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페예프, 3일 내한 무대

전쟁 이후 콘서트 20개 취소

“잔혹한 세상 음악이 평화 되길”

2014년 13세의 나이로 차이콥스키 영아티스트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피아노 천재’로 알렉산더 말로페예프(Alexander Malofeev)가 첫 내한 리사이틀을 통해 한국 관객과 만난다. [스톰프 뮤직 제공]
2014년 13세의 나이로 차이콥스키 영아티스트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피아노 천재’로 알렉산더 말로페예프(Alexander Malofeev)가 첫 내한 리사이틀을 통해 한국 관객과 만난다. [스톰프 뮤직 제공]

“한국에서의 데뷔 무대는 정말 오랫동안 기다려왔어요. SNS를 통해 한국 관객들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한국 문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한 부분이 클래식 음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지난 5월 음악계는 일찌감치 술렁였다. 2014년 13세의 나이로 차이콥스키 영아티스트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피아노 천재’로 주목받은 주인공,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말로페예프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협연 무대를 예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 내한이 무산된 것은 드라마틱했다. 공연을 불과 나흘 앞두고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알렉산더 말로페예프는 마침내 첫 내한 리사이틀(9월 3일, 롯데콘서트홀)을 앞두고 진행한 헤럴드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전 공연이 취소돼 실망을 많이 했다”며 “이번 공연과 한국 관객과의 만남을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첫 내한에서 그는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베토벤부터 낭만주의 라흐마니노프, 동시대 작곡가인 스크리아빈과 메트너를 아우른다. 말로페예프는 자신의 모든 공연 프로그램을 스스로 구성하고 결정하는 음악가다. 그는 “내 안의 잠재된 감정에 주목해 프로그램을 짠다”고 했다.

알렉산더 말로페예프(Alexander Malofeev). [스톰프 뮤직 제공]
알렉산더 말로페예프(Alexander Malofeev). [스톰프 뮤직 제공]

내한 리사이틀에선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 메트너의 ‘피아노 소나타 사단조, 작품번호 22’, 곡은 스크리아빈의 ‘5개의 프렐류드, 작품번호 16’, 라흐마니노프의 ‘회화적 연습곡, 작품번호 33’을 연주한다.

말로페예프는 베토벤과 메트너에 대해 “두 사람은 매우 다른 특징을 가진 음악가”라며 “베토벤은 낭만적인 음악의 아버지로 꼽히지만, 메트너는 불행히도 러시아 음악사에서 길을 잃고 20세기 모더니즘과 끊임없이 분투했던 작곡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두 작곡가 모두 매우 객관적이며 뛰어난 음악성을 가지고 있어요. 베토벤 소나타 17번과 메트너 소나타 사단조는 두 사람의 음악적 특징을 직접적으로 보여줘요. 자신들의 방황과 불확실성의 시기에 맞서며 소나타를 통해 각자의 캐릭터를 표현했어요.”

스크리아빈에 대해선 “굉장히 개성이 강한 작곡가”라고 봤다. “초기작인 ‘두개의 즉흥곡’과 ‘다섯 개의 프렐류드’는 미래에 대한 예찬만을 보여주는 작품”이자 “스크리아빈의 순수함을 보여주는 곡”이라고 했다.

라흐마니노프는 말로페예프의 음악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곡가다. 그는 “어릴 때부터 라흐마니노프를 듣고 자랐다”고 했다.

“‘회화적 연습곡’은 그의 음악유산들 중 묘사의 정점을 담아낸 작품이에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문학, 영화, 회화 등 러시아의 문화적 배경 전반에 유기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고, 인간의 모든 문제들을 초월할 만큼 신성하다는 인상을 줘요. 제게 라흐마니노프는 우상이고, 모든 음악가들 사이에서도 별개의 존재로 자리하고 있어요.”

알렉산더 말로페예프(Alexander Malofeev). [스톰프 뮤직 제공]
알렉산더 말로페예프(Alexander Malofeev). [스톰프 뮤직 제공]

말로페예프는 차이콥스키 콩쿠르 이후 “러시아의 피아노 신동”으로 불렸다. 어린 나이에도 뛰어난 테크닉과 성숙한 표현, 맑은 음색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말로페예프의 음악에서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그는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피아니스트로 새로운 길에 접어든 계기이면서도 어린 시절 배운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고 돌아봤다.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제게 많은 걸 가져다줬어요. 돌이켜보면 결과를 떠나 그 때의 공연들은 따뜻함으로 기억돼요. 막상 연주가 시작될 때, 경쟁에 대한 생각과 그것의 필요성은 사라졌으니까요. 음악가로의 삶은 경연이 끝날 때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이제 전 스포츠의 요소를 제거하고 온전히 음악에 집중할 수 있게 됐죠. 콩쿠르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제 때 멈추는 것도 중요해요.”

‘스타 피아니스트’로 성장한 말로페예프는 같은 세대 연주자 중 눈에 띄는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발레리 게르기예프, 리카르도 샤이, 미하일 플레트뇨프, 정명훈과 같은 세계적인 지휘자와 협연했다. 정명훈과는 이탈리아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함께 했다. 말로페예프는 “우린 매우 다른 기질을 가지고 있다. 정명훈 지휘자와는 무척 신나는 협업을 했다”며 “그의 침착함과 자신감은 엄청난 흡인력이 있다. 정명훈 지휘자의 음반과 특히 공연 영상들을 좋아하는데, 볼 때마다 무척 놀랍다”고 말했다.

알렉산더 말로페예프(Alexander Malofeev). [스톰프 뮤직 제공]
알렉산더 말로페예프(Alexander Malofeev). [스톰프 뮤직 제공]

‘피아노 천재’라는 수사가 따라오지만, 말로페예프가 음악을 시작한 것은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다양한 경험과 교육을 강조”한 부모님의 영향으로 피아노를 시작했다. 이른 나이에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은 그에게 음악은 “삶이자 삶을 위한 방식”이 됐다.

그는 “모든 음악가들에겐 자신만의 레시피가 있다. 지금의 난 음악가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고 나만의 길을 다져가는 과정 위에 있다”고 했다.

음악 안에서의 온전한 삶을 이어가던 말로페예프에게 팬데믹과 함께 지나오고 있는 전쟁의 시간들은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3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국적의 음악가들이 세계 무대에서 퇴출되기 시작했다. 말로페예프도 그 중 한 명이었다.

“21세기에 다양한 문제들이 다시 (전쟁과 같은) 동물적인 방법으로 해결되고, 아직도 미래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혐오스러워요. 해결책을 찾고 싶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음악을 만드는 것 뿐이에요. 오랜 시간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피아노가 있다는 것이 제겐 희망과 숨 돌릴 기회를 주고 있어요. 잔혹한 세상에서 음악이 평화와 믿음을 가져다 주길 바랍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