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방탄소년단(BTS)의 소속사 하이브가 SM엔터테인먼트의 창업자인 이수만 전 SM 총괄 프로듀서의 지분을 사들이겠다며, ‘SM 인수전’에 뛰어든지 정확히 3주차. 사상 최대 규모의 K팝 업계 합병전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경영권 쟁탈전’의 향방은 이달 말 예정된 주주총회를 향해 있는 가운데, 현 상황을 지켜보는 ‘핑크 블러드’의 속내도 복잡다단하다.
속 타는 핑크블러드…“정체성 살리고 자율권 보장된 곳으로”
‘이수만은 없었지만, SM은 건재했다.’
지난달 26일,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에스파의 데뷔 후 첫 단독 콘서트 현장. 이날은 SM의 막내 에스파의 데뷔 후 첫 단독 콘서트엔 소속사 선배 가수들이 총출동했다. 에스파 멤버들이 선배들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하자, 객석은 뜨거운 함성이 쏟아졌다.
소녀시대 태연이 화면 가득 잡혔을 때였다. 에스파의 메타버스 세계관과 연결된 ‘인간 나비스’ 설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태연의 등장에 에스파 콘서트 현장을 발칵 뒤집혔다. 듣도 보도 못한 함성이 터져나오자 에스파 멤버들은 “어어? 우리보다 더 소리가 큰대요?”라며 함박웃음을 짓기도 했다. 태연 이후로 샤이니의 키, 레드벨벳의 슬기 웬디, NCT 멤버들까지 줄줄이 등장하자, 에스파의 콘서트 현장은 SM타운 콘서트를 방불케 했다.
‘핑크 블러드(Pink Blood)’는 대를 잇는다. 1세대 K팝 그룹 H.O.T.와 S.E.S를 시작으로 4세대 에스파까지 이어진 25년의 긴 시간동안 이어진 SM엔터테인먼트의 팬덤. SM이 직접 상표까지 출원한 ‘핑크 블러드’는 SM 아티스트와 콘텐츠를 응원하는 팬덤을 부르는 말이다.
이날 에스파의 콘서트 현장에선 SM 소속의 다른 아티스트를 좋아하다 에스파에 입덕한 팬덤은 물론 기존 SM 팬덤인 ‘핑크 블러드’를 상당수 만날 수 있었다.
‘SM 경영권 분쟁’ 이후 처음으로 열린 대규모 SM의 행사에선 ‘경영권 분쟁’과 인수전에 대한 팬덤의 속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계는 물론 투자업계까지 뒤흔든 대규모 ‘머니게임’이지만, 막상 현장에서 만난 관심의 크기는 저마다 달랐다. 다만 마음은 같았다. “아티스트를 위한 인수전”이 돼야한다는 점이었다.
NCT를 통해 SM아티스트의 팬이 됐고, 에스파의 콘서트까지 찾은 ‘핑크블러드’ 김혜인 씨(26)는 사태의 본질을 간파하고 있었다. 김혜인 씨는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가 SM과 K팝을 일군 업적은 너무나 훌륭하고 뛰어나지만, SM은 상장한 이상 회사가 개인 소유가 아니기에 그간 있었던 일들은 정상적이지 않고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사실 대다수의 팬들은 회사의 경영권 문제와 인수 이면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진 않아 한다”며 “카카오든 하이브든 아티스트의 자율권이 보장돼있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현장에서 만난 이설(26) 씨는 “지금은 SM의 현 경영진이든 하이브든 팬들의 지지를 얻고 싶어 아티스트의 활동을 걸고 협박한다는 느낌을 갖게 되곤 한다”며 “지금 SM의 아티스트의 색깔이 변하지 않고 유지될 수 있는 쪽으로 결론이 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또 다른 에스파의 팬 이수인(24) 씨는 “아티스트의 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결론이 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핑크 블러드’의 바람은 SM의 정체성과 색깔의 유지, SM 아티스트의 ‘지속가능한 활동’이었다. 오랜 ‘핑크 블러드’일수록 SM 현 경영진을 지지하는 쪽이 많았다. 그만큼 ‘핑크 블러드’는 충성도가 높았다.
소녀시대부터 에스파까지 팬이라고 밝힌 이윤지(32) 씨는 “하이브가 추천한 이사진 명단은 비엔터 출신 경영진으로만 구성돼있는데 가수들의 활동을 자본의 논리로만 바라볼 것 같아 우려가 크다”며 “SM은 다른 기획사와 달리 가수들의 수명이 길고, 그룹부터 솔로까지 앨범 활동까지 지속적으로 지원하는데 하이브의 경영진이 성과를 내지 못하는 아티스트를 꾸준히 지원해줄지 의문이다”라는 강경한 입장을 들려주기도 했다.
익명을 요청한 또 다른 팬은 “팬으로서 지난 25년 넘게 SM이 K팝을 이끌었고, SM의 음악과 아티스트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이브의 산하 레이블이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20대 초반에 가까운 Z세대 팬덤들은 도리어 쿨했다. 에스파 콘서트에서 만난 김민정(21) 씨는 “어느 쪽이든 상관도 없고 관심도 없다”며 “다만 제발 활동만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 특히 요즘엔 국내 활동이 없어 아티스트를 볼 수 있는 장소가 공항밖에 없다. 국내활동을 많이 해주는 회사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에스파의 콘서트 이후 강경한 일부 SM의 팬들은 하이브의 사옥 앞에서 트럭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최근 트위터를 비롯해 SNS의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하이브의 독점에 반대하는 SM 팬 일동. 우리는 하이브 없는 SM을 지지합니다”를 비롯해 다소 과격한 문구를 담은 시위 사진이 퍼져나갔다. 문구는 제법 과격했다.
트럭 시위를 진행한 팬들은 “SM 3.0 아티스트/팬 계획 관련 영상을 보고 우리가 진짜 원하던 걸 SM 3.0에서 이룰 수 있을 것 같아 응원하고 싶었다”며 “하이브가 독립성을 보장한다고는 하는데, 계속해서 좋지 않은 기사를 내는 것을 보고 마음을 굳혔다”며 시위 이유를 설명하는 메일을 언론에 보내기도 했다.
주총 앞두고 총력전…표심도 팬심도 잡아라
지금도 ‘인수 전쟁’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 전 총괄의 지분 14.8%를 확보해 1대 주주로 자리한 하이브는 최대 25%의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기 위한 공개매수를 진행해왔다. 지난달 28일 마감된 이번 공개매수는 사실상 좌절된 것으로 보인다. 하이브는 가만 있지 않았다. 공개매수 기간 동안 이를 방해하는 비정상 거래가 있었다고 주장, 금융감독원에 조사를 의뢰했다. 지난달 16일 IBK 판교점에서 SM 주식 전체 일일 거래량의 15.8%에 해당하는 68만3398주(SM 발행주식 총수의 2.9%)가 매수됐다는 점을 이유로 들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시세조작 행위가 드러나면 처벌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이다.
이보다 앞서 이 전 총괄이 SM을 상대로 낸 카카오의 신주·전환사채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으로 법적 분쟁의 결말이 난다. 이르면 3일쯤 가처분 여부가 결정된다. 카카오는 지난달 7일 SM이 제3자 배정 유상증자 형태로 발행하는 123만주 규모의 신주를 인수하고, 전환사채 인수를 통해 114만주(보통주 전환 기준)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SM의 지분 9.05%를 확보했다.
법원이 이 전 총괄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 카카오는 이번 인수전에서 밀리게 된다. 하이브는 지분 희석의 우려 없이 1대주주 자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문제는 기각될 경우다. 이 경우 2차전이 시작된다. 하이브가 13.46%, 카카오가 9.05%, 이수만이 3.32%, 국민연금공단이 8.15, KB자산운용이 4.66, 컴투스가 3.82%의 지분을 가지는 지배구조가 완성된다. 하이브와 카카오의 어색하고 불편한 동거인 셈이다.
때문에 양측은 3월 말 주주총회에 사활을 걸고 있다. 주주총회를 앞두고 SM엔터테인먼트의 현 경영진과 1대 주주 하이브는 각각 주주 설득을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 하이브는 2일 ‘SM 위드 하이브’라는 홈페이지를 개설했고, SM 현 경영진은 최근 소액주주들에게 서한을 보내 지지를 호소했다.
하이브는 이날 주주제안 캠페인 페이지 ‘SM 위드 하이브’(SM with HYBE)를 열고, 1대 주주 하이브가 구상하는 SM의 비전을 공개했다.
이재상 하이브 사내이사 “SM의 본질인 음악 사업은 오리지널 음악 콘텐츠의 품질 최고주의 철학을 공고히 유지하는 방향으로 이뤄질 것”이라며 “제한적 리소스(자원) 상황에서 무리하게 설계된 신인 데뷔 및 앨범 론칭의 양적 성장 플랜에 대한 현실적 검토를 진행하는 동시에, 아티스트의 초기 브랜드 형성을 위한 콘텐츠 투자에 재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SM은) 유니버설뮤직, 소니뮤직, 워너뮤직 등 글로벌 메이저 음악회사뿐만 아니라 애플·에픽·구글 등 확장사업 영역 파트너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지사를 거치지 않고 하이브가 보유한 글로벌 파트너사의 본사 창구를 활용해 업무 추진의 속도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이 후보자는 “향후 3년간 SM의 당기순이익 30% 배당 성향을 유지하며 성장과 주주가치를 균형 있게 제고하는 보상 체계도 도입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SM 현 경영진은 최근 소액 주주에게 서한을 보내 앞서 SM 현 경영진은 최근 소액 주주에게 서한을 보내 SM은 서한에서 “하이브 이사회는 당연히 새로운 사업 기회를 (SM이 아닌) 하이브에 줄 것”이라며 “이번 사태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역사에서 다시 없을 중요한 일이다. 주주님들의 이번 결정에 따라 당사의 미래는 아주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올해 주주총회는 지난 십수년간 이어져 온 SM의 거버넌스 이슈를 완전히 해소하고 국내 최고의 아티스트 풀을 보유한 엔터테인먼트사로서 기업가치를 한 단계 더 올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호소했다.
봉투 겉면에는 “특정 주주가 아닌 모든 주주를 위한 독립적 이사회. 주당 1200원 배당”이라며 SM 현 경영진이 주주들에게 보내는 약속이 적혀있다. 또 “주식 매각했어도 의결권 행사 가능합니다”라는 문구로 의결권 행사를 위임해달라는 호소도 담겼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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