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해 정란(이재원 지음, 책이라는 신화)=‘조선 최초의 전문 산악인’이란 평가를 받는 조선 후기 선비 창해 정란의 기록을 바탕으로 그의 삶과 행적을 소설적 형식으로 구성했다. 경상도 군위 출신인 정란은 양반가의 여느 자제와 마찬가지로 과거를 준비하다 산에 빠져 평생 금강산, 백두산, 한라산 등 팔도를 주유하고 글과 그림을 남겼다. 당시 사람들로부터 ‘창해광사(滄海狂士)’라 불린 정란은 스스로 ‘산수병’에 걸렸다고 실토했다. 가족을 내팽개치고 산하를 유람한다고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등정했을 때 온몸에 흐르는 짜릿한 쾌감이 또 다른 미지의 세상을 꿈꾸게 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양반들 역시 산수를 좋아했지만 노비가 태워주는 가마에 올라 경치 좋은 곳에 오르는 식이었다. 반면 정란은 오로지 청노새 한 마리와 어린 종 하나만 대동한 채 두발로 산을 올랐다. ‘혼자의 힘으로 맞서기’는 그의 산행의 첫 번째 원칙이었다. 그는 평소 교유했던 화가와 문장가로부터 산행을 하는 자신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받아 첩을 엮었는데, 그 중 하나가 ‘불후첩’이다. 채제공이 “자네는 썩어 없어지지 않는 존재라네”라고 찬문한 데서 따왔다. 불후첩에 어떤 작품들이 들어있는지 현재로선 확인할 길은 없다. 저자는 이용휴의 시와 최북의 작품 ‘기려행려도’,‘금강산전도’‘풍설야귀인도’, 김홍도의 ‘단원도’, 성대중의 글 등 당대 문인과 화가의 다양한 기록 속에서 정란의 흔적을 찾아내 잊혀진 선각자 정란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리아의 나라(앤 패디먼 지음,이한중 옮김, 문학동네)=‘서재 결혼시키기’로 잘 알려진 작가 앤 패디먼의 데뷔작. 1997년에 출간한 책은 세계화와 다문화시대, 난민, 인종, 문화 갈등이 더 첨예하게 부딪히는 요즘 더 가깝게 느껴진다. 저자는 1988년 캘리포니아주 머세드라는 곳의 공립병원에 근무하는 의사인 대학친구와 전화통화하면서 몽족 난민들의 얘기를 듣게 된다. 당시 머세드에는 몽족 출신이주 난민들이 많았다. 몽족은 라오스 출신의 고산민족으로 베트남전쟁 이후 70,80년대 난민이 돼 미국에 왔다. 이들은 의료의 많은 부분을 거부하는 바람에 의사들을 난감하게 만들었는데 외과수술이나 마취, 요추천자 같은 의술을 터부시했다. 책은 이 얘기를 듣고 현장으로 달려가 이민자 가족인 리아네와 미국 의료체계 사이의 갈등을 9년에 걸쳐 생생하게 옮긴 르포이다. 의사들은 발작을 일으킨 리아에게 뇌전증이라는 진단을 내리지만, 리아 가족은 이 현상을 영혼에게 붙들려 쓰러진 병으로 인식한다. 의사들은 처방된 약을 제대로 투여하지 않는 리아 가족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가족들은 약의 부작용을 보며 의사를 불신한다. 작가는 리아의 가족과 주치의, 간호사, 위탁가정부모, 통역사와 이웃 등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몽족의 역사와 문화, 이들이 왜 떠나와야 했는지 꼼꼼이 조사해 섬세하고 생동감 넘치게 리아의 사례를 그려나간다. 이 책은 15주년 개정판을 번역했다.
▶마인(마이클 헬러, 제임스 샬츠먼 지음,김선영 옮김, 흐름출판)=소유권은 법적 다툼의 문제로만 여기지만 일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부분이 소유권과 관련이 있다. 왜 빈 그네는 먼저 온 아이부터 탈까? 왜 머리카락은 팔 수 있는데 장기 거래는 불법일까? 왜 집 뒤로 비행기는 날아가도 드론은 안된다고 말할까? 소유권에 관한 세계 최고의 권위자인 마이클 헬러 컬럼비아대 교수와 제임스 샬츠먼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소유권처럼 잘못 알려진 것도 없다며 소유권 원칙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면 여러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일상에서 소유권은 선착순, 점유, 노동, 귀속, 자기 소유권, 상속 등 몇 가지 원칙에 의해 주장된다. 그러나 이 논리는 현실에선 딱 떨어지진 않는다. 사유재산과 공적 통제 사이의 모호한 경계라든지, 특히 기술 발달은 소유권에 대한 새로운 원칙을 필요로 한다. 가령 인터넷 이용자가 방문한 웹 사이트 기록, 즉 클릭스트림은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돼 있어 소유권이 개인에게 있어야 할 것 같지만 데이터 소유권은 회색지대로 남아있다. 메타, 구글을 비롯한 인터넷 거대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데이터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소유권 싸움은 대개 수면 아래에서 진행되다가 저렴한 도구가 등장한 뒤에야 치열한 양상을 띠며 싸움의 전리품은 소유권이 실제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아는 사람이 챙긴다. 저자들이 예시한 항공기 좌석과 유전자분석업체들의 DNA 프로파일 등 인간의 감정과 행동을 이용한 소유권 비즈니스 사례들을 보면 눈이 확 트인다.
이윤미 기자/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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