. 그는 “유난히 매몰차게 내쫓겼던 매장에선, 콜(배달 주문)이 들어와도 취소하고 싶은 충동이 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최근 배달기사들 사이에서 음식점을 방문했다가 ‘출입금지’를 당했다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매장 내 손님들의 불편 등을 이유로 야외에서 대기해 달라는 것. 배달 시 화물용 엘리베이터 이용 등을 강제한 ‘갑질 아파트’ 문제까지 겹쳐 기사들은 “모멸감을 느낀다”고 호소한다. 그러나 정작 플랫폼 업체들에선 뚜렷한 개선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25일 헤럴드경제가 만나본 배달기사들은 ‘출입금지’ 문제는 ‘일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에 “매장 대기는 하지 말라”라는 공지를 올려놓거나, 매장 문 앞에 종이를 붙여 놓는 식이다.

하루 평균 12시간을 일한다는 윤씨는 “덥고 비가 오는 상황에선 매장에서 잠시라도 에어컨 바람을 쐬고 싶기도 했다”면서도 “정중한 부탁도 아니고, 인상을 팍 쓰며 ‘나가라’고 하면 상당히 불쾌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올 여름 주로 백화점 로비나 은행에 잠시 들어가 더위를 식히고는 했다.

배달기사들이 모여 있는 단체 카톡방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겪어 서러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종종 나온다는 것이 윤씨의 전언이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도 “여러 업체가 모여있는 공유주방이나, 좁은 가게인 경우 대다수가 라이더 출입을 못 하게 막는다”고 설명했다.

정작 플랫폼업체들은 이 같은 ‘출입금지’ 사례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배달의민족 관계자는 “특정 업체만의 문제인지, 다수의 사례인지는 확인이 되지 않았다”며 “다만 업주들의 운영 방침을 간섭하기도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요기요 관계자도 “지금까지 파악된 사례는 없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배달기사에게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거나 헬맷을 벗도록 강요한 아파트 단지들의 사례가 알려지며 민주노총 배달플랫폼지부(이하 노조)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역시 플랫폼업체 차원의 대응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차원에서 각 아파트에 문제를 시정해달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지만 답변이 온 사례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플랫폼업체가 업주와 기사 간의 갈등을 방치하는 상황은 결국 서비스 질의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씨는 “기사들이 암암리에 기피하는 매장이 생기면 결국 배달 시간이 길어져 소비자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상식과 인지상정의 문제”라며 “매장을 신경 쓰는 업주도 간섭하기 어렵다는 플랫폼의 입장도 있겠지만, 배달기사의 노동을 존중하는 인식이 분명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k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