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제주엔 1만8000여개의 신화가 있다. 아마 이집트, 그리스 신화보다 더 많을 것이다. 크게 나누면 ▷신계 ▷신과 인간의 만남 ▷인간계 이야기 등 세 부분이다.

제주 전역에 숱한 스토리가 있는데, 다양한 조형물과 함께 잘 집대성된 곳은 안덕면 서광리 신화역사공원이다.

신화는 단순한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제주 지질학, 문화인류학, 교류사와 연관돼 있다. 그래서 제주의 신화를 따라가다 보면 여행이 훨씬 흥미로워진다.

설문대 할망은 옥황상제의 막내딸로 호기심에 하늘을 땅을 분리했다가 쫓겨난다. 제주의 신화는 초반부터 대차다. 제주의 원조, 대할망께서 ‘재미로’ 하늘과 땅을 분리하셨다니.

제주 지질 중 꽤 고참인 용머리 해안. 설문대할망의 기적, 서귀포층 다음으로 생겼다.
제주 지질 중 꽤 고참인 용머리 해안. 설문대할망의 기적, 서귀포층 다음으로 생겼다.

부친의 노여움을 사기 전 천상연회 때 별의 왕 ‘한감’과 썸을 탄 적 있는 설문대 할망은 지상으로 내쫓기면서, 하늘과 땅을 분리할 때 쓰던 흙을 치마 폭에 담아 썸남 한감의 팔목을 잡고, 구름과 바람 길로 제주도로 왔다. 그때 가지고 온 흙을 서귀포 일대에 흩뿌리는데, 천둥과 벼락이 하염 없이 내리쳤다고 한다. 그리고 누울 베개가 필요해 나중에 한라산을 만든다.

이것은 제주 지질학과 일치한다. 서귀포 쪽에 점토와 모래가 야트막하게 깔려 있다가 180만 년전 전부터 인근 수생 화산이 천둥과 번개 치듯 연쇄적으로 폭발하며 불을 뿜고 지각이 요동쳤다. 이후 퇴적층 즉, 서귀포층이 만들어지면서 제주도는 제대로 된 섬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이 서귀포층은 제주도 땅의 할머니이다.

서귀포층에 이어 용머리해안, 산방산이 130만~100만 년전쯤, 차귀도가 45만 년전쯤 형성된다. 그리고 20만~2만 년전쯤 한라산이 만들어진다.

용머리 해안은 화산 폭발 후 바다로 흘러가던 용암들이 정체 현상을 일으키면서 바닷가에 쌓인 용암산이다. 정상적인 흐름이면 월정리 같은 드넓은 용암 대지가 형성되었어야 했겠지만 뒷에선 용암이, 앞에서 파도가 후려치니 구불구불하게 엉키고 잘려서 기가막힌 절경을 만들어냈다. 산방산은 농도 짙은 용암이 서서히 끈적하게 솟아오르다 천천히 흘러내리는 바람에 종지 모양이 됐다.

한라산 메인 봉우리와 우도는 덩치는 달라도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다. 거문 오름과 성산 일출봉의 생애는 1만~5000년으로 제정일치 고조선 연방제국의 역사와 엇비슷하다.

풍요의 여신 영등할망이 나타나신 새별오름
풍요의 여신 영등할망이 나타나신 새별오름

설문대 할망이 한라산을 ‘만들’ 무렵, 수많은 오름들이 개별 폭발을 하면서 형성되는데, 새별오름 생성 무렵 새로운 여신이 등장한다. 바로 새별오름 축제의 주인공인 영등 할망이다.

영등 할망은 바람과 풍어의 신이다. 음력 2월1일 제주로 들어와서 2월15일(올해엔 지난 4월5일) 봄맞이에 필요한 채비를 모두 마친 뒤 떠난다. 내년에 다시 올 것이다. 영등 할망은 해산물의 씨앗을 뿌려주며 생업의 풍요를 부른다.

신화역사공원 영등할망 조형물
신화역사공원 영등할망 조형물

서광리 신화역사공원엔 영등 할망의 치맛자락을 주제로 바람 신의 모습을 나타낸 조형물이 있다. 소라와 고동을 매달아 해산물의 씨앗을 표현하고, 바람을 소리로 느낄 수 있도록 연출했다.


abc@heraldcorp.com